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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원양어선원과 자갈치아지매의 삶터… 그곳 모든 시장이 자갈치였다

길남 씨의 전통시장 탐방기 - 자갈치시장

내용

‘부산’하면 떠오르는 장소는 많다. 부산타워가 있는 용두산공원, 피란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전국 최초의 도개교로 유명한 영도대교, 다이아몬드 브리지란 별칭의 광안대교,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잘 알려진 오륙도와 태종대, 동백섬…. 여기서 빠진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 어지간히 부산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몇 군데 저울질 해보다가 결국에는 나오는 답이 있으리라.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은 어디서 어디까지?


힌트를 주자면 ‘○○○아지매’다. ‘○○○아지매’는 이제 억척스러우면서도 정겨움을 가진 시장 아주머니들을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됐고,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무려 1만7천 회 방송을 기록하고 있다. 또 근처에 전국 제1의 어항(漁港)인 남항과 전국 제1의 수산물 거래를 자랑하는 부산공동어시장이 위치해 수산물 시장으로서는 전국 아니, 아시아의 메카로 불리는 곳.그곳은 바로 ‘자갈치시장’이다.

 

길남 씨는 햇빛 좋은 어느 날, 부산해양경찰서 남항파출소와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남항사무소 사이에 있는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로, 주로 어선과 바지선 등이 접안해 하역하는 접안 시설) 입구에 섰다. 오른쪽을 살피니 멀찌감치 부산공동어시장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직진하면 바다 건너 영도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남항 부두에 들어설 것이고 왼쪽으로 걸어가면 ‘충무동 새벽시장’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관계는 없다. 시장과 부두는 한 방향으로 이어지고 부두에서 시장으로 연결되는 샛길은 곳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가 가는 곳은 자갈치시장. 그러면 왜 뜬금없이 남항 부두나 충무동 새벽시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2006년 새롭게 만들어진 자갈치시장 건물 1층 수산시장 모습.

▲2006년 새롭게 만들어진 자갈치시장 건물 1층 수산시장 모습.


지금의 자갈치시장은 ‘부산 중구 자갈치해안로 52’라는 주소에 위치한 신축 건물을 지칭한다. 이 시장 건물의 역사를 찾아보면 1969년 인근 노점 상인들을 수용해 3층짜리 건물을 지었고 1970년에 개장했으며 시장 등록은 1972년에 됐다고 기록돼있다. 1985년 화재 등 우여곡절이 있었고 2006년에 지금의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갈치시장’하면 건물 내의 수산물 상가를 포함해 자갈치 아지매가 골목 양편의 천막이나 좌판에 앉아 구성진 사투리로 손님을 부르는 거리를 통칭하는 것이지 한 곳에 그 범위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자갈치시장에서 부산공동어시장 방향으로 걸어가면 충무동 해안시장·골목시장·새벽시장을 만날 수 있다(사진은 충무동 새벽시장 전경).

▲자갈치시장에서 부산공동어시장 방향으로 걸어가면 충무동 해안시장·골목시장·새벽시장을 만날 수 있다(사진은 충무동 새벽시장 전경).


 

새벽시장·골목시장·해안시장까지 모두 자갈치


그 옛날 피란 시절 남포동의 자갈 많은 해변은 연락선과 어선들이 드나들며 사람과 생선이 함께 북적이는 곳이 됐다. 일자리와 장사 터가 모자랐던 당시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이 이곳에 하나 둘 모여들며 부두 주변에는 좌판(자갈치에서는 판때기 장수라 불렸다)이 깔렸고 자갈치시장은 그렇게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한다.

 

길남 씨가 ‘충무동 새벽시장’에서 자갈치시장 탐방을 시작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충무동과 남포동은 남항 부두를 따라 시장이 많기도 많다. 롯데백화점 부근의 건어물 시장을 비롯해 자갈치시장, 신동아시장, 충무동 해안시장, 충무동 새벽시장, 길 건너 충무동 골목시장까지 합치면 동네 자체가 온통 시장통인 셈이다. 애초에 판때기 장수들이 모이고 모여 이룬 시장이 자갈치시장이고, 시와 때에 따라 그 행정적인 영역이 나뉘었을 뿐이니 길남 씨는 이 모든 시장이 자갈치시장이라 생각한다.

