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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영도다리 밑, 이야기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19)

내용

“마흔여덟 원씨 이월 며칠, 소원대로 보여주십시오~”

주문을 외우시던 할머니는 오른손을 펴서 점상(占床) 위에 엽전을 던지신다. 엽전이 일렬로 줄을 선다. 마침내 영도다리 밑에서 50년 신점(神占)을 보아온 대구 할머니의 공수가 터진다.

볕이 좋아서인지 할머니는 문을 열어놓고 지화(紙花)를 손질하고 계셨다.

“사진 좀 찍어도 됩니까?”하며 신장(神將)과 부처상을 모셔놓은 법당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데 “찍으면 안 되는데..”하신다. 머쓱해서 말머리를 돌릴 양으로 “굿도 하시나 봅니다.” 했더니 “큰 굿은 산에 가서 하고, 이런 작은 굿은 여기서도 하고 그래요.” 하신다. 손질하시는 종이배도 작고, 지화(紙花)도 몇 개 안되는 것으로 봐서 조만간에 작은 굿이 있나보다. 할머니는 작은 키에 허리를 펴지 못하실 정도로 연세가 많아 보이신다.

“오늘은 왜 이리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귀찮으신 듯 한 마디 특 뱉으신다.

“영도다리 없어진다고 아마 그럴 겁니다.”

“없어지면 또 생길 건데 뭐하러...” 한마디 더 뱉으시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한때 영도다리 밑에는 점집이 50개가 넘었다고 한다. 지금은 간판 달린 집이 네 집, 영업을 하는 곳은 장미화 점집과 소문난 대구 점집, 소문난 철학관 세 곳뿐이다. 세 곳 모두 노인 분들이 지키고 계신다. 더 이상 사진 찍고 말붙이기가 거시기 해서 옆에 있는 ‘장미화 점집’ 문을 두드린다.

마침 전화중이시다. “계란이 너무 좋고 싱싱하네. 뭐 하러 이렇게 챙겨서 보내주고... 잘 먹을게. 그런데 감기에 계란 먹어도 될까?” 누군가 계란을 보냈나보다. 방바닥에 깨진 계란 닦은 흔적이 있다.

전화를 끊고 돌아앉으시는데 눈을 감고 계신다. “어떻게 왔어요?”

장미화 점집은 맹인 할머니가 하시는데 소위 육임과 명리학이 전문이다. 영도다리 밑에서 점을 본 지는 25년 정도 됐다.

“여기 점집이 많았다고 하는데 다 어디 갔습니까?”

“다 죽었어요. 장사가 안돼 떠난 사람도 많고.”

“그러면 여기서 제일 용하다고 소문난 분이 누구셨어요?”

망설임 없이 답변이 돌아왔다.

“봉선화”

“그 분은 지금 어디 계신지 아세요?”

“죽었어. 자기 명도 다 못 채우고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 아깝지. 60살도 못 살았어. 죽은 지가 벌써 20년이 다 됐어요.”

기침이 잦으신 걸로 봐서 감기가 심하신가 보다. 왜 돌아가셨는지 궁금했지만 거시기해서 그냥 나온다. 길모퉁이를 돌아 계단 바로 옆 2층 ‘소문난 철학관’으로 들어간다.

좁은 방은 신장을 모신 법당과 손님을 상담하고 점을 치는 탁자, TV, 밥솥 같은 가재도구들이 있다. 세 곳 다 비슷하다. 적당하게 빛이 들어오는 방 안. 낡은 나무 창틀에 낀 유리창 너머로 배들이 하얀 파도를 만들며 오가는 모습이 참 좋다.

“6.25로 사람들이 많이 헤어졌어. 생사를 모르는 거야. 그때는 어디 만날 데가 있나. 어디서 보자고 할 데가 없잖아. 영도다리에서 보자, 그러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돼. 다리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얼마나 사연들이 많겠어. 그래서 점집들이 여기로 모인거지. 여기뿐만 아니고 저, 옛날 시청자리 뒤에도 점집이 많았어.”

“여기 제일 용하다고 하시는...”

할아버지께서 말머리를 끊고 말씀하신다.

“요 밑에, 대구 할매. 거긴 점을 봐. 난 점 보는 게 아니라, 철학이고.”

할아버지는 “점 본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듯하다.^^

“그게 아니고예. 봉선화라는 분이 계셨다고 하던데.., 얼마나 잘 보셨습니까?”

“아, 대단했지. 죽기 전에 바로 이 방에서 점을 봤어. 그 다음에 김 장님이 하셨고. 내가 이어받았지. 둘 다 대단했어. 그때는 밖에 줄을 섰어. 말 한 번 들어볼라고 여관에서 며칠씩 기다리고 그랬어."

문 입구에 “금강산 철학관 30년 전부터 이름난 김 장님”이 그 분인 듯하다.

