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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520호 기획연재

광안대교, 4차선 시멘트다리 될 뻔했다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제2화·원시인이 낳은 최첨단 다리, 광안대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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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얘기|광안대교
내용

“나에게 무슨 덕이 된다고, 멱살을 잡혀가며 광안대교를 놓아야 한단 말인가….” 조창국 당시 광안대로 건설사업소장은 너무 지쳐 한발 물러설까를 여러 번 생각했다. 광안대교 건설을 반대하는 여론은 1년이 넘어도 잦아들지 않았다. 언론·학계 보다 부산시의회와 공무원의 반대가 더 심했다. 심지어 기술직 간부들까지 “조창국이 저 사람, 정신 나간 사람 아이가. 바다 위에 다리를 놓겠다는데, 말이 되나, 돌았지…”하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10년도 안돼 역 화살이 돌아올게 뻔했다. 조금이라도 부산을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공직자로서 양심이 있다면, 잘못된 여론 앞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당장 힘들어도 뚫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부족한 예산을 마련하기도 어려웠지만, 반대여론을 설득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끝까지 반대하는 시의원 몇 사람은 개인 사무실이나 집으로까지 찾아가 자료를 내놓고 설명을 했습니다. 한번 만나서 안 되면 두 번 만나고, 두 번 만나서 안 되면 세 번, 네 번을 찾아갔습니다.” 한 사람씩 설득을 해나갔다. 만약 그 당시 조 소장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설득을 포기하고 해안도로를 내는 방안이나, 시멘트 다리를 선택했더라면, 지금 부산은 어떨까? 광안대교는 부산시민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시민들은 그 무지막지하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광안대교를 보며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광안대교는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광안대교는 그러나, 극심한 반대여론에 밀려 오늘날의 상·하층 8차선이 아닌, 4차선의 흉물스런 콘크리트 다리가 될 뻔했다(사진은 광안대교 공사 모습).

“그때 반대의견을 수용했더라면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요? 공무원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하며 공무원 사회를 싸잡아 욕하는 시민이 한둘이겠습니까. 몇십년 앞도 보지 못한 흉물 졸작이다, 광안리 앞바다를 망쳐놓았다고 말입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다. “남항대교 역시 제가 설계를 했습니다. 당시는 인공섬 진입로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콘크리트 다리로 시공했습니다. 지금 어떻습니까? 남항을 버려놓았다고 무진 욕을 듣고 있습니다. 인공섬 계획이 그 뒤에 취소되고, 남항대교만 덩그러니 서 있으니, 졸작이 되고 말았지요. 하마터면 광안리 앞바다까지, 부산에 졸작 다리를 두개나 만들 뻔했습니다.”

사실 당초 계획은 광안대교도 남천동 49호 광장에서 동백섬 입구까지 해운대 신시가지 진입도로 개념으로 4차선 콘크리트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4차선이면 해운대 신시가지 교통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크게 그려야 했다. 육군 53사단이 운용하던 수영비행장, 허허벌판으로 남아있는 수영만매립지, 개발의 여지가 많은 기장군 등 장래 발생할 교통량을 감안하면, 이 다리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 이 사실을 알면서 내가 맡은 사업만 잘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해운대 신시가지 진입로 개념의 교량건설 실시설계를 할 수는 없었다. 공무원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앞섰다. 그렇다고 장래 발생할 해운대, 오늘날의 센텀·마린시티, 기장군 관내 전체 교통량까지 포함한 교량건설을 하자니, 소관 밖의 일일뿐더러 공사비가 3~4배 이상 더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기술자로서 소신껏 밀어붙여 보자고 결심을 굳혔다. 광안대로 건설사업소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었지만, 장래 교통량을 감안하고, 북항·감만부두에서 발생할 항만물동량에 대한 전체교통량 조사용역에 들어갔다. 교통영향 평가보고서를 토대로 광안대로 건설계획서와 해안순환도로 건설계획서를 새로 작성했다.

남천동 49호 광장에서 해운대 동백섬 입구까지 놓기로 한 다리는 수영강하구에서 감만부두까지 연장하고, 교량규모도 8차선으로 키워 항만물동량을 운송한다는 내용이었다. 해운대 신시가지 발생 교통량을 49호 광장까지만 연결하면, 49호 광장에서 문현교차로까지의 교통난은 여전할 것이란 판단, 항만물동량을 운송한다는 계획이 있어야 국고보조금과 유료도로화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계획을 세웠지만 걱정은 태산이었다. 과연 당시 김영환 시장께서 해상교량에 대한 이해가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었다.

광안대교는 전임 안상영 시장 때 첫 단추를 뀄다. 안 시장께서는 기술직 출신인데다 굵직굵직한 건설사업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많았다. 해상다리 계획을 보고했을 때 쉽게 결단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안 시장께서는 그 결재를 내린지 불과 한달여 만에 부산지방해양항만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부산시를 떠나버린 것이었다.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김 시장 앞에 섰다. “시장님, 다리를 4차선으로 놓으면 신시가지 교통수요는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영비행장과 수영만매립지를 개발하게 되면 별도의 진입도로가 또 필요합니다. 다리를 8차선으로 넓혀야 합니다.” 시장의 눈치를 살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고함을 칠 줄 알았으나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뚝심으로 보고를 이어갔다.

“시장님, 기왕 할 것 부산교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합니다. 광안대교가 끝나면 장차 감만부두에서 영도까지 북항대교를 놓고, 영도에서 송도까지 남항대교를 놓으면 해상다리가 연결됩니다. 신호·녹산공단 약 5㎢ 개발에 대비해 명지쪽에는 낙동강을 횡단하는 명지대교를 놓으면 해운대쪽과 서부산쪽 모두 경부고속도로와 소통시킬 수 있습니다. 20년을 계획하고, 전체를 한개의 프로젝트로 풀어갔으면 합니다.”

시장은 보고가 끝났는데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1991년 6월, 해상다리와 해안순환도로 연결이라는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2-04-1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520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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