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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스물둘보다 빛나는 사치, 부산 불꽃 축제

내용

불꽃이 아름다운 것은 스물둘의 청춘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직 소녀인 줄 알았으나 어느 순간 청춘이 된 것처럼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찬란하지만, 돌아보면 찰나의 순간이다. 솟아오르는 불꽃은 이십 대의 오만함과 닮았다. 난폭하게 솟구치고, 절정에서 망설임도 없이 펑! 그러나 불꽃도 꽃이기에 낙화하고, 현실은 추락이고, 추락이지만 실패가 아니라서 서글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불꽃이 예쁜 것은 떨어지기 때문이고, 이십 대의 눈물이 아름다운 이유도 떨어지는 그 순간 반짝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떨어지는 불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넓은 바다는 어서 스며들라고 환영하고, 높은 하늘은 이제 겸손해지라며 별빛들을 보내며, 우리들은 경외의 탄성을 내지른다. 그렇게 이십 대는 요란하게 현실에 적응한다.

이렇듯 역시 불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스물둘의 사랑과 너무나도 같기 때문이다. 불꽃의 반짝임과 “펑!”하는 소리가 일치하지 않듯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조금 늦고, 그 반짝임마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만, 강렬하다. 별보다도 반짝일 수 있는 것은 서투른 열아홉의 첫사랑이 아니라,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객기 넘치는 스물둘의 연애이기에 가능하고, “반짝”이 아니라 “번쩍”하고 소스라치는 대신, 깊은 잔상을 남긴다. 넘치던 말들을 파도에 던져버린 듯 서로 아무 말이 없어도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주고, 밤하늘이 다시 일상을 재촉하는 그 순간 허무한 것을 알면서도 다시 반복하게 한다.

내가 먼저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틈만 나면 함께할 기회를 노렸으나 계절만 여름에서 가을로 함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이고 싶었고, 바람대로 친구가 되었으나 이제는 친구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지 못하던 날들이었다. 어떻게 하다 단둘이 광안리에 가게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상에서 광안리까지 한 시간을 서서 간 만원 버스가 몹시 날아갔던 기분의 기억이 난다.

인파로 가득한 백사장 옆 도로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모든 사람들이 들뜨고 어수선했다. 드라마처럼 로맨틱한 데이트를 꿈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뒤에 서 있던 아저씨와 아줌마는 우리를 자꾸 밀었고, 내 앞에 있던 아이는 아빠의 목마를 타고 있어 광안대교 아랫부분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첫 폭죽이 터지고, 놀랐고, 예뻤으나, 시끄러웠고,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 그 애와 떨어져 혼자가 될까 봐 하늘을 볼 때마다 전전긍긍했다. 내가 생각하던 불꽃축제가 아니었다.

불안한 아름다움 속에 유난히 불꽃 하나가 높이 날아오른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였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생각은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손가락은 태연한 척했다. 까칠까칠하지만 따뜻한 촉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번쩍” 정적이 흐르고 사람들이 모두 하늘만 바라볼 때 나는 그를 바라봤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도 꽃이 덮이고 있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초가을인 줄 알았는데, 밤하늘이 완연한 가을이었다. 그가 내 손을 잡은 뒤에야 내 손이 몹시 시리다는 것을 깨달았고 점점 미지근해질 그의 손을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때부터 높은 하늘을 마음 놓고 보았다. “펑!”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카페를 통째로 빌려 근사한 이벤트를 해 준 것도 아니고, 분위기 있는 음악이 배경에 깔리며 화려한 꽃다발에 두꺼운 금반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스물둘의 우리는 돈이 없었고, 로맨틱한 멜로영화를 촬영하기에는 우리의 무뚝뚝한 부산사투리가 시트콤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을이 있었고, 광안대교를 멋지게 드라이브할 차는 없었지만 만원 버스를 함께 기댈 젊음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선수인척했으나 사실은 짝사랑이던 첫사랑을 제외하면 연애경험 전무한 순진하고 순수한 청년들이었고,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불확실한 꿈으로 만들어진 열정만 가득 찬 윤똑똑이들이었다. 반짝거리며 요란하게 터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에도 쓸모없는 불꽃과 똑같은 입장이었다.

