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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구포에는 구포국수 공장이 있다? 없다?

[기자 블로그]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①

내용

동네 골목길에서 어슬렁거린 적이 있는가? ‘뛰는 듯 나는 듯’ 정신없이 살아가는 세상, 문득 동네 골목길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어슬렁거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여행의 참맛은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데 있다 하였던가. 골목길에서 어슬렁거리기의 진수도 ‘아무 할 일 없는 데에’ 있다. 카메라 하나만 달랑 매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골목길에서 길을 묻고, 구경을 한다. 동네 골목의 야생 풍경, 날것 그대로의 참맛을 느껴보시라.

지하철 구포역에서 내린 이유는 단 하나. 오래된 이발관이 있다는 거다. 어떤 이발관인가 궁금했다. 방송과 인터넷에도 몇 번 소개된 적이 있다. 구포역 앞에서 구포시장 방향으로 5분가량 걸으면 나온다. 한가한 오후 시간이라 골목마저 한가하다. 커튼을 들추며 들어간다. 막 이발을 끝낸 손님 한 분이 머리를 감고 있다.


“안녕하세요? 이발하러 온 건 아니고요, 이 건물 오래된 거 같아서요. 몇 년이나 됐습니까?”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가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신문을 집는다.^^;; 사람 좋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손님 머리를 감기며 답한다.

“80년 넘었을 낀데...”

“손님 많겠네요?”

“먼 데서 오는 손님이 많아요. 헛소문 듣고 오는 사람들뿐이지.”

“헛소문이라고 하면...?”

“방송보고 오래됐다, 싸다는 소문 듣고 오는 사람들이지 뭐. 여 동네가 다 뜯기고 재개발 한다고, 사람이 없어서 손님이 없어. (장사가)안돼요. 옛날에는 요 앞에 철길 건널목이 있어서 사람이 많았어요. 한꺼번에 300명씩 건너다니고 그랬는데.”

1층을 이발관으로 사용하는 일본식 이층 건물은 이제 90살이다. 너무 오래 돼 이층은 사용하지 않는다. 뒤로 붙은 건물도 90년 전에 함께 지어졌다 한다. 지금은 건물 주인이 살고 있단다.

“그러면 아주머님은 이 건물 주인이 아니시네요?”

“우리는 이발관 임대했고. 이 분이(낡은 액자 안에 ”75년 이발관 45년 이발사, 이발 외길 인생 박상구 씨“라는 신문 기사 스크랩된 것과 표창장을 가리키며) 주인인데 지금은 병이 나서 이발을 못해요. 그래서 우리가 인수해서 이발관을 하고 있어요. 우리도 여서 한 30년 됐지.”

이발관 안에는 온통 옛것들로 가득하다. 박상구 씨가 이곳에서 이발관을 하면서 갖춘 것들 그대로다. 일제시대에 이 건물이 생기고부터 이발관은 여기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발사만 바뀌었을 뿐. 그러면 이 이발관은 마치 수령이 90년 된 나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건물 자체가 목조건물이다. 너무 오래돼 기와를 입힐 수 없어서 슬레이트로 덮었다.

마침 ‘구포시장 장터축제’ 중이다. 시장 입구에 무대를 만들고 관람 의자를 깔았다. 그런데도 복잡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장 안도 반듯하고 깔끔하다. 부산시가 재래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환경개선사업을 한 결과다. 주 통로에 아치형 지붕을 덮고 바닥도 깨끗하게 포장되어 장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시설은 현대화 되었지만 인심은 그대로다.


장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각설이. 각설이의 익살에 사람들은 가던 길도 멈추고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좌판에 앉아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어르신들 모습도 정겹기만 하다. ‘구포시장 장터축제’ 무대에는 7쌍의 노부부들이 올랐다. 최고 오래된 부부를 뽑는다. 모두 40년을 넘게 같이 사셨다. 1등은 결혼생활 55년. 사회자가 할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말해보라 한다. “술 많이 안 자시면 좋겠어요.” “그저 나를 예뻐해 주고 기쁘게 해줘서 고마워요.”

아무 생각 없이 어슬렁거려도 위장은 생각을 한다. ‘비움과 채움의 때’를 귀신처럼 아는 것이다.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건만 갓난쟁이조차도 용하게 안다. 채움의 때가 되었다. 구포하면 역시 ‘구포국수’를 먹어줘야 빈둥빈둥거림의 미학을 완성하는 바, 모종 파는 골목에서 길을 묻는다.

“여기 국수 제일 잘 하는 집이 어딥니까?”

