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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498호 기획연재

“서면로터리 부산 상징탑을 철거하라”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제1화·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⑦

내용

1980년 10월 20일. 대망의 부산지하철 1호선 건설기공식이 지하철 서면 시공구간에서 열렸다. 부산으로선 대역사의 첫 삽을 뜨는 날이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서면로터리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길 가던 행인들은 발걸음을 멈췄고,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목을 뺐다.

시민뿐만이 아니었다. 손재식 당시 부산시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이 열일 제쳐두고 빠짐없이 참석했다. 시정자문위원, 평가교수단,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같은 ‘내가 낸데’ 기침께나 하는 사람은 다 모여 지하철 기공을 축하하고, 지하철시대를 염원했다. 언론들도 앞 다퉈 이를 대서특필했다.
 

“… 부산은 지형적으로 교통량이 주 간선도로인 중앙로에 62%나 집중되어 국제항으로 발돋움하는데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교통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지하철 기공이야말로 80년대를 맞아 풍요로운 항구도시 건설을 위한 일대 전기가 될 것입니다. 공사기간 중 6차선을 4차선으로 축소하여 버스 승용차만 운행하고, 그 외 차량통행을 제한함으로써 교통불편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지하철 건설만이 교통난 해소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식, 330만 부산시민은 하루빨리 지하철이 건설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
 

1980년 10월 20일자 부산시보에 실린 손재식 시장의 축사내용 중 일부다. 축사에서 당시 가장 큰 부산현안이 무엇이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출퇴근시간만 되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중앙로의 교통체증이 당시 부산으로선 첫손가락 꼽히는 고민이었다. 지하철만이 교통난을 근본적으로 풀어줄 묘책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공식이 있고, 열 달쯤이 흐른 1981년 초가을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서면로터리의 부산 상징탑을 들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부산지하철 기획단장을 맡았던 임원재 씨, 계획계장 조창국 씨, 설계계장 이재오 씨의 기억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 터파기 공사를 위해 내려진 지상과제였지요. 부산 상징탑을 없애는 것이야 한 시간도 안 걸릴 간단하고 손쉬운 일일 터이지만, 문제는 시민 정서였습니다. 아무리 지하철 공사가 현안과제라고는 하나 그야말로 부산을 상징하는 탑이니 이를 깨부순다면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문제였고, 두 눈 부릅뜨고 이를 감시할 언론의 눈도 피해갈 수 없을 터였습니다.”

1981년 초가을 서면로터리의 부산 상징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하철 공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저앉힌 것이다. 철거 전 회전식 서면로터리 모습이다.

부산 상징탑을 들어내야 한다는 고민은 사실 1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미 기공식을 갖고 서면로터리를 중심으로 이쪽저쪽 땅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정상 더 이상은 서면로터리 공사를 미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면로터리 한가운데에는 당시 부산 상징탑이 우뚝 서 있었다. 부산탑 위쪽은 부산이라는 머리글자를 상징하는 ‘ㅂ’자 모양을 형상화했고, 그 ‘ㅂ’자 상부에는 오륙도 형상을 가로로 본떠 넣었다. 부산탑 중앙에는 횃불을 든 남여 청동상을 설치, 부산의 영원한 번영과 부산사람의 발전을 기원했다. 시민정신을 모두 부산탑에 담았던 것이다.

지금 서면로터리는 회전식으로 돌아가는 로터리가 아니다. 신호를 받아서 가고자 하는 행선지로 방향을 잡는 ‘교차로’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만해도 널찍한 화단을 뱅글뱅글 돌아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로 가야하는 신호등 없는 로터리였다.

난생 처음 부산을 찾는 객지 사람들은 이 부산탑을 보고, 비로소 말로만 듣던 부산의 중심 서면에 왔다는 것을 알았고, 고향에 돌아가서는 서면로터리에 우뚝 선 부산탑을 보고 왔다는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초보 운전자들은 로터리를 빠져나오지 못해 차를 몰고 한나절을 뱅글뱅글 돌다가 결국엔 어지러워서 짝 뻗었다는 좀 과장된 이야기도 더러 남아 있다.

서면에 교차로 형태의 로터리가 생긴 것은 1957년이다. 1957년은 부산이 처음으로 중·서·동·영도·부산진·동래 등 6개 구로 행정구역을 나눈 뜻 깊은 해다. 서면로터리에 부산 상징탑이 세워진 것은 6년쯤 뒤다. 부산시는 1962년 12월 서면로터리에 부산탑 공사를 시작, 이듬해인 1963년 12월 완공한다. 1963년은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한 해다. 부산탑은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오랜 세월 부산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쉽게 부산탑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눈치 볼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지요. 땅은 파야되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로터리 안에는 국산 금잔디를 심었는데, 그 잔디가 참 좋았습니다. 몇날 며칠 잔디밭에 앉아 고민을 했습니다. 건설과, 총무과, 문화공보실 등에 혹 모를 언론보도를 걱정해 협조요청을 해봤지만, 모두 알아서 하라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일단 기록을 남겨야겠다 싶어 사진을 찍어놓고, 일을 내기로 했습니다.”

부산 상징탑을 주저앉히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크레인을 가져와서 아주 큰 추를 달았습니다. 그리곤 한방에 주저앉혔지요. 누가 볼까봐 10분도 안돼 재빨리 현장을 치웠습니다. ‘건설쟁이’들은 삭막하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우리 건설 직원들도 가슴이 짠했습니다.”

예상 밖으로 시민이나 언론은 조용했다. 이렇게 해서 서면로터리의 부산탑은 1981년 초가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부산박물관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부산 상징탑의 조형물이 서 있다.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1-11-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98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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