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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새벽을 여는 사람들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⑩

내용

백열등 불빛이 소한(小寒) 추위에 빨갛게 상기된다. 시장 골목 여기저기 화톳불이 피어오른다. 장작 타는 연기가 새벽안개 마냥 퍼져나가면 꽁꽁 언 시장 바닥에 채소를 부려놓은 푸른색 1톤 트럭이 털털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추위에 아랑곳없이 파를 다듬고, 채소를 종류별로 나누고, 얼음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과일을 진열하는 시장 사람들의 분주함 속에서 세상의 어둠이 한 겹 한 겹 무너지며 새벽이 깨어난다. 세상 사람들의 밥상을 준비하는 성스러운 시간이다.

“여기서 장사한 지 20년 됐어예. 경륜장 옆에 신천에서 농사짓는데 우리 꺼도 가져오고, 새벽 2시에 부전시장 가서 받아오고 그라지예. 옛날에는 인근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기 집 채소 가지고 나와서 팔았거든예. 낮에는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새벽 일찍 나와서 팔고 한 10시쯤 되면 다시 농사지으러 (집으로) 들어가야 되니까 새벽에 장이 섰어예. 그래서 새벽시장이지예. 싱싱한 기 많다는 소문 듣고 식당 하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많이 사가니까 일반인들도 많이 오고, 그래서 유명했지예.” 털모자를 눌러쓴 남산동 새벽시장 총무 아지매의 예쁜 볼우물에서 새벽시장 자랑이 쏟아진다.

남산동 새벽시장이 지금 자리로 오기 전에는 범어사 밑, 그리고 농협 하나로마트 자리에 장이 섰다. 범어사 일대엔 노포동, 두구동, 더 멀리는 양산, 철마를 비롯해 농사가 잘되는 채마밭과 농촌 마을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싱싱한 채소 등속을 지고 나와 파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쉽게 장이 섰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인근 노포동(老圃洞)의 ‘포(圃)’는 '채마밭'이란 뜻이다. 노포동은 ‘농사가 잘되는 마을’인 셈이다. 거기에다 범어사라는 큰 사찰이 있으니 절에 불공드리러 오는 사람, 관광객을 대상으로 밭에서 거둔 것들을 내다팔기가 쉬웠을 것이다.

남산동 새벽시장은 새벽 5시 반부터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 전에 여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가 5시 반부터 6시 사이에 문을 연단다. 시장 입구 복개천 옆에서 채소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는 대파 한 상자를 벌써 다 다듬어간다.

“내 찍어간 사람 억수로 많은데. 사진 공부하는 학생들 숙제한다고 내하고 이 불(火)하고 많이 찍어 갔다 아인교. 인생고(苦)가 뭔지 보여 줄라고 그라는지....

사진 잘 찍는 사람은 진짜 잘 찍더만. 그런데 나는 얼굴이 못생겨서 그런가 사진이 잘 안나오데. 마할라고 내를 찍노, 마 불이나 찍지.”

할머니는 새벽시장서 27년간 장사를 해오셨다. 범어사 밑에서도 장사를 하셨다고 하니 새벽시장의 산증인이시다. 할머니 역시 부전시장에서 새벽 두 시에 물건을 떼 오셨다.

예전처럼 자기 밭에서 기른 것을 파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거의 다 부전시장과 농산물시장에서 물건을 해온다. 오전 10시경에 파하는 것도 없이 밤까지 하루 종일 장사를 한다. 겨울이라 새벽 5시 반에 문을 열 뿐, 여름엔 더 일찍 장사를 시작한다고 하신다. 새벽 두시에 물건 떼오랴, 새벽부터 준비하고 장사하랴, 그리고 살림하랴.... “인생고(苦)가 뭔지 보여 줄라고 사진 찍냐”는 할머니의 푸념 아닌 푸념이 새삼 가슴 속에서 팍팍하게 느껴진다.

