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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516호 기획연재

중앙공원 충혼탑도 지하철이 세웠다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제1화·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⑫

내용

1985년 여름, 무사고를 자랑하던 부산지하철 공사장에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2단계 1공구 중앙동역 인근 지하철 공사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날이 밝아올 무렵인 오전 6시쯤이었다. 도로를 덮고 있던 복공판이 무너지는 바람에 자갈치시장 쪽으로 달리던 시내버스가 지하로 곤두박질쳤고, 인근 5층짜리 상가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당시 부산지하철 건설본부장을 맡고 있던 임원재 씨는 공사장 붕괴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새벽 5시 반쯤 받았다.

 “부리나케 현장으로 쫓아 나왔습니다. 대신동에 살 때라 현장에 도착하는 데는 금방이었습니다. 공사장 근처에 5층짜리 낡은 종묘사 건물이 있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그 건물 근처까지 흙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30분쯤 뒤면 이 건물도 무너지겠구나, 퍼뜩 그런 직감이 들었습니다.”

임 본부장은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자칫하다간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할 터였다. 소식을 듣고 현장에 막 도착한 중부경찰서 경비과장을 찾아 신속하게 주민을 대피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이 건물은 폭삭 주저앉았다. 주민은 모두 대피한 상태라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 리얼한 상황은 부산MBC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임 본부장과 경비과장이 숨 가쁘게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에 방송국 카메라 기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 기자는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마치 생중계 일정이 잡혀있던 것처럼 여유 있게 현장을 찍어 내보냈다.

건물에 있던 주민들은 모두 대피시켰으나 공사장으로 곤두박질친 시내버스는 기어이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버스에는 운전사와 승객 2명이 타고 있었다. 자갈치시장으로 새벽 장을 보러가던 반여동 노처녀(32), 프로야구 롯데구단과 입단 계약을 해둔 상태였던 경남고 투수 조모 씨였다. 건장한 체격의 조 씨는 운전사를 가까스로 밀어 올려 생명을 구했다. 다시 여성을 구하려고 뒤를 보았으나 이미 이 여성은 흙더미에 깔린 상태였고, 물이 가슴께까지 차올라 자신도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 중앙동, 남포동 구간은 말 그대로 난공사였다.

이 일대 중앙로를 따라가며 시공하는 지하철 구간은 원래 바다였다. 일제시대 때 인접 산을 절개해 토사와 바위로 매립한 매축지였다. 불과 바다와 400m 이내로 근접하고 있는데다 자갈과 바위, 토사 등으로 매립한 곳이어서 지하 3m만 굴착해도 바닷물이 들락날락했다.

 “밤자갈 밑으로 시트파일(쇠널판 파일)을 박아 넣었는데, 부분적으로 덜 들어갔던 모양이었습니다. 해수면 수압을 견디지 못해 파일을 박은 쪽으로 물이 스며들고, 밤자갈이 쏠리면서 파일이 밀린 것이었습니다.”

임 본부장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현장에서 3일 밤낮을 틀어박혀 사고현장을 수습했다. 부산시 직원들은 “이제, 임원재 모가지가 날아가는구나” 그렇게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완벽한 물막이공사가 성패의 갈림길이었지요.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물막이(차수)가 뛰어난 지중연속벽공법, 새로운 터널시공법인 NATM공법, 원통형 기계로 암반을 갈아내는 T.B.M공법 등을 국내에 처음 들여왔습니다. 끊임없이 고심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공법을 찾고 도입했기에 그나마, 더 큰 사고 없이 부산지하철공사를 해낼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다 뚝심으로 난관을 뚫어 헤치고, 밤낮없이 현장을 지키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공법을 찾아낸 그 성실성이 오늘날 부산지하철을 일궈낸 원천적 힘이 되었을 것이다.

부산 중구 대청동 중앙공원에는 충혼탑이 우뚝 서 있다. 뜬금없이 웬 충혼탑 이야기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 성싶다. 김무연 시장 재임시절, 김 시장이 임 본부장을 갑자기 불렀다. 지하철 1호선 1·2단계를 시공 중일 때였다. 중앙공원에 충혼탑을 이전해야겠는데, 부지는 확보했으나 탑을 세울 예산이 없다는 거였다.

부산 중구 대청동 중앙공원 충혼탑은 지하철 시공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것이다. 호국영령들을 모시는 것은 물론 지하철공사 과정에서 불편을 겪은 시민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사진은 충혼탑.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안돼 멀뚱거리자 “지하철을 건설하느라 고생도 많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 불편과 원성도 많으니, 이를 조금이라도 무마하는 의미로 충혼탑을 세워보라”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건설사 회장들을 직접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1차로 충혼탑 건립비 6억5천만원을 갹출하고, 2차로 군상 제작비 2억8천만원을 기부 받았다. 오늘날의 충혼탑은 지하철 시공사들로부터 십시일반 거둔 9억3천만원으로 건립한 것이다. 이 충혼탑 높이는 70m. 대한민국 건국 이후 나라와 겨레를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숨진 부산출신 국군장병과 경찰관을 비롯한 애국전몰 용사들을 모신 성스러운 위령탑이다. 부산지하철 건설과정에서 고생한 시공사와 불편을 참아준 부산시민들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끝>

충혼탑을 세울 당시인 1983년 7월 부산지하철 1호선 2단계 기공식 모습.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는 제2화 ‘원시인이 낳은 최첨단 다리, 광안대교’편으로 이어집니다.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2-03-1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516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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