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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꽃과 태양, 시원始原으로의 회귀… 화가 김문수

예술부산 ‘예인탐방’ 26. 서양화가 김문수

내용

흑룡의 해 임진년 새해 초입은 용의 비늘처럼 날카로운 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다. 하지만 수영구 남천동에 소재한 김문수 화백의 작업실엔 타오르는 태양과 그 태양을 향해 맹렬하게 솟구치는 오방색의 꽃과 나무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추위와 나이를 잊은 김문수 화백의 열정이 이 역동적인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1936년 울주군 농소면 중산리(지금의 울산시 북구 중산동)에서 태어난 소년 김문수의 꿈은 군수가 되는 것이었다. 시골마을의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으니 총명했던 소년이 입신양명의 의무를 가져야 했던 건 그 궁핍했던 시대의 책무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러니 소학교 시절 일본인 선생이 칭찬해 마지않았던 글과 그림에 관한 재능은 당시의 소년에게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자 책무이기도 했던 입신양명의 길을 찾아 부산으로 온 소년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을 대신해야 했던 소년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부산사범대학 미술과에 진학하게 된다. 변변한 미술수업조차 받지 못했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재능만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어린 시골 소년에게서 일찌감치 예술가의 재능을 발견했던 일본인 교사의 눈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중등학교(당시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그림에 몰두했던 화가 김문수의 작업은 당시의 조류에서 그리 어긋나지 않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풍경화였다. 특징이라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시골의 정감 어린 풍경들 중에 유독 초가집을 주소재로 그려왔다는 점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근대화, 산업화에 떠밀려 사라져가는 초가들을 굳이 전국을 누벼 찾아다니며 그려온 데는 화가 자신의 의식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는 농촌공동체 특유의 인간적인 삶에의 그리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초가를 그저 풍경을 일부로 다루는 작업과 초가집에서의 삶이 자신의 뼈 속 깊숙이 육화되어 있는 화가의 내면이 인식하는 초가의 풍경은 당연히 변별성을 가진다. 화가 자신이 살아왔던 농촌공동체의 삶, 궁핍했으나 이기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 사계절 풍부한 자연의 기운 아래에서 인격과 감성을 배우고 깨우친 시간들은 신산하기 그지없었던 도시적 삶의 방식들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날로 발전을 거듭해가던 산업화, 근대화의 시대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인간의 소중한 미덕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88년 네 번째의 개인전을 연 이후 화가 김문수의 작업은 변화를 갖게 된다.

자신의 지적, 감성적 바탕이 된 인식, 즉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던 고향에의 그리움은 그대로이되 표현방식은 사실주의적 화풍을 떠나 과감히 단순화한 묘사, 과감한 화면분할, 강렬한 색채로 원근법을 무시한 채 한 화면에 사계절을 다 담은 표현주의적 화풍으로 바뀐 것이다. 1993년에 열렸던 다섯 번째의 개인전에서부터 시작된 이런 그의 변화에 관한 우려와 찬사가 뒤따랐지만 개의치 않고 그는 이 화법을 적극 차용한 그림들을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자신이 평생을 통해 추구해온 고향의 인간적인 삶과 풍부한 원시적 생명력으로 가득찬 세계를 초기와는 다른 다양한 방법적 실험으로 변용, 확장하며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그 결과 1995년 스위스 제네바의 KARA미술재단이 초대한 전시회에서 가장 한국적으로 표현된 한국현대미술이라는 호평으로 주목받으며 그간의 작업을 인정받는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고향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을 순례하며 한국인의 심성 속에 각인된 친근한 고향의 이미지를 풍부한 색채와 조형으로 담아내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고향이라는 지역, 지명 혹은 상징이 그러하듯이 화가 김문수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또한 고향이 가진 무게와 동일한 것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순리에 어긋나는 법 없이 묵묵히 도리를 다하며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는 고향의 봄이면 피어나는 꽃들이자 녹음 우거진 여름 숲, 다시 꽃빛으로 물드는 가을 나무와 잘 닦아놓은 거울처럼 티 한점 없이 맑은 겨울 하늘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 어머니를 여의고 실의에 잠겼을 때 그에게 찾아온 또 다른 기회는 금강산이었다. 1998년 금강산 개방정책으로 인해 1999년 우연하게 찾은 금강산에서 그는 그가 추구해온 고향의 또 다른 원형인 금강산, 즉 한민족의 모태이자 정신적 고향인 금강산에서 큰 영감을 받게 된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웅장함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금강산의 이미지에 고향의 꽃과 나무, 새, 소 등의 소재를 중첩시킴으로 반복되는 선과 색채의 음악적 리듬을 가진 새로운 화풍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화가 김문수의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2001년 정보통신부의 새해 연하장의 그림으로 선정되어 큰 호응을 얻게 된다. 그의 그림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 속에 잠재되어 있는 보편적 정서들과 만나 큰 공감을 이끌어내었음을 증명하는 작업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몸담았던 교직에서 물러나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를 되찾은 그의 작업은 한결 담대해지고 자유로운 화풍을 보여준다. 초기에 소박하게 묘사되던 자연의 여러 모습들은 한층 더 단순해진 외형을 갖게 되고 강렬한 대비로 서로 어우러진 원색의 전통색인 오방색의 구사는 활달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전통과 원형으로의 회귀, 즉 그가 추구해오던 잃어버린 이상향이던 고향은 생명의 본원이자 시원의 상징으로 심화된다.

