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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산복도로에 오르다 - 첫 번째 이야기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21)

내용

계단에 대한 명상

산복도로는 부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서울, 마산, 창원 등지에도 다 있다. 산 가슴께에 마을이 있고 도로가 난 곳이면 산복도로는 있다. 산복도로(山腹道路)는 글자 그대로 ‘산(山)의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어디에나 산동네가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산 아래 부산을 관통하는 중앙 도로와 함께 달리되 산 구비를 따라 온갖 곡절과 사연이 굵은 손금처럼 아로새겨진 ‘망양로’. 거기에서라면 산복도로는 단지 산 중턱의 길 이상, 그 무엇일 터이다.

산복도로는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이 나는 것일까?

누구는 범일동 옛 교통부, 범곡사거리에서 시작해 서대신동에서 끝이 난다하고, 누구는 카톨릭센터로 내려가는 길이 원조라고 한다. 하지만 산복도로는 어디에서나 시작이다. 보수동 책방골목 뒷골목 ‘동화를 읽어주는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도 산복도로와 만난다.

보수동 산동네를 바라보며 왼쪽으로 돌면 동대신동이고, 오른쪽으로 따라가면 대청동, 영주동, 동구의 초량, 수정동, 좌천, 범일동, 진구 범천동으로 이어지는 장장 10Km가 넘는 부산 대표 산복도로 ‘망양로’다. 그 아래 위로도 수많은 고갯길들이 얽혀 있다. 그 사이사이의 실핏줄 같은 골목길과 계단까지 오르내리면, 줄잡아 몇 십 Km가 되려나... @@

걱정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혜광고등학교 옆 보수 아파트 뒤로 난 체육공원을 거쳐 중앙공원, 영주동으로 잠시 빠졌다가 동광동 거쳐 영선고개로 돌아 나오는데도, 그저 진저리가 난다.

아예 몇 갠지 세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까마득한 계단. 젊은 사람도 중간에 숨을 한번씩 고르며 올라야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은 그저 “아이고, 아이고” 소리에 몰아쉬는 숨소리가 가쁘다. 내려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있는 집은 태산도 이런 태산이 없을 터이다. 매일같이 순찰을 돌아야 하는 경찰, 우체부나 신문배달, 우유 배달하시는 분들은... 하이고! 산복도로에 대한 첫 인상은 거대한 ‘계단 지옥’이다.

다큐 3일, 하늘 길을 걷다 - 3일간의 산복도로 순례

두 해 전 모 방송국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늘 길을 걷다-3일간의 산복도로 순례’가 방송된 적이 있다.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여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나 보다. 산복도로에 사는 한 여학생이 적은 방송 소감이다.

“난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부산을 떠나서 멋진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오늘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런 생각들이 부끄러웠다. 비록 에스컬레이터 대신 빼곡한 계단, 빌딩 대신 오래된 집들이지만 이것들은 부산만이 가진 정겨운 풍경일 것이다. 서울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에이, 부산이 제2의 도시라면서 시골 촌구석이잖아.’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부산에도 해운대 신시가지 같은 세련된 곳이 있지만 여기서 보여진 곳이 더 부산의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다.”

산복도로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부끄러움과 정겨움, 가난과 추억, 상처와 재생, 외면과 동경...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다큐 3일’에 나왔던 단돈 300원 짜리 산복도로 할머니 카페가 있던 마을, 지금은 집들이 뜯겨나가고 사람들은 떠나 폐허가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기 사람들은 돈 모아서 아래(마을)로 내려가는 게 꿈이었어. 그리고 아랫마을 사람들은 산복도로 떠나서 다른 데 넓은 아파트로 가는 것이 소망이었지.”

산복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래, 윗동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 산복도로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과 외지인들이 보는 산복도로도 다를 것이다. 산복도로에 사는 저 소녀가 부산을 떠나서 서울로 가는 것이 꿈이듯,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같지만 계단을 오르는 희망과 절망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가로등 불빛 아직 꺼지지 않은 부산항을 바라보며 새벽일 나갔다가, 하늘로 까마득히 이어진 골목 계단 끝 달빛을 밟으며 고된 몸 누이러 돌아가는 일상의 삶들과 사연들이 산복도로와 그 사이의 고갯길과 골목길을 이루고 있듯이 말이다.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1-03-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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