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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巨坪里(거평리)와 大堤里(대제리)에서 따 온 ‘巨堤里(거제리)’

부산의 지명 유래 - 거제동(巨堤洞)

내용

1740년 발간의 ‘동래부지(東萊府誌)’의 각면각리원근정도(各面各里遠近程道)를 밝힌 자를 보면 그때의 각 면은 읍내면(邑內面)·동면(東面)·남촌면(南村面)·동평면(東平面)·사천면(沙川面)·서면(西面)·북면(北面)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면은 그 당시 동래도호부(東來都護府) 관아 건물(官衙建物 : 오늘날의 동래구 수안동 421∼56번지) 서쪽 지역이라 하여 서면이라 했는데 그 서면에 大鳥里(대조리)가 있다. 이 대조리를 ‘동래부지’는 거관문3리(踞官門三里)라 하였다. 이 말은 당시 동래도호부 관아의 정문(正門)에서 3리 떨어진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대조리의 중심 지역은 오늘날의 연제구 거제동의 부산교육대학교 주위쯤의 자리가 된다.

그리고 ‘동래부지’의 같은 자리에 居伐里(거벌리)가 있는데 이 거벌리는 거관문5리라 하였다. 그러니 거벌리의 중심지역은 오늘날의 부산광역시청자리와 거제리 시장자리쯤이다. 그 당시는 연산동이라는 행정동명이 생기기 전으로 오늘날의 연산동 지역 대부분이 거벌리에 속했다.

이 대조리도 거벌리도 순수한 우리말과 연관된 한자표기다. ‘대조리’는 ‘큰(大:한) 새(鳥)’에서 온 말이다. ‘큰새’는 ‘한새’다. 이 ‘한새’의 ‘한’이 소리바뀜으로 ‘황’이 되어 ‘황새’가 되는데 이것은 ‘큰소(大牛)’인 ‘한소’가 ‘황소’가 된 것과 같다. 오늘날의 교육대학 주위는 50∼60년 전만 해도 늪지대가 되어 황새가 계절 따라 찾아들었다. 그래서 황새벌(한새벌)이라 한 것을 한자로 마을 이름을 쓰자니 大鳥(대조)가 되어 大鳥里(대조리)가 되었다.

居伐里(거벌리)는 ‘벌(벌판)의 곳’이라 하여 한자로 맞추어 붙인 것이 居伐(거벌)이었다. 사실 산간(山間)지역인 옛 동래의 거제동·연산동 지역은 큰 벌판이라 할만 했다. 그래서 그 居伐(거벌)이 ‘클 거(巨)’의 큰 벌인 巨伐(거벌)로 바뀌었다. 이는 1899년 편찬의 ‘동래부읍지’가 居伐(거벌) 아닌 巨伐里(거벌리)로 표기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大鳥里(대조리)는 옛 그대로 大鳥里(대조리)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1904년의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家戶案)을 보면 서상면(西上面)에 巨坪里(거평리)가 나오면서 巨伐里(거벌리)가 없어진다. 이 거평리의 坪(평)은 ‘벌판 坪(평)’으로 한자가 가진 ‘벌’의 본뜻을 찾아 쓴 것이다.

그리고 大鳥里(대조리)가 없어지고 大堤里(대제리)가 나온다. 이 대제리는 그 동안 황새(大鳥)가 찾아드는 것이 줄어든 대신 동래천의 대조리 쪽에 둑(堤防)을 크게 쌓아서 둑 제(堤)의 대제리(大堤里)가 된 것이다.

그러다 1914년의 지방제도의 개편 때 巨坪里(거평리)와 大堤里(대제리)의 ‘堤(제)’를 따서 巨堤里(거제리)가 되었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2002년 1·2월호
작성일자
2013-03-1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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