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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9월호 통권 143호호 기획연재

“민주 항쟁 뜻 이어 민중의 애환·소망 노래하는 합창단 될 것”

내용

지난 5월 26일 민주공원에서 특별한 이름을 가진 합창단이 창단음악회를 가졌다.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와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등 창단공연에서 부른 노래도 특별하다. 남성들로만 구성된 이 합창단의 이름은 ‘박종철 합창단’이다. 창단 2년 만에 창단음악회를 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백영제 박종철 합창단 단장

 

2016년 창단 … 2년 만에 창단공연


박종철 합창단의 이야기를 들려줄 백영제 단장을 만났다. 첫 번째 질문은 당연히 ‘왜, 어떻게 박종철 합창단을 만들었느냐’ 였다. 답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만큼 오랜 준비와 고민 끝에 만들어진 합창단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부산대 성악과 교수님이셨던 이민환 교수님이 부산에서 남성 합창단을 만들고자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합창단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우연히 독일의 ‘불만 합창단’에 대한 영상 작품을 보게 됐어요. 시민들의 불만을 가사로 합창곡을 만들었는데 노래도 좋고 가사도 신선해서 우리 부산에도 민중의 목소리를 담은 합창단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서로 합창단에 대한 마음만 품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남성 합창단을 만드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2016년 봄, 그렇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 10여 명을 중심으로 합창단 창단 준비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해 8월 16일 총 20명으로 ‘박종철 합창단’의 첫발을 내딛었다. 

 

“합창단 이름은 창단 준비과정에서 정해졌습니다. 이름을 놓고 한참 고민 중이었는데 서울에 이소선 합창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한국 노동자의 별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신 이소선 님을 기리며 노동자의 삶을 위해 노래하는 합창단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 부산에는 박종철 열사가 있으니 박종철 합창단으로 하자’고 의견이 모아진 것이죠.” 

 

박종철 열사는 부산 혜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어학과에 진학했다가 1987년 1월 공안당국의 고문으로 숨졌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민주항쟁에 불을 붙였다. 

 

단원 40명 나이대 다양 … 정기연주회 열 것


박종철 합창단은 창단 이후 박종철 열사 30기 추모식, 세월호 3주기 추모문화제, 6월항쟁 30주년 기념식, 부마민주항쟁 38주년 기념식, 2017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 등에서 합창공연을 했다. 지난 7월 박종철 열사 부친 고(故) 박정기 선생의 장례식장에서도 추모공연을 했다. 공연을 이어가는 동안 20명이었던 단원은 어느새 40명으로 늘었다. 나이대도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한 가지가 또 궁금해졌다. 왜 창단공연까지 2년이 걸린 걸까?

 

“사실 노래를 전공으로 하지 않은 일반인들이라 노래연습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웃음). 창단공연이라 더 공을 들여 준비하다 보니 2년이 걸렸네요.”

 

박종철 합창단은 얼마 후 열릴 2018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년 정기연주회도 가질 예정이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박종철 합창단의 공연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작성자
이한주
작성일자
2018-08-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9월호 통권 143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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