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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

일본 무역상 드나들던 왜관 자리 들어선 ‘수정시장’ 6·25전쟁 이후 보따리 장사 모여들던 ‘초량시장’

내용

“아차차, 처음부터 뛸 걸….”

신호등의 초록불을 보고 뛰어가던 길남 씨는 무정한 빨간불에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는 한숨을 한 번 쉰다. 길 건너편에 버티고 선 부산동부경찰서가 노려보는 것 같아 위반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곳은 추억의 부산진역 앞 건널목이다. 

 

수정시장
 

▲수정시장.

 

 

부산진세무서부터 부산일보사까지 모두 ‘수정시장’


길남 씨는 한때 기차가 정차하고 사람들이 부산히 오고갔던 부산진역의 모습을 기억한다. 부산역까지 가지 않고도 기차를 이용할 수 있어 매우 유용했었던 이곳은 통일호, 비둘기호 등 완행열차의 시·종착역 및 일부 방면 열차의 정차역으로서 부산역에 버금가는 규모의 기차역이었었다. 하지만 KTX 개통 이후 열차업무가 부전역으로 대폭 이전되며 승객들이 줄어 현재는 여객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그게 2005년이니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러간 셈이다. 그나저나 오늘 그가 갈 곳은 수정시장. 

 

그런데 길남 씨의 발걸음은 시장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부산진세무서와 수정초등학교가 있는 쪽으로 향한다. 왜 그럴까? 그건 그의 배에서 나는 소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꼬르륵.’ 그는 사실 아침부터 점심까지 굶은 상태이다. 수정시장을 취재한다는 말에 따라나선 아내 또한 빈 속이긴 마찬가지. 왜 이 부부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은 대화도 주고받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가 수정초등학교 앞의 ‘할매떡볶이’에 드디어 도착했다. 어묵과 떡볶이가 단출하게 차려진 작은 가게. 이곳 떡볶이의 가격은 자그마치 다섯 개 1천 원! 그들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콤한 초등학교 시절의 그 떡볶이 맛에 감동하며 계란까지 섞어 무려 3천 원어치를 흡입한다. 

 

“더 먹지 마. 딴 거 또 먹으러 가야해. 에피타이저야, 이건.”     

 

길남 씨는 오늘 수정시장 취재가 군것질 투어가 될 것임을 이미 예견하고 있는 터이다. 

 

“다음은 만두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관인 두모진해관 터. 

▲우리나라 최초의 세관인 '두모진해관' 터.

 

예부터 상인 드나들던 무역 중심지


부부는 다음 목표를 상기시키며 또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런데 조금 요기를 하고나니 범상치 않은 세관 옆의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관터 - 1878년 두모진해관’

 

이곳이 어딘가? 그 옛날 최초의 왜관이라 할 수 있는 두모포 왜관이 있던 곳이 아닌가? 동네 자체가 유서 깊은 곳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주는 표지석이라 할 수 있다. 볼거리는 그뿐만 아니다. 수정초등학교 앞 두 문방구는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뛰어넘은 듯 정겹기만 하다. 부산진세무서를 지나 이제 두 사람은 시장의 초입에 들어선다. 수정시장은 이곳을 시작으로 해서 고관(古館) 입구의 ‘수정상가시장’(부산일보사 뒤편)까지 넓게 범위를 잡을 수 있다. 

 

여기서 고관이란 최초의 정식 왜관이라 할 수 있는 ‘두모포 왜관’을 이르는 것이다. 길남 씨는 이 부분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410년 전, 우리나라와 일본과 대마도의 상인들이 드나들던 무역의 중심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두모포 왜관은 선조 말년이자 광해 원년인 1608년 대마도 정부의 요청으로 약 3만3천57㎡(1만 평) 규모로 세워졌고 이후 초량왜관이 생길 때까지 70여 년간 양국의 무역을 담당했었다. 언제나 활기찬 분위기의 이곳은 어쩌면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상권이 형성된 곳인 것이다. 왜관 소재의 장편소설을 쓰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소설가는 아직까지 결과가 없는 게으른 자신을 반성하며 시장길을 걷는다. 

