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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신평공단 열 받았나? 스팀 하얗게 올라오네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⑨

내용

에덴동산은 멀지 않다. 지하철 하단역에서 곧장 10분 거리에 있다. 일반적으로 에덴은 낙원(樂園), 행복의 땅이다.

구약성서에는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 그들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2절엔 이렇게 적고 있다.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고...”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보면, 하나님은 ‘하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복수(plural)다. ‘우리처럼 선과 악을 알고, 끝없이 살게 될까 염려돼서’ 사람들을 쫓아낸 거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는 ‘선악과 따먹지 마라’ 시킨 대로 안한 거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랬으면 이 엄동설한에 하릴없이 골목길 어슬렁거리지 않고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건데...

그건 그렇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말썽부리면 집 밖으로, 학교 밖으로 내쫓는 건 아마도 하나님에게서 배운 전통인가 보다.

성경 속의 에덴처럼 에덴공원에도 나무가 많다. 산책로며 운동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 에덴공원은 일반 공원이 아니라 사유지이며, 유원지(遊園地)이다. 어느 뜻있는 분이 시민들을 위해서 산 전체를 선뜻 내놓으신 거다. 성경과는 달리, 사람을 내쫓지 않고 “에덴으로 들어와 우리 같이 끝없이 함께 어우러져 운동도 하고 사이좋게 놀자”는 거다. 이 대목에선 박수가 나와야 맞다.^^

그런데 이곳을 공원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왜 공원을 개인 맘대로 하느냐”고 불필요한 간섭을 많이 하나 보다. 공원을 사랑하는 마음에 시비가 잦고 신고까지 하는 듯 이런 푯말이 눈길을 끈다.^^

누군가는 베토벤 <운명 교향곡> 첫 소절, “바바바밤~ 바바바밤~”에 이런 가사를 붙이곤 했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안주 왔다~~..”

에덴공원에는 베토벤 운명 교향곡 때문에 운명이 바뀐 분이 계신다.

관현악 운동의 선구자로서 부산시립교향악단 창단을 주도한 고 오태균 선생의 음악비가 여기에 있다.

오태균 선생은 부산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인 가운데 한 분이다. 부산대학교와 부산여자대학교 교향악단을 창설하였고, 부산교향악단과 부산시립교향악단을 만들어 상임 지휘자로도 활동하였다. 교육자로서도 부산 음악 발전에 평생 이바지하셨다. 그 분의 호 ‘고향(孤響)’처럼 노을빛 머금은 호젓한 음악비에서는 금방이라도 낙동강을 빼닮은 관현악이 유장하게 흐를 것만 같다.

시비는 낡고 빛바랜 깃발처럼 오래되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시정신(詩精神)만큼은 뼈를 파고드는 매서운 칼바람처럼 희고 맑다. 청마 유치환 시비 앞에서 사라진 것들을 추억한다. 을숙도를 오가던 통통배와 낡은 도선장(導船場), 토주, 마지막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같이 손잡고 노을 어린 갈대밭 사이를 달리던 연인들. 낙동강 하구둑이 건설되면서 사라진 것들이다.

유치환의 깃발은 슬프고도 애달팠다. 그때 그들은 간 곳 없고 오늘도 깃발만 나부끼는데, 이제 우리가 달아야 할 깃발은 무엇일까?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를 노래하며,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듯한 강과 노을을 만나러 간다. 그런데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동계 혹한기 지옥훈련이란 말은 익히 들어봤지만, 지금 이 풍경에선 입이 절로 딱 벌어지며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 바깥 온도가 ‘영하 2도’라고 들었는데, 네 신선이 추위엔 아랑곳없이 의연하게 귤중지락(橘中之樂)을 즐기고 있다. 다가가 정중히 여쭙는다.

“저,, 사진 한 장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

“저, 선생님들 모습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도 괜찮겠는지...”

“................”

“삼 세 번”이라고 했다.

“그럼, 사진 한 장 찍겠습니다.^^”

“................”

육체의 고통,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난 저 적정(寂靜) 열반의 경지여! 꽁꽁 얼어 카메라 셔터조차 눌리기 힘든 부실한 손가락을 탓하며 스스로 낙원에서 쫓겨난다.

강은 흐른다. 강은 말없이 흐른다. 강은 어디로 흐르는 걸까?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해질녘 강은 울음이 타는 강이라고.
그런데 나는, 서러운 사랑 이야기 한 자락도 없이 무슨 토해낼 울음 있어 여기까지 왔는가.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흐른다. 강은 새와 물풀과 돌과 흙과 바람 사이로 흐른다. ‘사이’를 두지 않으면 강은 흐를 수 없다. 흐르지 않는 강은 고정형이며 과거형이다. 그러기에 강은 늘 현재며 미래다. 강은 미래를 향해 흐른다. 강물소리 귓전에서 철렁거린다. 무상(無常)타.

올해 골목길 어슬렁거리기도 낙동강의 어둠과 함께 여기서 길을 맺는다.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아 송구할 따름이다. 내년에도 골목에서 반갑게 눈인사라도 마주할 수 있길 소망한다.

감사합니다. 새해 더욱 건승하십시오.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0-12-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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