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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빛과 그리고 그림자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⑥

내용

사하구로 넘어가기엔 많이 늦었다. 겨울 해가 무척 짧다. 122밀리가 안되면 76밀리다. 길게 못 가면 짧게 간다는 거다.^^;; 게다가 곧 술시(戌時)다. 골목이 즐거워할 시간이단 말이다.

길은 40계단 인쇄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광복로로 해서 고갈비 골목으로 이어진다. 11월 17일자 <물의 집 수정(水亭), 그리고...>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다진다. 오늘 목적지는 고갈비 골목이다. 쯔읍~^^


한마디로 ‘빛과 그늘’이다. 광복로에는 빛이 넘친다. 하지만 인쇄 골목과 고갈비 골목엔 그늘이 짙다. 늘 그렇듯이 영화에서처럼,

갑(甲): Well, do you want the good news or the bad news first?

을(乙): Give me the good news first

갑(甲): 오케이, 그럼 빛에 대해 먼저 말하련다.

광복로에는 트리문화축제 중이다. 길을 따라 장식등 불빛이 화려하다. 사진 찍는 연인들, 친구와 가족 단위로 추억 만들기가 한창이다. 밤거리의 화려한 불빛과 흥겨움만큼이나 아침에도 거리가 깨끗하게 지켜져 출근길 시민들을 맞았으면 좋겠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10점!”

한 가지 아쉬운 점, 대각사 쪽과 보수동 쪽으론 장식등이 좀 소홀하다 싶다. 그늘이 진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국민학생 때 들은 최희준의 노래 <빛과 그리고 그림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이 왜 천국이 되고, 지옥이 되는지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인쇄 골목에서 만난 30년 베테랑 인쇄인도 행복과 불행,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단다.

“하루에 2개 생기고 3개 망한다고 보면 됩니다. 요 며칠 전에도 하나 문 닫았다 아입니까. 중국에서 1/3 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데 무슨 수로 견딥니까? 돈이야 일이 있으면 열심히 하는 만큼 벌 수 있지만 거래선이 떨어져나가면 일이 없어지잖아. 그게 슬프고 겁나는 거라.

나는 노르웨이, 일본에 수출도 하는데 이 사람들은 글자 사이사이 간격까지 자로 재보고 아니면 클레임 걸어뿌거든. 돈 못 받는 게 분한 게 아니라 자존심이 팍 상하더라고. 지금은 그 사람들이 (일 잘한다고) 다 인정해주. 그런데 우리 견적 넣는 거 하고 (중국쪽 견적) 비교하면 가격 싸움이 안 되는데 무슨 크게 남가(남겨) 묵는(먹는) 것처럼 생각한다꼬. 재료상(종이, 잉크를 말하는 듯)들이야 돈 벌겠지.”

연말이다. 내년 달력 주문이 좀 들어 오냐고 묻는다.

“올해는 작년 1/3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가게 문을 닫고 골목을 빠져나가는 그의 어깨 위로 그늘이 무겁다. 오래 전 문을 닫고 주차장으로 변한 서라벌호텔이 을씨년스럽다.


고갈비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 곳이다. 옛 미화당백화점 뒤로 들어가는 길과 로얄호텔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어둠의 화신처럼 서 있는 불 꺼진 로얄호텔이 골목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문을 닫은 채 방치된 대형건물이 자칫 말끔히 정비된 광복로의 오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고갈비 골목엔 고갈비집이 딱 2곳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골목은 더 어둡고 고기 굽는 냄새와 주당(酒黨)들로 즐거워야 할 시간이 몹시도 쓸쓸하다. 할매집의 할매는 올해 여든 네 살, 용띠. 남포동 일대에서 60년, 이 골목에서 고갈비만 40년 하셨단다.

아들이라는 분이 고갈비를 내어온다.

“생 고등어만 쓰기 때문에 맛이 있지. 요즘은 냉동 고등어를 많이 쓰잖아. 옛날엔 (생선)상자도 크고 고기도 많이 담아줬는데 요새는 상자도 작고 고기도 작고.”

(아들보고)“니 또 매 꿉었제? 니 맘대로 매 꿉지마라 안카더나. 새로 살짝 구버서 드리라.”

“요새 애들은 바싹 굽은 걸 좋아하는데 고갈비는 살짝 꾸버야 부드럽고 맛이나. 손님 살펴서 바싹 굽지마라 그래도 저 놈이 지 맘대로 바싹 구버서 내놓아서 내가 새로 구워드리라 했소.”

그럴 필요 없으시다 했지만 살짝 잘 구운 고갈비 반 마리가 덤으로 나온다. 역시 처음 것과는 맛이 다르다.

그 많던 고갈비집이 다 어디로 갔냐고 여쭤본다.

“나이 많아서 죽은 사람도 있고. 땅값이랑 가게세가 올라서 장사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요 옆에 할매도 얼마 전에 죽었잖아. 그래서 가게 문 닫고. 이거(집)라도 가진 사람만 남아있는 거지. 평생 해온 게 이거밖에 없어서 다른 것도 못하고. 이젠 발이 아파서 일도 못하겠고. 그래서 내가 (아들이 일하는 것만)보고만 있잖아. 우리 며느리가 오면 계란말이를 해줄건데. 우리 계란말이는 다마내기(양파)를 쫑쫑 많이 넣어서 맛이 좋은데...”

아들 되시는 분에게 ‘언제까지 고갈비를 하실 거냐?’고 물어본다. 오래 하지는 않을 거란다.

연탄불에 석쇠로 굽는 것이 전통적인 고갈비 굽는 방법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냄새와 연기가 너무 나서 못한단다.

이젠 오래지 않아 고갈비 골목에 고갈비집이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고갈비집이 떠난 장소엔 벌써 국적 없는 퓨전 주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일본 신요코하마역 근처엔 연간 방문객 160만 명을 자랑하는 라멘박물관이 있고, 후쿠오카 캐널시티엔 라멘스타디움이란 것이 있단다. 일본 각지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라멘 전문점들이 모여 있다는 곳들이다.

시설은 현대화하고, 요리 방법은 전통과 다양화를 추구하면서 고갈비 골목을 일본처럼 고갈비 전문 타운으로 변신시켜 보는 건 어떨까? 고갈비 골목이 추억 속으로 멀리 사라지기 전에...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0-12-0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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