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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끝나지 않은 마라톤

내용

2012년 10월 14일. 마라톤을 시작한 지 1572일.

마라톤을 달리고 있다. 그리움을 운동화에 달고 '첫째 박송이'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마라톤이 시작된 지 1572일. 2008년 6월 25일, 오후 4시 47분. 엄마의 친구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평소 집 전화는 잘 쓰지 않던 터라 집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다. 그 날 울린 전화 벨소리 소리는 무척 컸고 안 받을 수 없었다. 기다리던 동생의 전화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엄마 친구였다. 다급한 엄마 친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송이야, 엄마가 전화할 상황이 못 되서 아줌마가 전화했다..'

직감적으로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적중했다.

2008년 6월 15일 새벽. 삼촌 병원에 있던 동생에게서 집으로 온다는 전화가 왔다. 늦은 새벽이었고 빨리 귀가하라는 재촉을 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동생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새벽에 통화한 전화가 마지막 전화가 되었다. 애가 타도록 동생에게 읽지 않은 메일과 문자, 음성 메시지를 남기며 기다렸고 동생이 돌아온 것은 10일 만이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동생은 묵묵히 방으로 들어가 내가 사준 옷을 꺼내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섰다.

“야! 니 어디에 갔다 왔는데? 얼마나 다들 걱정했는지 아나! 도대체 어디 갔다 왔노?”

“........”

“어디 갔다 이제 와서는, 또 어디 가는데?”

“마라톤 간다.”

“마라톤..?”

“어. 내 마라톤 간다. 나중에 보자.”

마라톤 복장이 아닌 내가 사준 제일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더니 마라톤이란다. 이상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렇게 마라톤을 간다며 집을 다시 나갔다.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 한참을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찾아나선지 한참이 되도록 동생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생은 떠났다. 멀리. 꿈은 현실이 되어 동생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온다던 동생은 사고를 당해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사고를 당한 동생에게 지갑을 찾지 못해 신분 확인이 늦어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 10일 만이었다. 그 10일 동안 가족들은 동생의 행방을 찾아 친구, 학교, 주변을 다 수소문 하며 기다렸지만 돌아온 소식은 동생의 떠남이었다. 그렇게 2008년 6월 25일 동생의 소식은 가족들을 큰 슬픔에 빠트렸다.

맞벌이 부모님 때문에 동생과 나는 어릴 적부터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아빠, 엄마가 되어 동생을 꾸짖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말동무가 되기도 하고, 때론 여동생이 되어 떼를 쓰고 보살핌을 받기도 하였다.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같이 나온 우리는 쌍둥이 남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닮았고 붙어 다녔다. 그런 동생이 어느 날 말도 상의도 없이 멀리 돌아올 수 없는 마라톤을 가버렸다. 동생이 시작한 마라톤의 끝은 하늘이었고, 하늘을 아직 갈 수 없는 가족들에게 그것은 힘든 현실이었다.

준비된 이별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 그리고 나는 동생의 떠남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때 막 대학생이 되었던 나에게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은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슬픔을 맘껏 표현할 수 없는 남은 자식의 몫은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큰 소리로 말을 하고 더 큰 소리로 웃으며 아빠, 엄마를 대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고 친구들과 놀고 싶다며 여행을 다녔다. 전보다 더 활기차게 대학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불편하듯 억지로 말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웃는 것이 어려워져서 더 이상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휴학을 했다.

휴학한 1년 동안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동생의 빈자리가 컸고 동생의 첫 기일이 다가오기도 했다. 1년 동안의 시간에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스스로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울다가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이고 또 울다가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이고. 그렇게 반복하며 지내기를 수개월. 동생이 찾아왔다.

“야! 니 어떻게 된건데? 나는 니가 죽을 줄 알았잖아.”

“..........”

“왜 또 말이 없는데? 얼마나 보고 싶은 줄 아나?”

동생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과자를 탑처럼 쌓아서 방에 놓았다. 동생을 따라다니며 이 과자는 뭐냐고 계속 물었지만 동생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앉아 내 옆을 지키던 동생은 내가 잠들자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동생은 없었다. 꿈이었다. 이따금 동생은 꿈에 찾아왔다. 혼자서 무서움을 느낄 때면 찾아와 침대 맡에 앉아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렇게 동생은 힘이 들 때면 찾아와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 번도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동생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이 떠난 현실은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 힘들었고 점점 우리 가족에게 갑자기 닥친 불행에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보낸 1년의 시간이 지나 학교를 다시 찾을 땐 동생 또래들을 보며 그리움이 가득 찼다. 동생의 절을 찾아 동생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울며 잠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동생은 여느 때처럼 찾아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동생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언제 시작할거고?”

“뭐가?”

“나는 마라톤 다 완주해서 잘 쉬고 있다. 누나 니는 언제 시작할거고?”

“니 보러 오라고?”

“그래, 내보러 와야지.”

“나도 하고 있다. 니 생각하면서 마음으로는 늘 마라톤 중이다. 금방갈게. 혼자 심심하제?”

“안 심심하다. 그러니까 천천히 온나. 아빠랑 엄마랑 좋은 거도 많이 보고, 누나 니 좋아하는 치킨도 많이 묵고 온나. 자꾸 질질 짜지 말고. 돈 좀 많이 벌어서 양손 가득 무겁게 온나.”

동생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을 했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생이 갑자기 꺼낸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매일 울고 불며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동생이 꺼낸 말. 누나가 많이 걱정되었나 보다 이 녀석. 동생이 묻던 마라톤.

나는 마라톤을 달리고 있다. 동생이 기다리고 있는 완주의 도착점을. 하지만 천천히 가기로 했다. 동생 대신 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마라톤의 도착점을 찾지 못하던 나에게 동생은 그만 기운 내어 동생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도 않도록, 더 반갑도록 마라톤의 도착점을 일깨워 주었다. 고맙다. 끝나는 않는 마라톤, 나는 그것이 그리움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동생을 다시 멋지게 만나기 위해 그리움은 운동화에 달아두고 힘내서 완주의 길을 달릴 것이다. 나의 마라톤은 계속해서 ing 중이다.

작성자
박송이(부산시 감천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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