누가 가꾸거나 시키지 않아도 철따라 피어나던 산과 들의 꽃들, 한낮에 피던 그 꽃들은 밤이면 캄캄한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별로 떠오르고, 그 별들 채 다 헤아리기도 전에 잠들면 초가의 골방 문틈으로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던 햇빛, 그 햇빛을 여리거나 강하게 또 차거나 따뜻하게 데우고 식히던 바람과 구름의 온도, 어머니를 따라 처음 찾아간 절에서 만난 사천왕상의 두려운 형상, 그 형상 너머 인상적이던 만다라와 단청의 색깔, 여인네들의 한복이 가진 선과 전통문양들, 한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이던 소, 그 소를 타고 산과 들을 누비던 아이들...

화가 김문수의 기억과 영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이런 형상들은 그의 그림 모두에서 친근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드러난다. 어떤 시기에는 사실적인 묘사와 색채로, 어떤 시기에는 소박한 묘사와 전통적인 색깔의 배치로, 또 어떤 시기에는 지극히 추상적이거나 단순화한 형태가 반복을 통한 리듬감과 강렬한 원색의 에너지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을 통하여 화가 김문수가 평생 추구해온 자신만의 세계는 한국인 본연의 정신 회복이다.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고향이라는 단어, 지역, 지명 속에 한국인이 반드시 되찾고 되살려야 할 삶의 근원, 정신의 본연이 있다고 믿는다. 화가 김문수에게 고향이란 그저 아련한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잃어버렸거나 잃어가고 있는 이상향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 일구었던 이 소박한 이상향이 가졌던 공동체정신과 규범,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현대사회가 회복해야 할 인간 본연의 정신이라는 걸 화가 김문수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을 평생 해온 것이다.

2008년에 열렸던 열여덟 번째 개인전 ‘태양을 품은 꽃 이야기’ 에서 김문수 화백이 보여준 건 화면 가득 배치된 강렬한 색채를 가진 활달한 꽃들과 원근법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온 풍경들 속의 집들과 산과 그 속의 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품어 안듯 한 화면에 배치된 태양과 달이었다. 이는 또한 자신이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세계의 연장이자 확대 심화된 세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깃든 의식 혹은 무의식의 원형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진행되고 또 발전한다. 김문수 화백의 심연에 깃든 이 심상의 원형은 고향의 자연, 그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순수이자 삶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화가 자신의 소박하고 순수한 심성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이 이미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용되며 지금까지 진화를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흔여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김문수 화백은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인근의 산을 산책하고 철따라 바뀌는 산과 나무와 꽃을 스케치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여전히 자신이 평생 그림으로 추구해온 세계의 확장을 꿈꾸며 작업하고 있다.

작업 중인 그의 화폭 속엔 화면 전체를 압도하며 떠오르는 태양과 그 태양이 흩뿌리는 붉은빛과 맹렬한 기세와 몸짓으로 그 빛을 향해 나아가는 꽃과 나무들, 시원회귀를 열망하는 강렬한 생명의 빛들이 있다. 그 아래 단순한 형태로 묘사된 초가들이 그가 해온 작업들과 지금의 작업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또 헤어지는가를 보여준다. 김문수 화백이 작업 중인 화폭 속의 이 역동적인 색채와 조형언어는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단정한 모습 속에 숨겨진 노 화백의 열정을 가늠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글_김형술 / 시인

작성자
예술부산 2012년 2월호
작성일자
2012-10-2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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