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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산복도로에 오르다 - 세번째 이야기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23)

내용

“씨X..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어차피 우린 적이야...”

“이딴 식으로 나가다가는 전부 다죽는기야!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자, 동시에 (총)내리는기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오경필 중사(송광호)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나눈 대화 장면이다. 한반도 남측과 북측의 끊이지 않는 대치 국면을 극적으로 보여준 명장면.

공동경비구역은 판문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주동 뒷산 중앙공원, 거기에도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산복도로는 중앙공원으로도 이어져 있다. 공원 북쪽에는 1948년 이후 순직한 호국영령들과 6.25 전몰용사들을 모신 충혼탑이 있다.

남쪽에는 항일 독립운동 자료들과 순국선열, 애국지사들의 위패를 모신 광복기념관, 반독재 애국민주열사들을 기리는 사월 민주혁명 희생자 위령탑과 위패봉안소, 민주항쟁기념관이 있는 민주공원이 있다.

충혼탑의 호국정신과 민주공원의 민주정신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공원 여기저기서 바둑과 장기를 두거나 체육시설에서 운동을 하는 지역주민과 시민들의 한가한 모습,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부산 앞바다처럼 겉으로는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10년간 잘 붙어있던 버스 정류장과 버스 노선 안내판에 민주공원 명칭이 중앙공원으로 갑자기 바뀌면서 복잡한 속내가 한 번씩 불거진다. 정치적인 문제나 남북관계에 얽힌 사안처럼 민감한 일에는 서로 입장이 다른 단체들끼리 불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공과 민주의 소위 말하는 보혁 갈등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충혼탑을 오른다. 충혼탑은 부산대학교 옛 본관 건물인 인문관, UN기념공원 정문, 주한 프랑스 대사관 등의 유명 건축물들을 남긴 김중업 씨가 설계했다. 충혼탑을 오르는 계단이 특이하다. 휠체어도 올라갈 수 있겠다 싶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드나보다.

참배를 하고 내려와 ‘有備無患’이라고 새겨진 큰 돌덩어리를 뒤로 하고 민주공원 쪽으로 가면서 잠시 드는 생각. ‘어? 總力安保’는 왜 안보이지? 쌍으로 새겨서 세워 두면 학실할낀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처럼.^^;;’

‘호국’과 ‘민주’는 공존할 수 없는 가치일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 보타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You haven't learned much about Panmunjom yet.

The peace is preserved here by hiding the truth.

자넨 판문점을 몰라.

여긴 진실을 감춤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야.
 

민주공원 꽃 박사님

민주공원 올라가는 길에 광복기념관과 4.19 희생자 위패봉안소에도 들러 참배한다. 오늘 이 길은 참배의 순례길인가보다. 곡절 많은 역사 속에서 죽어나는 건 민초들뿐이다.

민주공원 주변엔 온통 야생화 꽃밭이다. 명자나무에 꽃이 피었다.

수목원을 둘러보는데 민주공원 모자를 쓴 아저씨 두 분이 리어카에 거름을 싣고 오신다.

“벌써 진달래가 폈네요?”

“개나리 피면 진달래 피고, 지금 진달래 피는 때가 맞습니다. 저기 가면 명자나무 꽃이 많아요. 명자나무 꽃은 아가씨처럼 예쁘다 해서 아가씨 나무라고 하지요.”

명자나무 앞에서 사진 찍는 걸 보셨나보다. 아저씨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나무와 꽃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신다.

“보자, 복수초가 지금은 꽃이 오므라들 땐데, 함 가볼까요?”

간간이 알고 있는 꽃 이름도 나오지만 온통 처음 듣는 꽃들이다. 어떻게 저렇게 이름을 다 외우고 계실까 싶다.

“이건 1년에 꽃이 세 번 피는 밤나무. 꽃이 세 번 피는 밤나무는 대한민국에 여기밖에 없을 겁니다. 심을 때부터 땅을 깊게 파고 지 평생 먹을 거름을 해줬거든. 이봐요. 이게 세 번째 핀 꽃이 말란 거거든.”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 공개를 안 한다는 작업실로 데리고 간다. 청산유수 같은 설명이 끝이 없다. 따라잡기 힘들다.

“야생화만 100가지가 넘어요. 그걸 일부러 외우려고 하면 내 머리로 어떻게 외우겠어요? 물론 책도 보지만 꽃을 심고, 물주고, 거름 주고, 쓰다듬어 주고하면서 누구야 하고 불러주다 보니까 저절로 외워지는 거지.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려오면 야생화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애들은 잘 안 듣고 자꾸 딴짓을 하데.”

허걱. 아저씨 떼어놓고 얼른 도망갈 궁리를 짜는데 어떻게 아시는지 선수를 치신다. ㅠㅠ

“물(수압)이 약해 그게 좀 문제지. 둘이서 (공원 수목원 전체를 맡아서) 다하다 보니까 (퇴근 시간 넘겨서) 해지고 늦게 갈 때도 많아요. 그래도 여길 찾는 시민들이 좋은 꽃을 구경하고, 또 좋은 꽃이 있으면 나눠드리고 하려면 그렇게 해야지요.

이거 선생님 시간을 길게 뺏으면 안 되는데, (옳타꾸나 이젠 헤어질 때 ㅋㅋ) 이것도 인연인데 내 사무실로 가서 차나 한 잔 합시다. (ㅠㅠ) 내가 만든 특별한 차가 있어요. 그것도 맛보시고...”

민주공원 조경 담당 백 선생님의 사무실은 창문도 없이 작은 쇠문이 달린 창고 같은 곳이다. 그 안에는 과연 무엇이 있으며, 이것도 인연이라며 처음 보는 이를 끌고 들어간 백 선생이 대접한 ‘천하일미(天下一味)의 차(茶)’는 과연 어떠했는지... ^^

봄인가보다. 이불 말리기 좋은 날씨다.^^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1-04-0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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