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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세계로 뻗어가는 해양수도 부산 관문

초량 이바구길·부산역·차이나타운 관광명소 즐비
우리 사는 부산 / ③ 동구

내용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부산을 찾아야 합니다.” 동구 산복도로 이바구 자전거를 운전하는 최정경(70) 선생의 지론이다. 최 선생은 베트남전 참전군인이다. 참전군인을 실은 군함이 출항했던 곳이 부산이고 그들이 월급으로 받은 달러화가 한국 경제발전의 종자돈이 됐으니 부산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일침이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파병군인과 원양어선 선원들, 파독 광부와 간호사, 1960∼70년대 그들이 벌어들인 돈이 한국의 오늘을 세웠단 사실을 어느 누가 부정할 것인가.

동구에서 바라본 부산항대교.

역사·문화 어우러져 이야깃거리 많아

동구는 참전용사 수송선이 출항했던 곳이다. 부산진역 뒤편에 있던 부산항 제3부두가 그 자리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33만5천517명의 병사들이 배를 탔고 5천99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배가 출항하는 날 부산항은 태극기 바다였다. 눈물바다였다. '살아서 돌아오라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부모와 자식은 눈물로 배웅했고 학생들은 태극기 흔들며 배웅했다. 반세기 전 풍경이지만 동구는 그 날의 격정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는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힘들었던 삶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지금은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가 됐다(사진은 초량 산복도로 전경).

동구는 이야깃거리가 널린 도시다. 동구 곳곳의 역사와 곳곳의 문화가 동구를 스토리텔링 도시로 일군다. 임진왜란 첫 전투가 벌어진 부산진성과 첫 전투 희생자를 기리는 정공단이 동구에 있고 서울에서 내려온 조선통신사 일행이 머물던 영가대가 동구에 있고 부산 3·1운동 도화선이 된 부산진일신여학교가 동구에 있다. 무엇보다 '부산'이란 지명의 원천이 동구다. 범일동 증산의 옛 이름이 부산이었다. 최근 이론이 불거졌지만 이론이 불거진 곳 또한 동구에 소재하니 이래저래 동구는 부산의 원천이다.

역사와 문화는 별개가 아니다. 둘은 맞물려 있다. 맞물린 중간에 윤활유처럼 끈적이는 게 있다. 민초들 땀내 나는 삶이다. 6·25전쟁 산물인 산복도로 땀내 나는 삶이며 일제강점기 매립된 범일동 매축지마을 땀내 나는 삶은 동구의 역사와 문화를 근육질이게 한다. 삶의 아픈 데를 보듬으며 민초와 함께했던 동구의 역사와 문화. 부산진역이며 부산진시장이며 조방이며 곳곳에 서린 땀내 나는 삶의 흔적들. 그 흔적들을 따라가면 동구의 역사와 문화가 보이고 부산의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힘든 시절 애환 간직한 산복도로·매축지 마을

동구는 애환 덩어리다. 애환은 슬픔과 기쁨. 슬픔에서 시작해 기쁨으로 이어진 삶이 똘똘 뭉친 데가 동구다. 시작은 밋밋했으나 끝은 창대한 곳, 동구. 밥그릇 국그릇 둘, 냄비 하나, 수저 두 벌로 살림을 시작한 신혼부부가 돈 모아 이사 갔다는 풍문이 심심찮게 들리는 곳이 동구 산복도로이며 고등고시 합격해 판사 검사가 됐다는 부러움 반, 시샘 반이 간간이 들리는 곳이 범일동 매축지마을이다. 비록 지금은 고달프지만 언젠가는 웃을 날 있으리라는 다짐과 믿음으로 똘똘 뭉친 곳, 그 곳이 동구다.

나에게도 동구는 애환 덩어리였다. 슬픔이 기쁨보다 월등하게 많았던 애환 덩어리였다. 동구에 살던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었다. 사는 게 슬프다고 여겼다. 사는 데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산진역까지 걸어갔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살 돈이 없었다. 걸어서 가리라. 걸었다. 범일동 '오버브리지'를 넘었다. 방학이라 성남초등학교 교정은 축구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조금만 보고 가리라. 벤치에서 스르르 잠들었고 눈 뜨니 저녁이었다. 배가 고팠다. 한나절 가출이었지만 가족 누구도 눈치 채지 않았다. 어디 다녀왔냐고 물어주지도 않았다.    