 

그는 실제로 시장 아지매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아지매, 여기가 자갈칩니꺼?”

 

길 건너에 있는 골목시장 쪽 아지매들은 약간 헷갈려 하는 눈치였다.

 

“옛날에는 여게도 자갈치라 했다 카던데, 지금은 마 길 건너 시장이 자갈치제.”

 

세월이 지나 이제는 구역이 좀 갈라졌다는 얘기였다. 새벽시장 쪽 아지매들은 더 갸우뚱 한다.

 

“이기가 자갈치 맞긴 맞는데…. 뭐를 더 마이 파는 데는 저~ 쭉으로 조금 더 올라 가야제.”

 

뭘 더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길남 씨는 여긴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라는 얘기로 해석해본다. 부산 시내버스 41번, 27번 버스 등이 회차하는 구역 부근의 해안시장에서 질문을 던지자 답변의 세기가 완연히 강해진다.

 

“여기가 자갈치냐고요? 행님아, 우리가 해안시장이가? 자갈치시장이가?”

 

생선 아지매가 옆에 있는 조개 아지매에게 묻자 대뜸 거센 목소리가 주위를 후려친다.

 

“이기가 자갈치지 자갈치가 어디긴 어디고?”

 

저 목소리는 아마도 길남 씨에게 던지는 일갈이 아닐까? 그는 얼굴이 벌게진 채 고개를 꾸벅하고는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그 이후의 발길이 신동아시장, 자갈치시장, 횟집거리, 수협 자갈치 위판장, 건어물시장까지 이어지지만 저딴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질 용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새벽 경매로 구입한 수산물 팔던 ‘새벽시장’


새벽시장은 근처 부산공동어시장이나 부산농산물도매시장에서 새벽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을 일찍 팔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초기에는 농수산물을 파는 도매시장으로 자갈치시장 주변의 식당이나 식료품 가게에서 주로 이용하는 식재료 시장이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그런 성격이 강하지만 일반 시장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품목을 다루고 있고, 부두와 접한 덕분에 형성됐던 여인숙 골목은 주변의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길남 씨는 그 옛날 누군가와의 인연으로 인해 이곳을 자주 들르곤 했었다. 그녀의 집은 선용품을 납품하는 방앗간을 운영했는데 그곳은 새벽시장 건너편의 충무쇼핑 건물에 위치했었다. 남포동에서 내려와 새벽시장 여인숙 골목 사이를 비집고 다니다 함께 먹었던 시장 골목 좌판의 냉면 맛은 아직도 그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완성되지 못한 청춘이 쪼개지고 몇 년이 흘렀던 2006년의 봄, 길남 씨는 혼자 그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날의 일기를 슬쩍 훔쳐보자.

 

골목의 동남여인숙 벽에는 ‘30년 전통 냉면’이란 아크릴 간판이 그대로 붙어있다. 노란 장판으로 감싼 좌판과 의자가 있고 테이블 위엔 식초와 겨자가 보인다. 아직 장사를 하는구나…. 그러나 좌판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용기를 내서 ‘할머니!’하고 불렀더니 옆 좌판의 채소 아줌마가 나선다.

 

“내가 해주믄 좋은데 내가 하믄 그 맛이 안 나. 쪼매만 기다리소. 총각!”

 

좀 있다 주인아줌마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때 그 할머니가 아니다. 아줌마 왈 할머니는 나이가 많이 드셔서 이제 쉬신단다. 아줌마가 같이 하다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나무 의자에 쭈그려 앉아 냉면 그릇을 받아든다. 한 젓가락 입에 넣자 시큼달큼한 면이 혀를 감싼다.

 

“어때요? 맛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웃으며 ‘예에!’하고 대답하는데 겨자를 많이 넣었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겨자는 그렇게 맵지 않았다.

