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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그 남자, 경상도 사나이가 광안대교 주변을 한없이 헤맨 까닭은?

내용

2005년 6월 20일.

시간은 어느덧 밤 8시를 넘어가고 있다.

“아이고 참.... 여기 같은데.....도대체 어디로 가야되노...?”

벌써 30분 째 차를 몰며 미안한 듯 어색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도대체 어디 가려는데 이렇게 헤매요?”

옆에서 보다 못한 내가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니.... 광안대교 야경이 억수로 이쁘다 카길래 오늘 한번 같이 보고 싶어서.....”

키 182cm의 건장한 체격의 그는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이다.

2003년 초에 개통된 광안대교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웅장한 규모와 함께 밤이 되면 찬란한 조명이 어우러져 빼어난 야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때문에 당시 부산시민은 물론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관광 코스 중의 하나였다. 평소 운동선수를 연상케 하는 큰 덩치와는 반대로 외출을 좋아하지 않는 비활동적인 그였기에, 이 곳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부산지리에는 도통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낯선 동네를 야간에...... 그것도 당시 네비게이션도 없던 초보 운전자에게 광안대교 들어가는 진입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계속 광안리 해변 도로만 빙빙 돌기를 몇 번째.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고 나의 정신은 넘쳐나는 짜증과 허기로 마침내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아니, 모르는 길이면 묻기라도 하던지, 아니면 확실히 알고 나서 오던지... 도대체 몇 번째 빙글빙글 돌기만 할 거에요?”

“......”

얼굴이 벌게진 그도 답답한지 결국 광안리 해변 저 끝의, 하필이면 폐허를 연상케 하는 공사 중인 건물 앞에 차를 세운다. 시간은 벌써 9시를 향해 간다.

오늘은 내 생일.

결혼 전  마지막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부모님과의 저녁 약속시간이 바로 9시였던 탓에 마음이 조급했던 나였다.

“길도 제대로 모르면서 퇴근 후 부모님과의 약속시간도 빠듯한데, 왜 굳이

광안대교 야경을 보러오자는 거에요?!”

“미안해요....”

“도대체 뭣 때문에 지금 여기 이렇게 있냐구요!”

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앙되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광안대교에서 당신에게 꼭 할 말이 있어서....”

“아 그 말이 도대체 뭐냐구요?!”

“우리가......결혼날짜는 잡았지만, 내가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못했잖아요. 그래서.... 오늘 광안대교에서 꼭 하려고 했는데..... 긴장하고 조급하니 더더욱 길을 못 찾겠어요.... 미안해요...”

그랬구나.... 그는 밤하늘의 별빛이 스며드는 멋진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근사하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산 토박이인 우리는 같은 과 캠퍼스 커플로 만나 8년간의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으려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이 순간을 그는 광안대교에서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진심을 안 순간 뜻하지 않은 웃음이 터졌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나의 눈동자엔 어느새 하트 뿅뿅이 그려졌다.

“그러면 진작 이야기를 하지...”

지금껏 그의 속도 모르고 무작정 화를 낸 것이 미안했다.

“어차피 광안대교 진입로는 오늘 안에 못 찾을 것 같고, 대신 광안대교가

 훤히 보이는 광안리 백사장에서 프러포즈 해주세요.”

“진짜 그래도 되겠어요?”

그의 표정이 금 새 환~하게 변한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며 얼른 차 트렁크에서 이것저것을 꺼내기에 분주하다.

평일임에도 초여름의 밤바다를 즐기러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몹시 수줍어하며 떨리는 손으로 케이크를 꺼내고 그 위에 정성스레 초를 하나 두울 꽂기 시작한다. 한 빛, 두 빛...... 초의 빛이 조금씩 우리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뜻하지 않은 바다 바람에 케이크의 촛불이 모두 다 꺼져버린 것이다. 그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붉게 달아올랐다. 다시 초를 밝힐 성냥도 없었다.