이 새벽에 장을 보러 오는 사람은 있을까? 시장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사이에도 오뎅이며 생선을 사가는 주부들이 몇 명 보인다. 시장 안에는 재첩국을 끓여 파는 집도 있어서 신선한 아침 밥상을 준비하려는 부지런한 주부들의 발길이 잦단다. 날씨가 풀리면 새벽부터 시장 골목은 제법 분주해져 새벽시장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단다.

“들어와서 막걸리나 한 잔 하소.”

시장통 장터식당을 기웃거리니 새벽밥을 드시던 분이 들어오라 연신 재촉한다.

“이 집 밥이 억수로 맛있어요. 식당에서 이런 밥은 처음이라. 반찬도 좋고. 내가 이 동네 이사 온 지 8개월 됐는데 이 집 단골이 됐어요. 추운데 막걸리나 한 잔 하소.”

밤일 마치고 새벽 퇴근길에 한 그릇 하고 들어간다는 아저씨가 막걸리 한 잔을 권하신다.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빈속에 막걸리 마시면 더 춥다고 된장국을 내온다. 거기에다 뜨끈한 밥도 한 주걱 넣었다. 근무 중에 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에 반잔만 마시겠노라 하고 입만 축이고 된장국을 훌훌 마신다. 정말 맛있다. 대형마트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뜨끈한 ‘정(情) 맛’이다. 아예 한 그릇하면서 퍼질러 앉고 싶은 유혹을 떨치고 시장통을 한 바퀴 돈다.

어물전에 ‘진품 가덕 대구’ 안내판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용원에서 받아온 거란다. 찬 바람 쌩쌩 부는 겨울철은 가덕 대구 맛이 절정을 이루는 제철이다. 가덕 대구 한 양푼에 김이 솔솔 나는 흰 밥 한 그릇 그리고 맑은 소주 한 잔이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대구(大口)는 글자 그대로 ‘입이 큰 생선’이다. 입이 크니 당연히 대가리도 크다. 그래서 별명이 대두어(大頭魚)다. 용불용설(用不用說)에 따르자면 머리가 크면 분명 거기도 뭔가 거시기 한 것이 있다.^^;;

역시나, 대구 머리엔 콜라겐, 젤라틴이 풍부하다. 대구뽈찜, 대구뽈탕 같이 대구 머리로 요리한 음식이 더 비싸고 맛이 나은 이유다. 동의보감에선 구어(口魚)라고 하는데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기를 보한다”고 하였다. 노화 막고 피부미인 만드는 종합비타민인 셈이다.

가덕 대구는 1월에 금어기라 가격이 비쌀 거라 생각했다. 새벽시장 8년차 초년 아주머니는 그렇지 않다 하신다. 크기에 따라 2만원부터 3, 4만원 가격이 다양하단다. 통닭 한 마리 값에 2-3천원만 더하면 네 식구가 이틀은 대구탕으로 보신할 수 있다. 부산시와 강서구가 실시해 온 ‘대구 인공수정란 방류사업’ 덕택이다. 수정란을 방류하기 전엔 가덕 대구 어획량이 너무 적어서 ‘금대구’라 부를 만큼 서민은 먹기 힘든 생선이었다. 가덕도 의창수협 위판장에서 거래된 자료를 보면 2004년에 잡힌 것이 불과 1만7천여 마리였는데 수정란 방류사업을 하면서 크게 늘어나 2008년에는 무려 7만여 마리로 4년 만에 약 4배 가까이 어획량이 늘어났다. 올해 역시 대구 풍년이란다.

싱싱하고 좋은 대구를 고르는 방법! 아시는가?

빛깔이 푸르스름하고 배 부위에 탄력이 있어야 하며, 아가미는 선홍색을 띠고 비늘이 황금색으로 빛이 나는 게 좋단다. 가덕 대구 먹고 힘차게 새해를 시작하자.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1-01-1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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