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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부평시장 단팥죽 할매와 책방골목 문화관 할배 이야기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20)

내용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워 블로거 취생몽사 박상현 씨는 ‘부산어묵’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부산 사람, 아니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어묵공장은 광복 직후 부평동시장에서 시작한 동광식품(창업주 이상조)이다. 1950년에는 일본에서 어묵제조 기술을 배워 온 박재덕 씨가 영도 봉래시장 입구에 삼진식품을 설립한다.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 피난민이 대거 부산으로 유입되자 어묵 생산은 호황을 맞기 시작한다. 그즈음 동광식품과 삼진식품의 공장장 출신이 합작해 영주동시장에 환공어묵을 설립하면서 동광·삼진·환공의 3각 구도가 정립됐다. 1960년대가 되자 환공어묵과 삼진식품 등에서 기술을 배운 기술자들이 대거 독립을 하면서 어묵업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이때 생겨난 공장들이 영진, 미도, 효성, 대원 등이다.” <부산일보 3월 10일자>

지금도 부평시장에는 ‘환공어묵’과 ‘미도어묵’이 서로 이웃하여 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통에서 어묵을 만들지는 않는다. 판매만 한다. 공장이 따로 있다. 환공어묵은 김해에, 미도어묵은 장림공단에 공장이 있다. 환공어묵이 김해로 공장을 옮긴 것은 3만3천㎡이 넘는 부지를 못 구해서란다. 산업용지가 모자랐던 90년에 옮겼으니 이해가 간다.

웬만한 어묵 공장들은 이제 인터넷 판매도 한다. 식품 관련 안전 유해요소 중점 관리 기준인 해썹(HACCP) 지정을 받은 곳들도 늘고 있다. 그냥 시장통 오뎅이 아니다. 부산 경제의 한 축을 감당하는 효자 산업이다.

부산어묵 알아주는 곳은 따로 있다. 서울을 비롯한 타관객지에서 부산어묵은 인기 캡이다. 진짜냐고? ‘서울 안 가본 놈이 이긴다’고 ‘부산어묵’ 프랜차이즈 본사는 서울에 있다. 서울서 웬만큼 인기 있는 어묵 맛집은 거개가 ‘부산어묵’ 이름을 달고 장사한다. 부산서 택배로 받아서 쓰는 가게가 많다. 안동 간고등어, 춘천 막국수처럼 ‘부산어묵’은 부산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음식으로 이미 자리 잡았단 말이다. 그래서 타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무늬만 부산어묵인 제품과 차별을 두기 위해 부산 어묵 업체들끼리 힘을 모았다. 작년에 ‘부산어육제품공업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독립 조합을 출범시키며 재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한국어육제품공업협동조합 부산시지부에 등록되어 있던 100여 개 어묵 생산업체 가운데 35개 업체가 부산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시장마다 한두 개씩은 있는 소규모 즉석 어묵 기계를 갖춘 가게까지 합치면 그 수에 있어서도 가히 어묵의 메카라 할만 하다. 국내 어묵 시장의 60% 이상을 부산이 책임지고 있다고 보면 맞다.

부산지역 어묵 업체들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고유상표도 있다. 부산어묵의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98년부터 사용해 오고 있다.

부산오뎅이 전국 시장을 평정한 비결은 ‘맛’에 있다. 그 맛의 비결은 신선한 원재료와 ‘어육비율 70% 이상’ 이라는 원칙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싱싱한 어육을 듬뿍 넣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맛의 차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이다. 부산은 어묵이 처음 도입된 곳이며 오랜 연구와 전통에서 쌓인 배합기술, 숙성기술 등이 타 지역보다는 한수 위다.

그런데, 이거 아시는가? 어묵 중에 가장 최고급으로 치는 것은 80℃~90℃의 증기에서 쪄낸 ‘찐어묵’이라는 거. 이것을 불에 살짝 그슬린 것을 그 다음으로 친단다.

그렇다면 소시지나 핫도그처럼 테이크아웃도 가능하겠고, 외국인의 입맛과 취향에 맞게 개발하면 앗싸~ 헛돈 안 쓰고 한식 세계화!

어묵 전시·판매관에다, 전통시장 투어 코스에 어묵 공장 현장 체험관광까지 넣어보는 건 또 어떤가?

부평동 시장통을 따라서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향해 가는 길. 저만치서 우리 여성들 삼삼오오 선 채로 뭔가 열심히 잡숩고 계시는데. 장 보다가, 혹은 오며가며 시장통에서 맛난 거 사먹는 재미. 먹어본 사람만 아는겨.