 

2018년 길남 씨는 이런 추억을 가슴에 품고 새벽시장의 여인숙 골목을 돌고 돌지만 냉면 좌판은커녕 동남여인숙이 어딘지도 알 수 없다. 그가 못 찾는 것일까, 이미 사라진 것일까….

 

자갈치시장 생선구이 골목 풍경.

▲자갈치시장 생선구이 골목 풍경.


 

원양어선원 쉼터이자 삶터였던 자갈치


2017년은 우리나라가 원양어업에 진출한 지 60년이 되는 해였다. 원양어업은 한때 대한민국 달러 획득의 일등공신으로 엄청난 호황을 누리기도 했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 호황기는 지났지만 자갈치시장의 성장 속에는 선원들, 특히 원양어선원들의 공로(?)가 진하게 스며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갈치를 둘러싼 부산 남항은 원양어선원들이 본선에서 통선(부두로 사람들을 운송하는 배)으로 갈아타고는 육상에 첫발을 디디던 곳이었다. 운반선이 없던 당시는 채워진 선창의 고기를 하역하기 위해 원양어선들의 입항과 출항 시기가 비슷한 시절이었다. 덕분에 한꺼번에 쏟아진 선원들은 부산 충무동 일대 자갈치시장을 모조리 접수할 지경이었다. 1970년대 말부터 이어진 황금빛 시기에는 이런 원양어선원이 2만 명 가까이 됐다고 전해진다. 1년의 반 이상, 또는 2~3년간을 바다에서 쓸쓸히 보내야 했던 선원들은 자갈치시장에서 그들의 속을 다 꺼내 보이고는 뭉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새벽시장 입구 맞은편부터 골목시장 부근은 200m 정도에 걸쳐 술집들이 즐비했었고, 쏟아진 원양어선원들로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골목시장에는 파전골목, 생선구이집 등 음식점이 많은데 그 숨은 유래가 바로 원양어선원들의 방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새벽시장의 여인숙 골목과 해안시장의 선용품점 거리를 크게 형성하기도 했다. 여인숙 골목은 여전히 남아있고,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자갈치 선용품점 거리는 지금도 수산물거리 너머의 상권을 지배하며 배에서 쓸 물품과 옷가지, 식재료 등을 팔고 있다.

 

 

부산 서구 남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영도.

▲부산 서구 남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영도.


‘자갈치’ 그 찬란한 이름


이뿐만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참다랑어 회를 자갈치에서는 싸게 맛볼 수 있고, 값비싼 민어조기가 자갈치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이 생선들이 부산·경남 일대의 제사상에 쉽게 오르는 이유도 원양어업의 중심지가 부산인 덕분이라 할 수 있으리라. 지금은 아프리카 부근 원양어업이 중단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원양어선의 입출항은 암남동에 위치한 감천1·2·3부두(원양부두)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많은 원양어선원들이 다른 곳이 아닌 이곳 자갈치에서 애환을 달래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음 어기나 다음 출항을 기다린다. 자갈치시장은 자갈치 아지매들의 삶터일 뿐만 아니라 고독하지만 강인한, 그리고 정이 넘치는 원양어선원들의 거리이기도 한 것이다.

 

왁자지껄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외로움을 털어냈던 원양어선원들과 그 거리. 길남 씨는 이제는 잊혀져버린 그들과 그 거리를 눈을 감고 가만히 그려본다. 그리고 아직 자갈치와 원양어업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선원들의 만선 귀항을 기원해본다.

  

 

소설가 길남 씨는 충무동 일대의 시장을 묶어 자갈치란 이름으로 시장 탐방기를 쓰려 했으나, 끝도 없는 이야기 바구니인 이곳을 짧은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음을 새삼 통감한다. 꼼장어도, 생선구이도, 해물탕 거리도,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시장판의 싸움도, 신선한 회도, 건어물도, 시장 끝자락의 영도대교 밑도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벌써…. 아, 서민들의 삶을 결결이 담고 지닌 자갈치, 그 찬란한 이름이여. 너는 역시 만만치 않구나!

작성자
배길남
작성일자
2018-04-30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부산이야기 5월호 통권 139호 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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