 

양쪽 상가와 길 가운데 천막이 쳐진 노점은 함께 어우러져 4개의 판매대를 만들어낸다. 돌나물, 쑥, 노지 머위, 노지 정구지(부추) 등의 야채가 늘어져 있고, 종이 박스를 오려 매직으로 거칠게 적어놓은 상품명과 재래시장 특유의 방앗간, 식육점, 수제어묵집들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언제 봐도 정겨운 모습이다. 

 

 

수정산복도로로 이어지는 시장 … 시민 삶 보듬어 

 

수정동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오르막은 수많은 주택가와 연결된다. 다른 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풍경들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바다를 낀 사람들의 사연들이 숨겨져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부산진역 정류장에서 내려 수정시장에서 하루의 회포를 풀거나 장을 보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유서 깊은 시장은 이런 이들의 삶을 모두 보듬고 있는 것이다. 

 

길남 씨 부부는 시장 곳곳을 살피며 걷다 수정상가시장 입구 부근의 ‘명당만두’에 도착한다. 원래 계획한대로 1인분만 먹고 가려하지만 두 사람은 난관에 봉착한다. 항상 하는 고민이지만 고기만두를 먹을 것이냐, 김치만두를 먹을 것이냐,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가게 앞에서 일렬종대로 된 만두를 솜씨 좋게 굽던 여사장님이 두 사람의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 주신다.  

 

“반반 섞어서 드셔도 돼요.”

 

아니, 이렇게 멋진 짬짜면같은 답이 있을 줄이야. 1인분을 더 시키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길남 씨는 수정상가시장으로 향한다. 상가시장 입구는 원래 양쪽 편에서 두툼한 회를 써는 풍경이 압도적이었는데 현재는 아파트 공사로 인해 한쪽이 펜스로 막힌 상태이다. 오늘은 대낮에 비가 조금 내려서 그런지 좀 한산하다. 좀 걷다보면 수육전문도매를 하는 가게들이 한두 집이 아닌 걸 알 수 있다. 특히나 이 시장골목의 수육은 돼지뽈수육으로 유명하다. 가게에서 직접 소주 한 잔과 즐길 수도 있다. 돼지볼살, 돼지혀, 돼지코 등 흔치 않은 부위의 맛도 볼 수 있다. 인심이 두둑한 곳이지만 스무 곳이 넘던 수육도매가게도 지금은 열 곳 남짓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 수정상가시장 골목 입구에 붙어있던(이 또한 벌써 또 10여 년이 지나버린 기억이지만) ‘수정시장을 살립시다’란 문구가 아련하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초량시장 입구 

▲초량시장 입구.


 

돼지뽈수육으로 유명한 ‘수육골목’


길남 씨는 문득 상가 안의 횟집과 비밀스럽기까지 한 짬뽕집에 들리고 싶어진다. 수정상가시장은 낡은 시장 건물이 가진 특유의 낭만이 넘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가로 들어가자 막썰어 회가 저렴하게 제공되는 소박한 횟집들이 모여 있다. 부산일보 C기자와 간만에 낮술의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평론가 J와 밀치회 한 접시를 두고 흠뻑 취하기도 했었던 창녕식당(이곳의 회국수는 정말 일품이다)을 보자 왠지 목젖이 가려워지는 소설가. 하지만 그의 부인은 가차 없이 그의 욕구를 끊어낸다. 

 

“전부터 가고 싶다던 그 가게는 어디 있는데?”

 

두 사람은 물어 물어서 신비의 짬뽕집 해흥관을 상가 구석에서 결국 찾아낸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사정이 있어 다음 주 ○월 ○일부터 영업합니다’란 문구가 붙어 있다. 지정한 날짜가 훨씬 지났건만 문은 계속 닫혀있다. 이곳은 중국집이긴 하지만(예전에 요리했던 수만 가지의 메뉴판은 지금도 여전히 붙어있다) 이제 짬뽕만 하는 조그만 가게이다. 그러나 5천 원이란 가격으로 맛과 추억과 전통을 함께 선사하는 문화재와 같은 곳이다. 길남 씨가 이곳을 찾은 지 벌써 3번째지만 또 한 번 튕긴 셈이다. 이런 경우 그는 혹시라도 오래된 장인의 가게가 문을 닫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심정이 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진 않지만 익숙한 것이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짬뽕과 소주의 아쉬움을 달래며 회국수를 흡입하던 길남 씨가 문득 부산역 방면을 잠시 응시하다 뭐라고 중얼거린다. 