아.... 날씨마저 그를 돕지 않는 지독한 하루다.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청년이 다가와 그의 손에 무엇을 쥐어준다.

 “저기 남자분 이거 쓰세요.”

때마침 건네준 청년의 라이터 덕분에 다시금 프러포즈는 진행될 수 있었다. 주위엔 어느새 많은 분들이 모여들었고, 그는 용기를 내어 더듬더듬 준비해온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나의 사랑하는 미진씨에게. 지난 8년간의 시간을 함께 했지만 이렇게 고백하려니 정말 많이 떨리네요. 특별할 것 없는 저를 선택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을 살면서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고 열렬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미진씨... 저랑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주위의 많은 시선과 한껏 긴장하며 적어온 편지를 읽은 탓에 그의 편지낭독은 마치 초등학생 1학년의 국어책 읽기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어색함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편지를 읽는 내내 주변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문장이 끝을 맺은 순간 모두 하나가 되어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잘 사세요!”

“결혼 축하해요!”

비록 계획대로 프러포즈를 하진 못했지만, 그의 어설픈 길 찾기 덕에 나는 어느새 많은 시민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은 멋진 프러포즈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케이크와, 편지, 선물 등을 한 아름 안고 시민들에게 수줍은 감사의 눈인사를 전했다. 많은 분들의 축하와 함께한 그날의 이벤트는 정말 최고의 프러포즈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 틈에 시간은 벌써 열시를 향해간다. 늦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부모님께 서둘러 달려가야 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에게 물었다.

“있잖아요, 그냥 광안리 바닷가에서 프러포즈해도 되는데 왜 굳이 광안대교

에서 하려고 했어요?”

 “그게......”

사연은 이랬다.

이벤트에 약한 그는 프러포즈 방법에 대해 회사 직원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란다. 그때 한 과장님께서,

“경상도 싸나이 별거 있나? 일단 광안대교 가라!

혹시나 프러포즈 거절하면 고마 무조건 뛰어내린다고 해뿌라!”

“맞다! 맞다!”

“그라믄 무조건 OK 하겠네”

경상도 사나이들의 만장일치 조언이었다.

“하하하”

뜻밖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나는 또 한 번 박장대소했다. 나의 큰 웃음소리에 그는 더 무안해했다. 소박하나 결코 가볍지 않고, 투박하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진실한 그의 마음이 어느새 광안리 파도가 되어 그날 밤 내내 나의 온 몸을 흠뻑 적셨다.

2012년의 햇살 좋은 주말.

“엄마, 빨리 가자! 바닷가 가자!”

토요일 아침부터 5살, 3살 두 딸들의 성화에 이른 잠을 깬다.

“얘들아, 엄마 잠 좀 더 자면 안 돼?”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사정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엄마, 바닷가! 광안리! 광안리!”

해운대, 송정, 일광 등 부산의 바다를 두루 다녔건만 유달리 광안리를 좋아하는 공주들이다. 하릴없이 우리 부부는 올해 장만한 그늘막 텐트, 모래놀이 장난감, 간식 등을 챙기며 나들이 준비를 서두른다.

그 날의 프러포즈는 우리 부부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선물해주었고,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쁜 두 딸을 우리 품에 안겨주었다.

결혼 전 평생에 한번 받는다고 생각하는 프러포즈.

하지만 나는 아니다. 여전히 부산에 살고 있는 덕분에 오며 가며 광안대교를 지날 때, 오늘처럼 가족끼리 광안리 바닷가를 찾을 때, 아니면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길 때 광안리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그 당시 프러포즈의 감동을 그대로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10월 23일은 우리 부부의 만 7년째 되는 결혼기념이다. 행운의 숫자 7을 기념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우리의 사랑을 기약하며 광안대교 한 가운데에서의 리와인드 프러포즈를 다시 한 번 꿈꿔본다.

그때의 다짐처럼 한결같이 사랑해준 대희씨, 이번 프러포즈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작성자
허미진(부산시 주례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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