“국수 잘 하는 집이 어데고?” “다 잘 하지. 여 안에 국수 안하나?” 좀처럼 의견들이 정리되지 않는다. 혼란스럽다. 그러나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의 전환은 필연적이며, 그 원동력은 바로 생명에의 사랑인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해내는 불세출의 영웅은 반드시 있는 법.

“요 앞에 골목으로 들어가서 왼쪽에 마당집으로 가보소. 지금 할란가 모리겠네. 거는 바로 삶아주기 땜에 맛있어.”

마당집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서니 얼큰하게 취한 두 분이 서로 손을 다정하게 잡고는 앞서 걸어간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걸음이다. 마당집은 주차장이다.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 몇 개가 전부다. 겉으로 봐서는 국수집인지 뭔지 모르겠다.

“국수 다 떨어졌는데예. 좀 전에 다른 분이 먹고 가고 한 그릇 남은 거 있는데 그거라도 드실랍니꺼?”

‘그거라도 주이소.“하고 국수를 시키고 집을 둘러보니 작은 입간판엔 대추나무집이라고 되어 있다.

“대추나무가 어딨습니까?”

“대추나무는 여 있었는데 주차장한다고 빼부렀어예.”

이 집은 4시쯤이면 장사를 접는다 한다. 국수는 여느 국수랑 비슷하다. 국물 빛이 좀 짙어 보인다. 맛을 보니 먹을수록 당긴다. 장사가 잘 되냐고 물으니 낮에는 바글바글할 때도 있단다. 맛있으니까 올 텐데 어떻게 해서 사람이 많으냐고 하니 “뭐든지 하나라도 더 넣는 거지예 뭐. 국수 바로 삶아서 드리고.”

국물까지 다 마시니 국수그릇 바닥이 보인다. 점심땐 짬뽕을 먹었는데 오늘은 ‘면면이’(?) 이어지는구만. ㅠㅠ 국수 삶는 솥을 씻고 계신 아주머니께 국수는 어디서 받아 오냐고 묻는다. “이 자리가 국수 공장 있던 데”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공장을 경산으로 옮겼기 때문에 경산에서 국수가 온다는 얘기였다. 이 근처에는 국수공장이 없냐고 물었다.

모르겠단다. 공장이 다 떠나고 본인도 경산에서 받으니 잘 모르겠단다. 근처 국수집마다 물어보니 “배달해 주는 데가 있어서...” 라는 답이 돌아온다. 사실 구포국수로 유명한 음식점은 대부분 김해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국수를 받아온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구포에는 국수공장이 없는 걸까?

어딜 가나 그 마을을 꿰차고 있는 터줏대감은 한 사람 정도 있기 마련이다. 북동쪽 방향에서 귀인을 만난다. 귀인이 가르쳐 준대로 마지막 구포국수 공장, ‘구포연합식품’을 찾아간다. 구포에서 단 하나뿐인 국수공장이다. 간판도 없고 모텔 사이에 있어 밖에서는 국수공장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거저 평범한 2층짜리 작은 건물. 건물 가까이 가니 국수향이 새어 나온다. 이미 공장 안은 불이 꺼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분이 공장 정리를 끝내고 있다. 사장이시다. 다시 불을 켜고 일일이 설명을 해 주신다. 일이 다 끝나 기계를 껐기 때문에 실제 국수 만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걸 못내 아쉬워하신다.

“이게 반죽기인데, 여기서 반죽을 해서 저쪽으로 가면서 면발이 나와요. 이층으로 면을 올려서 건조를 합니다.”

“하루에 어느 정도 만듭니까?” 라고 물었다. 100포정도 만든단다.

“그래 가지고는 공장 유지도 못 하겠는데요”라 하니, 씨익 웃으시며 서울 등지로 가는 국수 박스를 가리키면서 “구포에서 국수 만드는 공장은 이제 여기 한 군데밖에 없어요” 라고 하신다. 마지막 국수공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다.

구포에서 국수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40년대 초반으로 추정한다. 구포역 인근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곡물하치장이 있어서 제분, 제면업이 발달했다 한다. 거기에다 지형적으로 낙동강 하류에서 불어오는 염분 섞인 바닷바람 때문에 국수를 자연 건조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구포국수 특유의 ‘염분 섞인 바람의 맛’을 낸다 한다. 바람의 맛은 인근 삼랑진, 김해 등지에서 구포장을 찾는 사람들과 6.25 전쟁 시기 피란민들을 넉넉하게 먹였다. 거기서 구포국수의 명성은 자랐다.

구포역과 구포시장이 이어진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가 드는 생각. 구포시장과 하나 남은 구포국수 공장을 이어주면 어떨까? 구포국수에 얽힌 역사성, 서민의 희로애락을 구포국수 공장 견학을 포함한 구포장 테마여행으로 개발해보면 어떨까.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0-11-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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