어라~ 단팥죽이네.

단팥죽은 부평시장 명물이다. 사람이 제일 많이 서 있는 곳이 맛이 있든지 뭐라도 있을 터. 바닥을 드러내는 빈 그릇에 팥죽 한 국자씩을 더 넣어주시는 할머니. 그 앞에 사람이 많다.

“사진 좀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저 젊은 처녀들이나 찍지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게. 늙은 내는 말라꼬.”하시며 고개를 돌리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이 먹음직하다.

“여기서 몇 년이나 (장사)하셨습니까?”

할머니는 그저 웃기만 하시며 손님들을 챙기신다. 안되겠다 싶어 단팥죽 한 그릇을 시키고, 친구 사이로 보이는 할아버지 두 분 옆에 가서 선다. 할아버지답지 않게 주름도 별로 없이 피부가 탱탱하시다.

“여기 자주 오십니까?”

“우리는 여기 15년을 거의 매일 와서 한 그릇씩 하고 가지요. 팥은 우리 몸에 독소를 빼주기 때문에 좋아요. 속이 편하고 술 먹고 난 뒤에도 좋고. 처녀들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데. 내 건강 관리법이라.^^”

<동의보감>에는 팥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팥의 맛은 달고 시며 성질은 평하거나 따뜻하고 독이 없다. 심, 비, 폐, 소장경에 작용한다.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습을 제거하고 혈을 조화시키고 고름을 배출시키며 부기를 가라앉히고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 수종각기(水腫脚氣, 다리가 붓고 저리고 약해져 제대로 걷지 못하는 병증), 황달, 설사, 혈변, 부스럼을 치료한다.”

할아버지께서 15년 단골 같으면 못해도 20년은 하셨지 싶어 “할머니 그러면 여기서 20년 정도 하셨겠네요?”라고 유도 질문을 해본다.

“20년 가지고 뭐 한다고 할 수 있나”며 마지못해 말씀을 툭 던지시며 또 손님들을 챙기신다. 기회다 싶어 말을 이어본다.

“하고많은 음식 중에 할머니는 왜 팥입니까?”

역시 아무 말씀 없이 손님들에게 죽을 더 얹어주신다. 죽 다 비운 손님한테는 “단술 한 잔 드릴까?” 하시며 단술을 권하신다. 옆에 있던 분이 “하이고~ 오늘 인터뷰 학실히 하네.”라며 거든다.

“이걸 그릇 밑에 받치고 쥐면 손을 안 버려요.” 작은 접시를 죽 그릇 밑에 받쳐주신다. 그릇 물기가 손에 묻을까 하는 배려다.

그러면서 “입이 알면 됐지.” 하시면서 죽 한 국자를 더 얹어주신다. 거의 두 그릇인 셈이다.

“입이 알면 됐지?” 아마도 맛있으면 그만이지 뭐가 더 필요하냐는 말씀이신 듯하다. 남의 칭찬에 목말라 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데 목숨 걸다시피 하는 요즘 세태에 할머니의 한마디가 죽비 같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1910년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유행가이다.

이 노래를 떠올린 건 <딱지본> 책 때문이다.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 3층 역사관에 가면 더 볼 수 있다. 왕년에 공부는 못해도 딱지만큼은 져본 적이 없는데, 왜 딱지본이냐고라?

책 표지가 울긋불긋하게 딱지처럼 인쇄되어 있어서 ‘딱지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20~30년대 사이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일제시대의 베스트셀러다. 봇짐장사, 장돌뱅이들이 전국의 장을 돌면서 6전(錢)에 팔았다 해서 ‘육전 소설’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대중 교양 문고본으로 ‘십전 총서’보다 싸다고 해서 ‘육전 소설’이라는 말도 있다. 이 총천연색 책은 싼 값에 대량 인쇄되어 널리 보급됨으로써 대중적인 책읽기의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제시대 통속문화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어서 내용을 볼 수 없다.

“책을 만지며 내용도 읽어보게 해야 하는데 박제된 유물을 전시하는 게 아쉽습니다. 하여, 4월엔 내용을 촬영하여 전시실 모니터로 상영할 계획입니다. 많이 애용해 주셔요.”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을 위탁 운영하면서 ‘문화예술사업단 BiKi’를 이끌고 있는 김상화 교수의 말이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와 부전시장 일원에서 열린 ‘시장통 비엔날레’를 만든 장본인이다. 생긴 건 두꺼비처럼 생기셨는데 하시는 일들은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들이라 조금은 의아하다.