동구에 살아본 사람은 안다. 동구 산복도로 고지대에 살아본 사람은 안다. 여름 이른 아침, 해가 얼마나 방 안 깊숙이 들어오는지. 해 등쌀에 떠밀려 아침이 얼마나 일찍 시작하는지. 아침이 일찍 시작하는 만큼 동구의 하루는 길고 환하다. 길고 환한 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누구는 집을 사서 이사 가고 누구는 아이들을 일류대학에 보냈다. 모두가 동구를 환히 밝히는 아침 해의 기운 덕분이다. 동구 아침 해의 기운을 보러 부산 곳곳에서 동구를 찾아오고 전국 곳곳에서 동구를 찾아온다.

항만도시이자 개방된 도시 … 매년 차이나타운 축제 열려

동구는 일찍부터 항만을 끼고 발전했다. 부산 개항을 강화도조약에 따른 1876년으로 보면 중구가 가장 먼저이지만 두모포왜관이 설치된 1407년으로 보면 동구가 훨씬 앞선다. 왜관은 조선 조정에서 일본인이 무역을 하게 허용해 준 개항지의 관우(館宇 : 관청에서 지은 집)를 말한다. 왜관 일본인은 두모포에서 배편으로 일본을 내왕했으며 일본에서 오는 사람이나 물자 역시 두모포를 이용했다. 두모포왜관은 지금의 동구 수정동 일대다. 공식적으로 부산에 가장 일찍 세워진 등대도 1904년 8월 두모포 부산도등(導燈)이다.

청나라 영사관이 있었던 중국 화교학교와 그 일대 거리가 차이나타운특구로 지정됐다. '상해거리'로 불리는 차이나타운특구에서는 매년 가을 차이나타운특구 문화축제가 열린다.

청관(淸館)은 왜관(倭館)에 맞서는 지명이었다. 부산역 맞은편 중국 화교학교 자리에 1884년 청나라 영사관이 들어섰다. 영사관 주위에 중국인 점포 겸 주택이 들어서 이 일대를 청관거리라 불렀다. 지금도 중국요리집이 성업한다. 한때 텍사스거리로 불리다가 지금은 새롭게 단장해 '상해거리'로 불린다. 상해거리에선 매년 가을 차이나타운특구 문화축제를 연다. 이런 것 저런 것 감안하면 동구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항만도시며 개방형 국제도시라고 할 수 있다.

“마크 오른쪽은 부산의 관문으로서 해양으로 뻗어가는 동구의 미래상을 나타냅니다.” 동구의 개방성은 동구 상징마크에 잘 드러난다. 한자 동(東)을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한 마크다. 동구기획감사실 진순희 주무관은 마크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눠 설명한다. 적색 바탕 오른쪽은 부산의 관문으로서 5대양 6대주로 힘차게 뻗어 가는 미래상을 나타내고 청색 바탕 왼쪽은 부산포 발상지로서 정통과 역사성을 나타낸다. 적색은 혁신과 역동성을, 청색은 전통의 계승을 뜻한다. 타원형 마크의 가로 세로 비율은 7:6. 동구의 지형이 그렇다.

초량 이바구길 관광객 발길 이어져

동구는 타원형 도시다. 동쪽 경계는 동천이고 동천 너머는 남구다. 동북쪽 경계는 수정산과 구봉산. 너머는 부산진구와 서구다. 서쪽 경계는 영주천으로 중구와 접한다. 동구는 전체적으로 동남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배산임해의 경사지대로 산지가 많고 평지가 좁아 개발에 애로가 많다. 대부분 경사지대라 평탄할 시가지 조성이 어려웠기에 주로 초량천, 부산천, 호계천 등 하천과 구봉산과 수정산 골짜기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시가지의 1/3정도는 일제강점기 해안매립으로 조성됐다. 범일동 매축지가 대표적이다. 수정산과 구봉산을 등에 업고 천혜의 항만을 안은 동구. 동구는 진취적인 기세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된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바구 공작소에서 열리고 있는 어머니 사진전을 관람하는 모습.

선택된 땅 동구는 사람들로 붐빈다. 부산 곳곳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고 전국 곳곳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선택된 데에다 무에서 유를 일구어 내려는 동구민의 노력이 보태져 동구는 미래지향형 도시다. 아침이 일찍 시작되는 동구는 시야가 훤하다. 전망이 훤하다. 눈에 보이는 전망도 훤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망도 훤하다. 이른바 신생의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부산역 너머 해안 매립지가 꿈틀대고 산복도로 이바구길 산동네가 꿈틀댄다.