각종 단체에서 경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하늘에 그렇게 많은 돈을 터뜨려 버리느냐고, 그 돈으로 차라리 독거노인이나 결식아동들을 도와주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불꽃축제야말로 누구에게나 베푸는 인심 좋은 잔치라고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늘을 보는 것에 돈을 낼 필요가 없고, 광안대교를 건너는 것은 천원이더라도, 황홀하게 바라보는 것은 공짜니까. 콘서트처럼 비싼 티켓을 사야 할 필요도 없고, 어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심각하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당시 가난했던 우리는 시작하는 사랑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금반지 대신 내 손에 끼워진 그의 손가락이 내 가슴을 부풀게 했고, 분위기 있는 음악 대신 사람들의 함성과 불꽃 터지는 소리 덕분에 내 심장은 더 크게 뛸 수 있었다. 소박한 우리들을 위해 부산시에서 마련해준 거창한 축제였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정말 준비 할 것은 없다. 버스를 타고 가서 하늘이 잘 보이는 백사장에 적당한 곳으로 자리 잡은 뒤 두 눈 크게 뜨고, 그저 바라보면 된다. 축제 같은 20대를 거치지 않고 기성세대가 된 어른이 없듯, 불꽃축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축제이고, 준비 없이 20대를 맞닥뜨렸어도 우리는 잘 이겨냈듯이 눈앞에 닥치는 불꽃을 그저 반갑게 맞이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꽃에 열광하고 감동받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곧 나도 저 불꽃처럼 화려하게 솟아오를 수 있을 것 같기에, 또는 지금 내가 저렇게 피어나고 있어서, 아니면 한 때는 나도 저렇게 찬란한 젊음을 보냈던 적이 있기에. 20대와 불꽃축제는 비상(非常)한 비상(飛上)부터 찬란한 낙화까지 쌍둥이처럼 닮았다.

대학 졸업과 사회생활을 코앞에 두었던 우리는 열정과 꿈을 등에 지고 각자의 바다를 향해 과감히 뛰어들었다. 차가운 현실 앞에서 터져버린 불꽃처럼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나고 침전하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는 그리 오래 사귀지 못했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던 시기였다. 그때는 그것이 좌절이라 생각했으나, 돌이켜보면 별보다 더 빛나게 바다로 스며들던 때였다. 떨어지고 있어서 떨어지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두워질수록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사라져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듯, 우리는 자연스럽게 반들거리는 별빛의 일상으로 나이 먹어 갔고, 요란한 통과의례를 우리만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이번 불꽃축제에는 프러포즈 이벤트를 한다고 한다. 함께 하는 일상을 시작할 그대들이 얼마나 행복할지 내가 다 설렌다. 주인공은 프러포즈 이벤트에 당첨된 연인들만이 아니다. 그때 나를 그렇게 밀던 아줌마도 남편 손을 잡은 채 좀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랑이었고, 그 남편은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은 여동생의 손을 잡고, 그 여동생은 훗날 내가 받았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의 손바닥에 온기를 전해 줄 것이다. 그리고 불꽃이 내리는 순간 모두 두근거리는 청춘의 주인공이 될 것이기에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이다.

그동안 스물둘이던 나는 스물여덟이 되었다. 광안대교는 언제나 젊음으로 북적이고, 불꽃축제는 여전히 화려하고, 나는 청춘이라는 울타리에 꽤 깊숙이 들어왔으나, 아직은 청춘이기에 아직도 돈이 없고, 차도 없고, 사투리도 고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하늘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왔고, 광안리 앞바다는 떨어지는 꽃송이들을 받으려 부산을 떨고 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밀고 밀리며 사랑꽃을 나눌 것이고, 때마침 바람은 더 차가워질 것이니, 나는 다시 한 번 어수선한 스물둘을 기대한다. 이번에도 그가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작성자
강선영(부산시 학장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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