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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마이 생각나 마이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 장려상

내용

“이 할마이는 말도 똑띠 할 줄 모르노?”

내가 쿄코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6살 때였다. 일본어를 전혀 몰랐던 당시의 나는 “げんきなこだよ!”(건강한 아이네)라며 일본어로 말을 거는 쿄코 할머니를 말도 할 줄 모르는 할머니로 정의하고 말았다. 이런 나의 악의 없고 무식한 결론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고 한다. 당시 쿄코 할머니는 우리 집 근처 이웃집에 지인분이 계셔서 한국에 잠시 머물고 계셨다. 할머니는 말이 많이 없는 편이셨고 부산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기 보다는 바닷가에 나가 짭짤하고 청명한 바닷바람을 가만히 쐬고 오시는 일이 많았다. 할머니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셨지만 일상 소통은 가능한 편이셨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일본 유학을 다녀오셔서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나는 이따금씩 쿄코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지만(오히려 아이 때는 언어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것 같다) 함께 소꿉놀이도 하고 집의 작은 마당에 있는 텃밭에서 몽실몽실하게 살 오른 꽃다지(오이, 가지, 호박 등의 첫 열매)를 따서 나눠먹기도 했다.

서울에 계시는 외할머니와 비슷한 쿄코 할머니가 점점 좋아졌던 나는, 외할머니와 했던 것처럼 찹쌀떡을 가져와 마당 평상에 함께 앉아 바람을 맞으며 햇살 한입 찹쌀떡 한 입씩을 베어 먹곤 했다. 쿄코 할머니도 나를 친손녀처럼 예뻐 해주시며 함께 곧잘 놀아주셨다. 한 달이 넘게 함께 지내면서 특별한 호칭도 생겼다. 쿄코 할머니는 나의 이름과 비슷한 일본어로 치에짱이라고 불렀고 나는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마이에서 쿄코 할머니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이로 줄여서 마이상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한 달 남짓 이웃집에 머무셨던 쿄코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띠시며 일본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 속에 남겨졌다. 그 때의 기억이 매우 즐겁고 강렬했던지 명랑한 부산 사투리 꼬마에서 중학생 그리고 어엿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따금씩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봄, 고등학생이 된 나에게 쿄코 할머니의 소식이 날아왔다. 일주일 뒤에 부산에 다시 오시는데 기회가 된다면 치에짱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해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송함과 슬픔이 남아있던 내게, 외할머니와 닮은 쿄코 할머니의 한국 방문은 그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주일 뒤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셨다는 말을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듣고 해운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어머니와 함께 정말 오랜만에 쿄코 할머니와 할머니 지인 분을 ??다. 할머니는 거의 10년 만에 보는 나를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셨다. 할머니는 예전보다 훨씬 야위여보였다. 내 마음 한켠이 찡했지만 여전히 곱게 빗으신 머리와 옅게 띄시는 미소가 너무 좋았다. 아직 많이 서툴기는 했지만 제2외국어 영역 교과목 수업으로 일본어를 들었던 나는 띄엄띄엄 할머니와 일본어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함께 점심을 먹고 해운대 경치를 배경 삼아 옛 이야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정말 오랜 전 일인데도 기꺼이 자신을 만나러 와주고 반가워 해줘서 고맙다는 쿄코 할머니께 너무 보고 싶었고 몇 년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이상의 부름이 더욱 반가웠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잠시 나를 촉촉한 눈길로 바라보시더니 일본에 돌아가시기 전에 오륙도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차를 타고 오륙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작은 배에 하나 둘씩 올라탔다. 아주 어릴 때 오륙도를 보기 위해 와서 배를 타본 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때는 날씨가 화창한 편은 아니어서 오륙도의 명성대로 섬이 5개로 보였다. 그래서 언제 날씨가 좋으면 꼭 다시 와서 6개 섬을 다 봐야지 다짐했었다. 이윽고 배가 출항했고 천천히 물살에 흔들리며 바다 위를 헤엄쳐갔다. 마이상은 배 위의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닷바람을 스치시는 듯 했다. 춥지 않으시냐는 나의 물음에 옅은 미소를 띠시며 부산 바다의 바람이 좋으시다고 하셨다. 얼마 후 화창한 날씨에 오륙도가 눈앞에 펼쳐지자 나는 신이 나서 할머니께 오늘은 6개의 섬이 모두 모여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우리 외할머니도 5개 섬밖에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많은 시간동안 한 번 더 함께 오지 못해 너무 죄송스럽고 슬프다고도 약간 목이 메며 덧붙였다.

쿄코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사실 예전에 지금 내 또래보다 조금 더 큰 손녀가 있으셨단다. 그 손녀는 대학생 때 한국에 놀러 왔다가 옛 건축물이 많은 서울도 좋지만 부산의 바다가, 짭조름하면서 청명한 바람이 그리고 구수하고 순박한 부산사람들이 너무도 좋아서 자주 놀러 오곤 했더란다. 그렇게 부산에 놀러 왔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아름다웠던 해운대, 어떤 날은 5개 어떤 날은 6개로 보이는 오륙도, 다람쥐가 넘나드는 금정산 등을 조잘대며 쿄코 할머니께 얘기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학기가 개강하기 전에 할머니께 한번 부산에 같이 다녀오자던 손녀가 저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할머니 곁을 떠나버리게 되었다.

손녀를 떠나 보낸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할머니는 손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부산을 방문하게 되었고 손녀의 명랑한 어린 시절 같은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에 처음 부산에 왔을 때에는 의욕도 없으시고 부산의 풍경이 그리 와 닿지 않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밝고 명랑한 어린 시절의 손녀같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함께 찹쌀떡을 먹자며 안기는 나를 보면서 당신 스스로가 손녀를 마음속에서도 떠나 보내려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손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어 할머니에게 위로와 치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손녀가 5개 밖에 보지 못했다던 오륙도를 보러 가시게 되었는데 처음 보러 가시던 날. 할머니는 6개 모두 볼 수 있었다. 그 때 머리를 울리는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항상 섬은 6개인데 안개 낀 날은 보지 못하고 화창한날은 볼 수 있는 것처럼 비록 곁에는 손녀가 없지만 슬픔을 걷어내고 보면 할머니의 마음속에 그리고 추억 속에 항상 존재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 깨달음으로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치에짱도 외할머니가 곁에서 떠나셨다고 해도 그 물리적 거리감에 슬퍼하지 말고 항상 치에짱의 마음속에 살아계시니 그 추억을 감사하고 가끔씩 이렇게 꺼내보며 되새기고 계속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면 슬프니까 그 슬픔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움에, 깊은 깨달음에 그리고 이따금씩 옅은 미소를 띠시던 마이(쿄코 할머니)상의 슬픔과 사랑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쿄코 할머니의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마이(쿄코 할머니)상의 따뜻한 손이 토닥토닥 내 왼쪽 어깨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짭조름하고 청명한 부산의 바닷바람이 토닥토닥 내 오른쪽 어깨를 머물며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깨달음을 주신 쿄코 할머니는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가시고 어느덧 대학생이 된 나는 졸업 작품 전시회를 보러 해운대역에 내렸다. 바닷바람만 스치면 마이(많이의 사투리) 생각나는 우리 마이상. 여전히 사랑스런 부산 바닷바람의 공기를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 마음속 두 할머니를 생각하고 사랑하며 활기찬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다운 우리 부산에서.

작성자
하지혜
작성일자
2013-11-2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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