 

‘부산진역 찍은 다음엔 부산역인데, 수정시장 이야기를 하면서 초량시장이 빠지면 되나?’ 

 

“응? 뭐라고? 소주 안 된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배도 부르고 며칠 뒤에 시장 한 군데 더 가야겠는데? 그날은 초량 가서 불백도 먹고.”

 

다이어트로 점심만 푸짐히 먹는 걸 고집하는 부인을 살살 꼬드기는 길남 씨였다.                 


부산고등학교 앞 초량불백거리

▲부산고등학교 앞 초량불백거리.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초량시장 


초량시장은 부산역 건너 차이나타운, 텍사스거리 뒤편 거리와 부산고등학교 사이에 위치한 시장이다. 기록들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당시 보따리 장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이라 나와 있다. 

 

초량시장 부근을 살펴보면 부산의 여타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쯤 상가건물이 들어서면서 시장으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고 그 외향을 넓혀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역이란 상징적인 공간이 위치했던 장점이 있었지만 부근의 개발과 대형마트 등이 들어서며 시장은 그 규모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요 근래에 다시 입소문을 탄 부산고등학교 밑 불백 거리를 비롯해 건너편 돼지국밥거리, 초량숯불갈비골목은 이곳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길남 씨는 아내와 이곳을 찾기 며칠 전 저녁시간에 초량시장을 들른 적 있다. 저녁 8시가 넘어 식당과 술집들이 불을 밝히지만 시장은 어두워져야 할 때였다. 하지만 아카이브 천정 밑의 초량시장 입구는 다른 곳보다 훨씬 밝은 모습이다. 

 

장사를 마친 상가들 사이로 전, 회, 분식, 무침, 심지어 참치회까지 다양한 품목의 주점들이 야시장의 포장마차 형태로 한참 성업 중이었다. 공사가 한창 중인 시장 건너편의 상가와 술집들이 없어진 대신 새로운 모습들의 삶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길남 씨는 다시 낮 시간에 아내와 함께 초량시장을 찾았다. 추억을 좇아 초량숯불갈비 골목을 누비던 두 사람은 역부근이란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여관과 여인숙이 즐비한 길(예를 들어 무진장여관, 한길여인숙, 세탁소, 장수식당 등의 다양한 점포가 한 골목에 엉켜있는 낯선 여행자들을 위한 그런 길)을 통과해 몽순이집, 홍도곱창, 튀김전문집 등 내공이 그득한 골목 가게들을 지나니 아카이브 천장 밑의 초량시장이 나타난다. 낡았던 초량상가시장은 새로운 간판과 깔끔해진 외형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몸짓을 보여준다. 

 


초량숯불갈비골목

▲초량숯불갈비골목.

 

초량갈비·불백거리·돼지국밥거리 다시 입소문 타


팥을 살 일이 있어 장사하는 할머니께 물으니 ‘1㎏에 8천500원은 받아야 되는데…’하며 가격을 어물쩡하게 말씀하신다. 팥 1㎏면 1만 원도 싸다는 세상에 그 가격이 미안하신 것인가? 길남 씨는 재전통시장의 인심에 가끔씩 찡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밤의 시장이 점점 활기를 띠었던 것처럼 낮의 시장 또한 꽤 활기가 있다. 유명한 영진어묵을 지나 열십자로 형성된 시장길을 걷던 부부는 자신들도 모르게 늘어난 비닐봉지에 깜짝 놀라고 만다. 

 

“뭐, 몇 개 안 샀는데 와이리 많노? 하이튼 시장 돌아다니면 이래가 안 돼. 흐흐. 이제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근데 여보, 오늘은 불백 말고 초량 갈비 먹으면 안 되나? 아까 골목 지나니까 아빠하고 갔던 옛날 생각나서.”

 

길남 씨는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며 불백을 먹자고 하고 싶다. 그러나 어쩌랴? 옛 추억에 빠진 강력한 부인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한다. ‘그래, 초량시장에 왔으니 이곳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매력에 이끌려 가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배길남 기사 입력 2018-05-31 부산이야기 6월호 통권140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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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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