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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481호 기획연재

52년간 ‘지독한 부산사랑’ 독일 신부 ‘부산사람’ 되다

하 안토니오 몬시뇰 신부 명예시민증 받아

내용
부산에 52년간 살면서 부산과 부산사람을 위해 헌신해 온 독일인 하(河) 안토니오 몬시뇰 신부가 ‘부산사람’이 됐다(사진은 지난 24일 부산시청에서 가진 명예시민증 수여식).

부산에 52년간 살면서 부산과 부산사람을 위해 헌신해 온 독일인 하(河) 안토니오 몬시뇰(89) 신부가 영원한 ‘부산사람’이 됐다.

부산광역시는 하 신부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이 24일 오후 부산시청 의전실에서 명예시민증을 직접 수여하고, 부산을 위해 헌신한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 신부는 1959년 부산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 주임 신부로 부임, 부산과 인연을 맺었다. 그 뒤 52년간 부산을 떠나지 않고 복지·교육·의료사업을 통해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난 온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질명에 고통 받는 것을 보고 구호사업을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의식주 해결과 질병 치료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한편, 부모를 잃은 고아 7명을 사제관에 데려다 함께 살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행려자나 거동이 불편한 걸인들을 모아 돌보는 ‘사랑의 집’ 사업을 펼쳤다. ‘사랑의 집’은 그 후 경남 밀양 삼랑진으로 옮겨 현재 ‘오순절 평화의 마을’로 성장했다.

하 신부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1965년 3월 기술학원을 열었다. 학생 60명으로 시작한 이 기술학원이 ‘한독여자실업학교(현 부산문화여고)’로 발전, 많은 기술인과 기능인을 배출했다.

그는 한독여자실업학교가 이전한 자리에 1977년 2월 ‘교회 조산원’도 열어 1992년 2월까지 ‘가난한 산모’의 출산도 도왔다. 여기서 태어난 아기는 모두 2만여명. 또 1980년부터 어린이날마다 그 해 태어난 아기와 어머니를 초대해 ‘어린이 대잔치’를 열어주는 등 어린이들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하 신부의 어머니 역시 외아들을 한국으로 보낸 뒤 1964년 집과 재산을 처분해 ‘사랑의 집’ 건립비로 기부하고, 자신은 독일 시립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냈다.

하 신부는 이날 “천주교 사제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영광을 주시다니 너무 감사하다”며 “부산의 착한 사람들 때문에 그동안 행복했다”고 감격해 했다.

이에 대해 허남식 부산시장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어려운 부산시민들을 많이 보살펴주신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며 “명예시민증은 부산시민 모두가 드리는 조그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 신부는 현재 사단법인 파티마의 세계사도직(푸른군대) 한국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작성자
구동우
작성일자
2011-06-2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81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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