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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7년 7월호 통권 129호 호 기획연재

22년 동안 부산 연극무대 지켜온 간판 배우

1996년 극단 새벽 입단 … 1인 9역 ‘어머니 날 낳으시고…’ 7월 22일까지 공연

내용

한 배우가 여러 사람 역할을 하는 건 연극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극의 효율적 진행이나 연기자 부족 등의 이유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1인 9역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한 배우가 아홉 사람 역할을 한다는 건 배우에 대한 연출자의 신뢰가 절대적이란 의미며 배우의 내공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1인 9역을 거뜬히 해내는 주인공은 연극배우 변현주(47). 발성의 고저와 장단, 완급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쌍둥이 자매의 언니가 됐다가 동생이 되고 자매의 엄마가 되는 등 등장인물 아홉 사람 모두를 연기한다. 관객은 배우가 변신할 때마다 시선을 맞추고 마음을 맞춘다. 때로는 언니가 되고 때로는 동생이 되고 엄마가 되어 연극을 이끌어 간다.

 

 

 

대학시절 원어연극 동아리가 연극인생 출발점
 

연극 제목은 ‘어머니 날 낳으시고…’ 배우가 한 명인 1인극이다. 연극배우 변현주가 ‘어머니 날 낳으시고…’에 출연한 지는 꽤 된다. 2005년, 2007년, 2008년, 그리고 2009년 모두 네 번에 걸쳐 장기 공연했고 8년이 지난 올해 다시 같은 작품으로 무대에 섰다. 극단 새벽 이성민 연출 작품으로 첫 공연은 1996년 연극배우 윤명숙이 출연했다. 2007년 40대 초반의 나이로 타계한 윤명숙은 부산의 전설. 살아서도 전설이었고 죽어서도 전설이다. 윤명숙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자. 
 

당대의 윤명숙이 그랬듯 변현주는 지금 부산 최고의 여배우다. 부산에서도 알아주고 서울에서는 더 알아준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변현주의 활동무대는 서울이었을 테고 송강호나 김윤성처럼 부산 출신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 아는 배우 송강호도 극단 새벽 출신이다. 변 배우는 부산 토박이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부산에서 다녔고 대학원만 서울에서 다녔다. 대학과 대학원 전공은 영문학. 경성대 영문학과 원어 연극 동아리에 몸담았던 게 연극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싹은 이미 대신동 은하여중 다닐 때 보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연극대본 수업시간이었다. 역할을 나눠 대본을 읽는데 극에 몰입해 대본에도 없는 대사를 읊조렸던 것. 무의식 상태에 순간적인 행동이라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나 담당 교사는 미래의 연극배우 변현주를 봤단다.

 

연극배우 변현주는 22년 동안 부산 연극무대를 지켜온 부산의 간판 배우다.
 

연극배우 변현주는 22년 동안 부산 연극무대를 지켜온 부산의 간판 배우다.
 

▲ 연극배우 변현주는 22년 동안 부산 연극무대를 지켜온 부산의 간판 배우다. 


대학시절 연기보다 음향·무대감독으로 활동
대학 4년은 연극 4년이었다. 첫 작품은 셰익스피어 리어왕. 음악을 좋아해 음향을 맡았다. 사실 변 배우는 영문학보다 음악을 하고 싶었고 심리학이나 철학을 하고 싶었다. 학원 영어 선생님이셨던 부친이 강권해 영문학과로 진학했다. 사람을 좋아했던 경성대 영문학과 89학번 변현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연극에 매료돼 거기 빠져들었다. 2학년이 되자 ‘연극을 하며 살아도 되겠구나’ 감이 왔다. 2·3학년 때도 음향을 맡았고 4학년 때는 무대감독을 맡았다. 경성대 영문학과에선 여성 1호 무대감독이었다. 
“연극은 다양한 매체가 종합해 이뤄지는 거잖아요. 대학 다닐 때 저를 돌아보니 딱히 하나를 엄청나게 잘하는 건 없었어요. 하지만 글도 좀 쓰고 노래도 좀 부르고 그림도 좀 그리고 하는 저에게 가장 어울리는 게 연극이었어요. 연극을 해 보고 싶다. 그런 느낌이 왔죠. 연극이 가치 있는 예술이란 제 나름의 의미부여를 하게 된 거죠.” 대학원은 고려대 영문학과를 갔다. 경성대 연극영화과로 가려고도 했으나 연극에 학문적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연극미학과를 가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결국 고려대 영문학과 드라마 전공을 택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접한 아일랜드 연극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었다. 존 밀링턴 싱의 단막극 ‘바다로 가는 기사들’이 그것이었다. 시적이면서 사회문제를 담은 일종의 풍자극이었다. 사실, 변 배우는 사회문제에 일찍 눈을 떴다. 중학교가 동아대 근처에 있어 최루탄 가스를 일상으로 겪었고 삼성여고 2학년 때 6월 항쟁 현장에서 존경하던 여진호 국어 선생님을 지켜보았다. 