196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부산역은 경부선 열차의 시 · 종착역이다. 부산역 광장은 사시사철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부산역 너머 매립지는 북항재개발지다. 매립지는 어떻게 쓸지, 부두는 어떻게 쓸지, 부산역 철도시설은 어떻게 재배치할지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금 한창 궁리 중이다. 궁리가 끝나면 부산은 동구는 북항 앞바다 부산항대교처럼 시원시원해지리라. 위풍이 당당해지리라. 전망 좋고 찾아가기 좋은 친수공간은 부산의 랜드마크가 되고 동구의 랜드마크가 되어 부산 곳곳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고 전국 곳곳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지 싶다.

옛 북항 3,4부두 일대에 들어선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오는 7월 개장을 앞두고 시설 점검이 한창이다.

산복도로도 사람이 붐비는 곳. 동구에 산복도로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가 볼 만한 곳이 산복도로만 있는 게 아니지만 산복도로가 동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갈치 하면 '꼼장어' 그러듯 동구 하면 산복도로다. 그만큼 산복도로는 동구 명소다. 부산역 맞은편 '이바구 자전거 투어'를 이용하면 편하다. 부산역 7번 출구에서 출발해 동구와 산복도로 명소를 두루두루 돌아본다. 적벽돌 백제병원, 남선창고터, 김민부 전망대, 168계단, 이바구공작소, 장기려 기념관, 유치환 우체통 등등이 산복도로 명소다. 못 먹어 병이 난 환자에게 닭 2마리 값을 처방전 대신 내어 준 우리 시대 명의 장기려 박사 일생을 담은 비디오를 보고 나면 눈물이 찔끔 난다.

동구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광복 이후 귀국 동포들이 자리를 잡으며 형성된 마을이다. 옛 부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초량돼지갈비·범일동 빈대떡 등 먹거리 풍성

관광의 명소 동구. 동구는 또한 교육의 명소이며 문화의 명소이며 언론의 명소이다. 전통의 명문 부산고와 경남여고가 동구에 있다. 부산고와 경남여고 출신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공헌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부산 최초 문화회관인 부산시민회관도 동구에 있다. 별다른 문화시설이 없던 시절 시민회관은 부산시민의 문화 갈증을 축이던 감로수였다. 비운의 화가 이중섭과 그의 부인을 기리는 범일동 이중섭 거리와 마사코전망대도 동구를 문화 명소로 치켜세운다. 부산 양대 일간지 하나인 부산일보도 동구에 있다. KBS부산방송총국이 남천동으로 옮기기 전에 있던 곳도 동구였다. 두 언론사는 글로 말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부산 발전을 이끌었고 언론 발전을 이끌었다.

동구 좌천동은 가구거리로 유명하다. 매년 가을 '가구거리축제'가 열린다.

기업가부터 시인까지 동구출신 명사 많아

동구는 인물도 숱하다. 동구를 빛낸 인물은 동구청 홈페이지에서 나와 있다. 가나다순으로 몇몇 분을 소개한다. 1960년대 목재왕·수출왕·납세왕의 3대 왕으로 불렸던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 '찔레꽃'의 소설가 김말봉, 소설의 무대가 초량이었다. '기다리는 마음'의 김민부 시인,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나 부산고를 졸업했다. '철도왕' 박기종. 한국 최초 민족계 지방은행인 구포은행 설립자 윤상은의 장인이다. 윤상은은 부산대 초대총장 윤인구 박사 부친이다.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옥중단식으로 순국한 박재혁 의사.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난 독립투사 최천택. 항일운동을 주도한 일신여학교 1회 졸업생 양한나. 4·19혁명 공간에서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던 허정.

금강산도 식후경. 동구는 시장이 많고 맛집이 널렸다. 부산진시장과 남문시장, 초량시장, 수정시장 등 여기저기 시장 안 맛집과 시장 바깥 맛집은 저마다 개성으로 식객을 유혹한다. 부산역에서 가까운 초량돼지갈비골목은 캐러멜 소스가 일품이다. 고소하면서 감치는 맛이 단골을 끌어모은다. 영화 '친구'의 주무대였던 범일동과 좌천동 일대도 맛집이 널렸다. 범일동 빈대떡은 호사가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좌천동 하면 가구거리. 도로 양쪽에 가구점들이 늘어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를 부른다. 매년 가을 가구거리축제를 연다. 범일동 조방 일대에서 매년 늦가을 열리는 축제 이름은 '이끌리네축제.' 조방거리와 시민회관 앞에서 열린다. 초량골목축제도 볼 만하다. 올해는 6월 12일부터 사흘간 전통시장과 이바구골목길에서 열린다.

작성자
동길산 시인
작성일자
2015-06-1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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