“명리학이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때는 6.25 때로, 영도다리 밑에서였다. 영도다리 밑에서 좌판 깔고 앉아서 사주팔자를 봐주던 사람들은 먹고살 게 없었던 이북의 사주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요즘도 역술계에 진출하려는 사람은 일단 부산의 고수들을 먼저 탐방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가하면 한국의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도 ‘부산 시절’을 거쳤다.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도 젊었을 때 부산에서 고학하면서 생활한 적이 있고, 통일교의 문선명 목사도 6.25 이후 부산에서 목회를 하였고, 산앙촌의 박태선 장로도 부산과 연고가 깊다.” <조용헌의 소설>

부산이 ‘점술(占術)의 메카’였던 셈일까.^^

“할아버지도 손님이 많았겠는데요?”

“내가 여기서 40년을 했으니 이름 지어준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은 되지. 그런데 별 거 없어. 요 앞에도 (명리학) 학원이 있잖아. 요즘 젊은 사람들 명리학 배운다고 난리던데. 별거 없어. 패가망신 안하면 다행이야. 이건 무슨, 눈에 보이는 상품 파는 게 아니잖아. 시내에 작은 사무실 내고 그러면 사무실 전셋값에, 다달이 물세, 전기세 다나가잖아,,, 대부분 6개월도 못 견디고 무너져. 우리는 여기서 늙었으니까 (계속)하고 있는 거지. 별 거 없어.”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별 거 없어”라는 말씀을 날리신다.

점술(占術)을 신통방통한 그 무엇으로 보는데 대한 경계심을 주시려는 듯한..

“정월, 이월 지나면 찾는 사람 별로 없어. 연초에 한 해 운세 보러 오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요새는 인터넷으로 토종비결도 보고, 자기 사주 자기가 본다면서? 휴대폰으로도 본다던데 나도 어디 가서 전화기도 바꾸고 인터넷도 배우고 할까봐. 어디서 가르쳐주는지 아시오?”

“주민 센터 같은데 가시면 공짜로 배울 수 있을 건데요.”

“나이 들면 이런 일도 있데. 내가 최근에 횡재를 했어. 통장에 돈이 60만원 들어와 있더라고. 노인연금인가 했는데, 그거보다 더 많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돈이 어디서 들어왔는지. 그래서 아이고 이거 횡재다 싶어서 밑에 할머니들(장미화, 대구 점집 할매를 말씀하시는 듯)한테 짬뽕 한 그릇씩 샀지. 그런데, 이걸 봐.”

할아버지가 통장을 꺼내 보여주신다.

“전화 해지 하셨어요?”

통장 입금란에 ‘KT 환급’이라고 적혀있다.

“하하, 젊은 사람이라 금방 아네. 그게 공짜로 들어온 돈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다시 내려가서 짬뽕 값을 다시 받았지.”

“하하하,, 운명을 보시는 분이 바로 한 치 앞을 못 보셨네요?”

“..............”

“............ -_-;;;; ”

서둘러 일어서서 방을 나온다.(오늘 일진에 구설수가 끼었나,,,) =3=3=3=3=3=3~

대구 점집 용하다는 말에 ‘소문난 대구 점집’으로 가본다. 할머니가 다시 나와 계신다.

“점 좀 볼 수 있습니까?”

“아, 그럼. 볼 수 있지요. 들어갑시다.”

할머니 태도가 급달라진다.

“복채부터 올려놓고.”

세 집 다 2만원, 권장소비자가다.

영도다리가 철거되고 있다. 영도다리 밑의 점집들도 사라질 운명이다. 점집들이 있는 자리엔 ‘영도다리 전시관’이 들어설 계획이다. 영도다리 밑 점집은 민족의 수난사를 안고 있는 곳이며, 서민들의 애환과 소망이 서린 장소다. 그 애환과 소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도 부산의 저력일 터이다.

영도다리는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2009년 KBS 극본 공모 당선작 '영도다리를 건너다'(황민아 작가)는 정진영과 정은채 주연의 설 특집 드라마로 만들어져 피보다 더 진한 가족애를 그리면서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또 하나가 더 있다.

경성대학교 교수인 전수일 감독의 ‘영도다리 I Came from Busan’ 역시 영도다리와 미혼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도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영도다리는 서민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스토리 무궁무진한 문화 아이콘이다.

세상은 또, 바야흐로 '스토리텔링'을 마치 무슨 금과옥조인 양 목말라 하고 있다. 없는 이야기, 바닥난 상상력을 쥐어뜯지 말고, 부서져나가는 영도다리에 붙어있는 이들 서럽고 안타깝고 아름다운 부산 이야기들을 잘 보듬어 엮어나가는 것도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타로점이 신점(神占)과 토정비결을 몰아내고 상업적으로 성업을 하고 있듯이, 우리는 박제화 된 옛 이야기만 전시관에 넣어버리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일제는 식민지 수탈을 위해 일본 본토에서 자재를 가져와 영도다리를 만들었다. 그 위용과 기술에 식민지 백성들은 찬탄을 금하지 못하며 주눅들어했다.

이제 새 영도다리가 만들어진다. 우리 기술과 우리 자재로 만드는 다리다. 새 다리와 함께 서민들의 희망이 새록새록 피어나길, 소문난 대구 점집 할매의 공수로써 빌어본다.

“신묘년 일년 내내 온 시민 가화만사성 소원대로 만사형통하여 주십시오~”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1-03-15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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