하지만 두꺼비가 원래 좀 섬세한 동물이다. 생태환경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지표종이다. 요 근래에 두꺼비들의 산란 시기가 앞당겨져 난리다.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는 거다. 두꺼비가 살 수 없으면 인간도 결국 살 수 없게 된다. 문화 역시 그렇다. 인간이 문화를 만들지만 문덕교화(文德敎化), 문화가 인간을 교화한다. 두꺼비 김상화 교수가 부산 문화판 환경지표종 역할을 잘 해 주시길 기대한다.^^

2층 생활관에서 옛날 보수천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입구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그 사진 알겠어요?” 하신다.

“예.” (사실은 모르는데.ㅋㅋㅋ 보수천, 흑교 한 번도 본 적 없는데ㅎㅎ)

“(보수천)사진을 보고 안다고 하길래 교감이 되고 말이 통할 줄 알았어요.^^ 여기 오기 전에는 백산기념관에 있었어요. 백산 안희제 선생이 의령 분이신데, 거기(백산기념관)에는 백산 선생에 관한 옛날 책들도 있고 해서 짬짬이 공부도 하면서 안내했는데, 여긴 옛날 추억을 같이 좀 공유를 해야 설명이 되고 말이 통하니까 젊은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안내해야 하나 좀 막연하지요.^^”

할아버지는 말씀하실 때마다 얼굴 가득 미소가 넘치신다. 책방골목 문화관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일흔 둘 새내기 안내 할아버지’인 셈이다.

“하다못해, 나도 학생 때는 자주는 안 하고 두어 번 한 적이 있지만, 신학기 때 책 산다고 돈 받아서 여기(보수동 헌책방 골목) 와서 헌 책 사서 책거풀 깨끗하게 씌우가지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돈 삥땅친, 그런 기억이라도 좀 있어야 말이 통하거든.”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다. 2, 3층 전시물들은 모두 추억이라는 코드에 맞춰져 있다. 시간적으로는 ‘과거’다. 빛바래고 곰팡내 나는 아련한 추억만 가지고서 보수동 책방골목과 문화관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상화 대표의 말처럼 ‘박제화’되어 있다.

공간적인 문제도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고갱이는 까마득하게 쌓여있는 헌 책들과 좁고 어둑한 골목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헌 책방들,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으로 책을 뒤지는 사람들과 주변 골목길들의 살아 있는 풍경 속에 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안아 올릴 것인가 하는 것이 책방골목 문화관이 가진 고민일 터이다. 이 고민을 해결하는 데는 중구청과 지역상인, 주민들의 마인드 변화와 적극적인 동참도 필요하다. 책을 매개로 한 문화마을을 만들겠다는 생각과 주민 활동, 전폭적으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원칙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건 또 어떨까? 부평시장 상인들에게 책방골목의 헌책을 대여해 주는 거. 이왕 헌책 파는 거 좀 더 돌려본다고 상품성이 떨어질까? 문화관이 직접 시장통을 돌아다니면서 주문-배달-반납의 서비스 맨 역할을 한다면.^^

“일본에서 태어나서 5살 때 현해탄을 건너왔지요. 대교동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어요. 내 평생 중구에서 살았어요. 아침에 여기 올 때 친구들에게 그래요. 나랏돈 받는데 출근한다고. 내한테는 고마운 일이지. 이제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일이라 생각하고 집에 갈 때도 요 앞에서 책도 사서 읽고, 사람들이 오면 뭔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도 하고 그래요.”

“임진왜란 일어났을 때 임금이랑 양반들은 지 자리, 양반이라는 거(신분) 지키는 데만 급급했잖아. 진짜 나라를 지키고 살린 건 백정, 하인으로 살던 민초들이지.

일제가 우리한테 한 짓들을 생각하면, 일본이 지금 저렇게 당하는 것이 어쩌면,,, 좀 묘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사람인데. 저들도 나라를 잘못 만났어.”

할아버지는 노인 일자리사업 참가자이시다. 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이때다 싶어 전화 받으시는 사이에 얼른 인사드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토낀다.

장장 30분 넘게, 전직 대통령들 이야기에서부터 백산 안희제 선생, 일제시대 이야기까지 이야기보따리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것도 꼿꼿하게 서서 웃음도 잃지 않으시고, 젊은 놈이 짝다리 놓는지 슬쩍슬쩍 살피시면서 쉼 없이 청산유수로 말씀하시니. 간만에 군기 한번 제대로 잡힌다. 휴~^^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1-03-2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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