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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530호 기획연재

광안대교 페인트 쇠 속까지 발랐다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 제2화·원시인이 낳은 최첨단 다리, 광안대교⑥

내용

쇠붙이는 녹이 슨다. 철이 공기 중에서 부식되며 삭아 생기는 것이다. 시골 양철지붕이나 외부에 노출된 쇠 구조물은 몇 년이 지나면 녹물이 줄줄 흐른다. 그래서 대개 4~5년 주기로 녹을 벗겨내고 페인트칠을 다시 한다.

광안대교는 강교(쇠다리)다. 그것도 염분이 많은 바다 위에 서 있다. 육지에 서 있는 다리보다 훨씬 녹에 취약한 구조다. 내년 1월이면 개통 10년, 그 10년 세월동안 비바람과 염분을 고스란히 덮어썼지만 광안대교는 녹슬지 않았다. 페인트칠을 다시 한 적도 없다.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제일 큰 걱정 중의 하나가 녹이었습니다. 부산의 상징이요, 세계적 명물이라는 광안대교가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벌건 녹물이 줄줄 흐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강교의 수명은 전적으로 도장(페인트칠)에 좌우됩니다. 당시 국내에서 생산한 페인트는 품질이 좋지 못했습니다. 도장기술마저 부족해서 부실시공이 많았고, 도장 후 5년 정도가 지나면 녹물이 흐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광안대교건설 책임자였던 조창국 당시 부산시 건설안전관리본부장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페인트를 찾아 나섰다. 가장 좋은 페인트를 찾아 외국출장을 가고, 외국출장을 가는 동료들에게 좋은 페인트를 알아봐 달라고 집요하게 부탁했다. 그런 과정에서 마침내 마음에 드는 페인트를 찾아냈다.

“미 항공우주국 NASA가 인공위성 외부 도장용으로 개발한 ‘IC531’이라는 제품이었습니다. 영국의 로이드라는 보험회사에 20년 품질보장보험까지 가입한 특수도료였지요. 이 페인트를 칠하고도 20년 안에 녹이 슬면 보험회사가 전액 보상한다는 것이었으니,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 페인트는 쇠의 겉 표면에만 발리는 게 아니라 철판 0.2mm 깊이까지 침투해서 부착되는 엄청난 것이었다. 당연히 일반 페인트 값보다 1.5배 이상 비쌌지만 수명을 고려하면 오히려 싸다고 판단, 이 페인트를 쓰기로  결정했다.

광안대교는 미국 항공우주국 NASA가 인공위성 외부 도장용으로 개발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페인트인 ‘IC531’로 칠을 했다. 이 페인트는 쇠의 겉 표면에만 발리는 게 아니라 철판 0.2mm 깊이까지 침투해서 부착돼 다리에 녹이 스는 것을 오래도록 방지해 준다.

“일반적으로 현장감독이 가장 어려운 것으로 도장공사를 꼽습니다. 페인트칠 하는 것을 하루종일 지킬 수도 없고, 대충 녹을 닦아내고 칠을 해도 몇 년 동안은 잘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IC531’ 페인트는 원천적으로 부실시공을 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반 페인트는 대충 칠을 해도 상당 기간이 지난 뒤에 부실한 부분이 들고 일어나지만 IC531은 당장 며칠 사이에 들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조 본부장은 그래서 시공도 특수 도장공법인 샌드 브러싱(sand brushing) 공법을 도입했다. 철판에 강한 압력의 모래를 쏘아 녹을 완전 제거하는 공법으로 철판 면을 흰색이 나게 깎아내고 깨끗하게 먼지를 제거한 뒤 IC531을 바르도록 설계를 한 것이다. 특수 페인트와 특수 시공법으로 부실시공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계산이었다.

문제는 시공. 현장에서 난리가 났다. 완전히 녹을 벗겨낸 뒤 도장을 해야 했으나 시공업자들은 여태 해오던 습성대로 쇠 솔로 슬슬 적당히 문질러 닦아내고 페인트를 칠했다. 그러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도장한 페인트가 들고 일어나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광안대교는 국내에서 가장 큰 해상강교이고 설계수명은 100년이다. 부산시는 특수 페인트와 특수 시공법으로 부실시공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하니 사무실이 쑥대밭이었습니다. 시공업체 간부와 작업자 40여명이 몰려와 이런 공사는 죽어도 못하겠다며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피었습니다. 몇십년을 페인트칠 해먹고 살았지만 이런 페인트는 처음 본다, 시공하기 쉬운 일반 페인트로 바꿔 달라, 설계변경 안 해 주면 시공을 못하겠다,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조 본부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득작업을 하되, 그것이 안 되면 배짱으로 몰아 부칠 참이었다. “광안대교는 국내에서 가장 큰 해상강교이고, 설계수명이 100년이요. 도장공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당신네들이 더 잘 알 것이요. 그래서 특수페인트와 특수 도장공법을 도입했소. 시공이 어렵고 까다롭기 때문에 시공비도 일반 도장공사비 보다 2배나 많이 책정했소.” 시공업체 관계자들은 그래도 일반 페인트로 바꿔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조 본부장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자 시공사의 전무·상무까지 나섰다. 국내 굴지의 H중공업이었다.

“본부장님, 특정업체 제품을 계속 언급하는걸 보니 뭐가 있는 것 같네요. 공무원이 특정업체 제품을 대놓고 계속 고집해도 되는 겁니까? 책임질 수 있습니까?”

“당연히 책임지겠소. 본부장을 그만뒀으면 그만뒀지 설계변경은 못하겠소. 제값 주고 페인트 사고, 까다로운 만큼 시공비를 높여 반영했소. 자신 없으면 공사를 포기하시오. 그러면 부산시가 자체 공장을 지어 페인트칠을 할 것이요. 당신네들이 내 자리에 있다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시오. 광안대교는 100년, 200년 남을 대역사요. 몇 년도 안돼 다리에서 녹물이 줄줄 흐른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이요? 또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이요?” 아침 8시에 시작한 담판은 점심도 거른 채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업체 관계자들이 수긍을 하고 물러난 것이었다.

“바다 공사는 페인트가 생명입니다. 해상교량은 첫 도장보다 재도장할 때 3~4배의 비용이 더 듭니다. 바다에 오염물질인 페인트를 떨어뜨려서도 안 되고, 먼지를 날려서도 안 됩니다. 도장작업을 할 수 있는 발판이나 철제 가시설을 하고,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다리 전체를 대형천막으로 완벽하게 덮어 씌어야 합니다.”

그때 시공업자들에게 밀려 작업하기 손쉬운 일반페인트를 선택했더라면, 지금 광안대교는 어떨까? 시뻘건 녹물을 줄줄 흘리며, 대형천막을 3~4년마다 뒤집어쓴 채 페인트작업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예산낭비 역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2-06-2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530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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