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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젊은 길 위의 시인을 만나다

예술부산 ‘예인탐방’ ① 시인 허만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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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젊은 길 위의 시인 -허만하
적의 몸에 구멍을 뚫은 총알의 속도는 돌아가라.
어깨에 멘 탄창으로 돌아가라.
돌아가라. 내 밤의 눈시울에 떨어지는 별빛이여 돌아가라
돌아가서 소용돌이치며 펄펄 끓는 가스의 춤이 되어
캄캄하게 눈멀어라
지구가 태어나기 전에 길 떠난 광년의 성운으로 돌아가라
깜깜한 암흑으로 물들어라
- 시 ‘原型의 꿈’에서

허만하 시인은 현역이다. 허만하 시인에게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원로나 노익장 같은 호칭 혹은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어느 전업시인보다 더 활발하게 시를 쓰고 시론을 발표하며 시에 관한 산문을 쓰는 젊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각종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묶거나 시론집과 산문집을 내는 문학활동의 양뿐만 아니라 그 활동의 결과들이 가지는 성과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하다는 게 허만하 시인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1999년 두 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로 제1회 박용래문학상과 2000년 한국시인협회상을, 2003년 세 번째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로 제15회 이산문학상과 문화훈장보관장 수훈(맑은 언어구조와 형이상학적 미학을 한국시의 서정에 접목시켰고, 50년대 시의 새 모형을 개발하여 시문학사의 한 갈래를 이룩함으로써 지방문단과 중앙문단의 균형을 이루는데 기여한 공적), 2004년 제5회 청마문학상, 네 번째 시집 『야생의 꽃』으로 2006년 제3회 육사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문단에서 흔치않은 문학적 저력을 과시한 바 있고 또한 이 저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집 출간 외에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냄새를 맡는다』 『청마풍경』 『길 위에 쓴 편지』를 출간했고 자신의 시 이론을 정리한 첫 시론집 『시의 근원을 찾아서』를 2005년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산문집 또한 시집 못지않은 깊이와 넓이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허만하 문학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허만하 시인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때 영국군 27여단 미들섹스 연대 통역으로 종군한 후, 1951년 대구의과대학 예과(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에 입학한다. 이때 릴케의 시를 접하고 철학 서적을 탐독했으며 고대희랍철학과 실존주의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56년 2월 김윤환, 이영일과 『시와 비평』을 창간, 창간호에 시 ‘잎’ 번역시‘헤롯왕(W.H 오든)’ ‘겨울의 풍경’ 등을 발표하며 문학활동을 시작, 1957년 『문학예술』 2월호에 제1회 추천시 ‘과실’ 『문학예술』 4월호에 2회 추천시 ‘과실’ 12월 호에 3회 추천시 ‘꽃’을 발표하며 최종회 추천을 마치고 등단한다. 하지만 그의 문학활동은 1968년 부산으로 이사, 부산침례병원 및 메리놀병원 병리과장을 겸직하고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로 병리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69년 첫 시집 『해조 海藻』(오늘의 한국시인집 시리즈, 삼애사)가 출간된다.    

성난 이빨같이 다가선
장년기 산의 은빛 살갗-
그 가파른 벼랑 발치를 깨물며
유연히 흐르는 검은 산협의 물
그 기슭에 추락할 듯 간신히 붙어 선
한없이 조용한 시골역.
몇 갑의 질나쁜 담배와 대포를 파는
속국같이 엎드린 두서너채의 판잣집.
연방 기침을 하는
어린애를 업은 아낙네의 지친 얼굴
총총히 출찰구를 들락거려 쌓는
고향을 등진 파리한 남녀노소
아, 너는 무구하게 쫓겨가는 아이누족族같은
강원도 탄전지대의 첫째 역.

먼 도경道境의 산들이
첫눈의 예감에 떨고있는 어느 날 오후
나는 앓는 쪽 딸애의 손목을 잡고
싸락눈같이 뿌리는 햇살을 헤치며
표표히 나들이를 떠날 것이다.