아버지 병환으로 부산으로 돌아와 극단 새벽 입단
대학원 생활은 순조로웠다. 연극을 할 생각이었으므로 책에만 파묻히지 않았다. 극단 아리랑 문화교실에서 수강했고 작품도 썼다. 한겨레신문 문화센터에서 고성오광대를 배웠다. 연극 두 편에 배우로 출연했다. 극단 아리랑에선 그의 연극적 재능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대학원 4학기를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던 1996년 6월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부산에 왔다. 처음엔 가벼운 병환인줄 알았다. 두 달 정도 부산에 있다가 서울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부산에 있을 동안 연극이라도 배워 보자며 극단 새벽 연극학교를 두드렸다. 
아버지 병환은 뜻밖에도 위중했다. 간암 말기였다. 6개월 선고를 받았지만 한 달 만에 별세했다. 극단 바닥을 쓸고 있을 때 부음을 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엄청 울었단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스런 마음에 3년 동안은 아버지의 ‘아’ 자도 꺼내지 못했다. 어머니를 두고 서울로 갈 수 없었다. 극단 새벽에 정식 입단했고 2기 단원이 됐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났다. 
“첫 출연작은 ‘피의자’였어요. 윤명숙 선배와 같이 출연했죠.”  변현주 배우는 22년 연극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이로 두 사람을 꼽는다. 이성민 연출과 윤명숙 배우다. 극단 새벽에서 처음 만난 이후 두 사람의 언어와 행동, 생각, 가치관에 동화돼 ‘이 사람들이라면 평생을 함께 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극단 새벽 배우로서의 첫 작품 역시 이성민이 연출했고 윤명숙과 출연했다. 두 번째 작품 ‘아닌 밤중에’도 그랬고 재판극 시리즈 ‘이의 있습니다’도 그랬다. 쭉 그랬다. 윤명숙이 2007년 42세 나이로 타계하기 전까진. 
 
배우 윤명숙·연출 이성민이 연극인생 길잡이  
‘2007년 6월 27일 오후 7시 암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날부터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창단할 무렵 40여명이나 되던 단원들 힘겹다고 하나둘 떠나고 딱 둘이 남았었는데 이제 덩그러니 혼자가 된 겁니다.’ 윤명숙 타계 3주기를 맞아 이성민 연출이 올린 글이다. 
이성민 연출이 극단 창단 멤버 윤명숙을 회고하는 키워드는 ‘꿈’이다. 그 꿈은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다. 물질보다는 사람이 우선인 세상, 생명이 공생하는 세상이고 등수 경쟁보다는 가치 경쟁이 미덕인 세상, 연극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상이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이지만 꿈은 꾼다는 것 자체로서 행복한 것. 꿈의 한 짝인 윤명숙에게 헌정한 1인극이 ‘어머니 날 낳으시고…’다. 배우 12년 차를 맞은 윤명숙을 위해 썼고 1996년 10월 첫 공연이 있었다. 변현주 배우가 입단하던 해였다. “키는 작았지만 무대에 서면 거구였습니다.” 변현주는 윤명숙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효로(曉露)를 별칭으로 쓰던 새벽이슬 같던 여자였다. 새벽이슬처럼 맑았지만 자신을 망가뜨려 가면서 어려운 이를 다독이던 여자였다. 윤명숙의 혼신이 담긴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국제연극평단 선정 ‘1996년 올해의 좋은 연극상’을 받았다. 1997년 공주 아시아 1인극제 참가, 1998년 목포 민족극 한마당 참가, 2000년 아시아문예센터 설립발기인모집 홍보공연을 거치면서 윤명숙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극단 새벽의 중심 레퍼토리가 됐다. 


변현주 씨는 연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에서 1인 9역을 소화하며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은 연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 공연 모습).

변현주 씨는 연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에서 1인 9역을 소화하며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은 연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 공연 모습).

▲ 변현주 씨는 연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에서 1인 9역을 소화하며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은 연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 공연 모습).


윤명숙 이어 ‘어머니 날 낳으시고…’ 출연 

윤명숙 다음이 변현주였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의 첫 출연은 윤명숙이 육아를 위해 장기 휴직 중이던 2005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윤명숙은 아프지 않았다. 그 뒤 2007년에는 윤명숙의 쾌유를 염원하며 다시 무대에 올랐다. 윤명숙 타계 이듬해인 2008년 소극장 페스티벌에 참가, 2009년 극단 새벽 창단 25주년 레퍼토리 기획공연, 그리고 8년 만인 올해 윤명숙 타계 10주기 기억공연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변현주는 윤명숙에 이어 연극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됐고 부산을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콧날이 시큰해지는 연극. 딸만 낳아 구박받은 어머니 이야기고 어머니 시대 이야기다. 연극의 반응은 남자 관객이 더 뜨겁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으로 남자의 오늘이 있음을 연극이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공연은 6월 1일부터 한 달간이었으나 마음 찡한 관객이 늘어나 7월 22일까지 연장 공연한다. 윤명숙 별칭을 딴 효로민락소극장(도시철도 2호선 민락역 2번 출구)에서 매주 목·금 오후 8시, 토 오후 5시 공연한다. 일반 2만5천원·대학생 2만원·청소년 1만5천원(15세 이상 관람). 5인 이상이면 20% 할인한다. 

※ 예매 문의 : 극단 새벽 (051-245-5919).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자
2017-06-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7년 7월호 통권 129호 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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