- 시 ‘銅店驛’ 에서

이후 그는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메리놀병원 병리과장,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대한병리학회 학술지 편집위원(1975~1990년)을 역임하는 한편 1976년 「신라의 기와」 『한국건축사대계 Ⅴ』(공저 동신문화사)를 출간한다. 1978년 부산시문화상을 수상하고 『현대시 11인선』(공저 심상사)을 출간한 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의과대학 성메리병원(리치몬드 소재) 진단병리학 연수를 떠났다 귀국해 1980년 일역시집 『동점역』(일본 시요시 창사 20주년 기념 시집으로 출간)을 출간한다. 1984년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의과대학 병리과 객원교수로 1년간 재직하고 1989~1991년 대한병리학회 부회장을 역임하지만 1990년 4월 뇌출혈로 2회의 수술을 받기에 이른다. 1997년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정년퇴임하면서 허만하 시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꽃같은 시의 정수를 펼쳐보인다. 마치 지층 깊이 잠복했던 휴화산의 용암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뜨겁고도 차가우며 명징하게 힘있고 깊은 시의 세계를 연 것이다. 병리학자로 또 대학교수로 살아온 삶의 모든 연륜, 시간의 자양분들이 시라는 꽃으로 만개를 시작했으니 시인에게 찾아든 병마는 시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 병마를 기꺼이 받아들여 꽃으로, 축복으로 승화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칼날이자 꽃이며 사막이자 샘이기도 한 자신의 시, 자신의 언어를 허만하 시인은 이렇게 피력한다. 

물이 없는 땅에서 시퍼런 강을 만드는 것이 시의 권능이다. 자아와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터전이 시다. 이 터전에서 자아의 무한확대와 세계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 시는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는 언제나 천지창조의 순간이다. (......) 시는 바깥에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안에서 우러나는 것도 아니다. 바깥과 안이 하나가 되는 계면界面에, 풀잎에 맺히는 여름 아침이슬처럼 태어나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되풀이한다. 시는 물이 없는 땅에 강을 만드는 언어의 힘이다.
- ‘시에 관한 단상’ 중에서

허만하 시인의 삶 속엔 의사로서, 병리학자로서 살아온 시간들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깊이 인식되어 있을 터이지만 그 직업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이 언제나 시의 현장에 서있었던 현역 시인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어느 시인이 삶의 방식과 시의 방식을 동일시하는 시각들을 달가워할까. 허만하 시인 또한 자신의 삶이 온전하게 시에 바쳐지기를 원하며 한 사람의 사회인이기 이전에 먼저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니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출간했을 때 언론과 평단이 보여준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호의적인 반응은 어쩌면 그리 달갑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온전히 시를 위해 살아온 시인에게 “느닷없이 나타났다”느니 ‘재발견’이라는 등의 표현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길이 곧 여행의 길이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 너무 좋다. 순간순간 스릴을 느끼려면 길 위에 있어야 한다. 정체돼 있는 상태를 거부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건 시인 자신의 삶에서 이미 시와 함께 걸어온 길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길은 나 아닌 것을 만나 나를 넓고 깊게 하는 도정이며 그게 삶이며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허만하 시인은 늘 우리나라의 이름 없는 길들을 찾아 떠났다가 길을 지우며 돌아오는 여행을 지금도 계속하는 중이다. 허만하 시인에게 길은 ‘시의 현장’이기도 하다.  

언어가 자기를 낳은 침묵을 돌아보듯, 나는 흰 지면 위에 번지는 바다의 흔적을 바라본다. 침묵의 깊이에서 별빛처럼 떨고 있는 언어. 순백의 설원 쌓인 눈 무게 바닥에서 봄풀처럼 노출을 기다리고 있는 언어. 내 손이 잡고 있는 펜의 첨단에서 한 방울 잉크처럼 떨고 있는 탄생 직전의 새로운 세계
 - 시 ‘나는 시의 현장이다’ 중에서

‘시의 현장’에서 언제나 ‘탄생 직전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시인은 나이를 먹을 수가 없다. 늘 팽팽하게 긴장된 젊은 감성, 아니 젊거나 그렇지 않거나가 아무런 소용이 닿지 않는 자신만의 시세계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세상엔 수많은 길들이 새로 태어나고 또 지워지지만 세상의 어느 길도 늙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 길을 발견하는 순간, 누군가가 그 길을 지나가는 순간 길은 언제나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세상의 모든 길은 젊은 길이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그 길을 걷고 있는 허만하 시인은 늘 현장을 살아가는 영원한 현역 시인일 것이다.    

허만하의 시는 전형적인 관념시, 이 경우는 Platonic Poetry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런 관념시다. 그는 언제나 이데아의 세계로 눈이 가 있다. 그가 세밀한 관찰 끝에 포착한 질료質料의 저편, 노장 적으로 말을 하자면 무無라고 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짙은 향수를 깔아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형이상학의 세계요, 시로서의 가치는 그런 향수를 말하는 그의 메타포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에 있다. (......) 허만하 시인은 관념시를 쓰는 데 당대의 문학 100년사에 이런 경향의 시인으로 가장 앞에 기록될 시인이다. 신라의 향가 이후로 잡더라도 이 시인의 시는 보기 드문 시이다.  
- 시인 김춘수

작성자
예술부산 2009년 3·4월호
작성일자
2012-04-0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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