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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616호 기획연재

전통 불상 조성 맥 잇는 인간문화재, 국보 문화재 보수·재현·전승 외길

부산시 무형문화재 목조각장 청원스님

내용

단단하고 무심한 아름드리나무 표면에 칼질을 한다. 칼끝 힘의 세기를 조절해가며 깊게, 혹은 얕게 나무의 피부에 조형의 옷을 입힌다. 불끈 쥔 각도(刻刀) 끝을 따라 혼을 불어넣으면 나무가 입은 생채기는 그림이 되고,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된다.

그림이고 조각이되 아무 곳에나 내거는 세속 예술품이 아니요, 고뇌와 수행과 정성을 오롯이 하나로 모아야 완성할 수 있는 인고의 작업이다. 나무를 쪼고 깎아 사찰의 목각탱화를 아로새기고, 매끈하게 조각한 표면에 금박을 입혀 불·보살상을 완성해내기가 어찌 쉬운 일이랴.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0호 목조각장 청원스님.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미술학과 교수이자 스님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목조각장 인간문화재다. 그는 45년째 전통방식으로 나무를 깎아 부처를 형상화하는 힘든 작업을 해오고 있다.

14세 되던 해부터 조각칼 잡아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20호 목조각장(木彫刻匠) 청원(靑苑 · 58) 스님.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미술학과 교수이자 스님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목조각장 인간문화재다. 그는 45년째 전통방식으로 나무를 깎아 부처를 형상화하는 힘든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정부 공인 문화재 수리기능자란 직함도 가지고 있다. 조선 초기 걸작으로 꼽는 오대산 상원사의 국보 제221호 목조 문수동자 좌상을 완벽하게 보수, 세상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를 보수하거나 재현하는 전통 불교조각 계승자로서의 높은 역량을 가늠케 한다.

그의 작업공간은 부산 강서구 대저2동 강서예술촌이다. 폐교된 대저중앙초등 신노전분교 건물을 개조해 2001년 손수 전시장과 공방을 만들고 강서예술촌을 설립했다. 대학 강의가 없는 날이면 이곳에서 국내외 사찰에서 주문받은 불상과 작품을 만들고, 문화재 수리기능공, 불교미술학도를 지도하거나 전수 · 전승에 온 힘을 쏟는다.

금강산 유점사 53불 재현

그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경기도 양평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는 1년만 마치고 14세 때부터 직업센터에 입소해 민예품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는데, 어떤 영문인지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어요. 학교 보낼 형편이 못되니 자식을 농사꾼 만들기는 싫고, 그래서 민예품 직업센터에 보낸 거지요. 조각에 취미가 있고, 손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안 부모님이 궁여지책, 그쪽으로 길을 열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는 공예품 중에서도 불교조각에 관심이 쏠렸다. 불상조각에 점점 빠져들었다. 1970년대 중반 부산 동구 좌천동으로 활동기반을 옮겼다. 그 시절 부산 · 경남에는 불사가 많았다. 여러 불사에 참여하며 불상조각에 전념했다. 본격적인 인연은 1976년에 찾아왔다. 서울 성북구 적조사 주지였던 경산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6 · 25때 소실된 금강산 유점사의 53불을 재현하는 일을 맡겨온 것이었다. “믿고 큰일을 맡겼는데 실망을 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당시 동국대 박물관장의 고증과 자문을 받아 날밤을 새다시피 2년에 걸쳐 53불 재현작업에 성공했습니다. 저에게는 전통불상 재현에 눈을 뜨게 해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1979년 포항 보경사, 이듬해 설악산 신흥사의 사천왕상을 잇따라 재현했다. 높이가 3.6m에 달하는 대작이었다. 차츰 불상조각가로 명성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이던 1980년에는 조계종이 주최한 한국불교미술대전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해 동상을 수상했다.

더 좋은 불상조각 위해 출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전환점은 1981년 지리산 칠불사 중창불사에 참여하면서 찾아왔다. 불상을 조각하는 중간중간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과 회의가 불쑥불쑥 치밀었다.

“불상은 많은 사람이 숭배하는 신앙의 대상인데, 이런 성물(聖物)을 조각하고 만드는 일을 돈벌이로 접근해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불교의 이치와 깊은 내용을 모르고 제대로 된 표현을 해낼 수 있을까? 불교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불상조각은 평생 겉모양만 다듬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불상은 불경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고심 끝에 출가를 결심했다. 당시 칠불사 주지 통광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다. 청원(靑苑)이라는 법명을 받고 수행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칠불사에서 무려 5년. 그 긴 불사에서 그는 삼존불, 영산전 후불탱화, 신중 목탱화, 칠불 목탱화, 수미단 등을 모두 조각으로 표현해냈다. 단청장과 불화장 두 부문 중요무형문화재였던 석정스님에게서 단청과 불화도 사사했다.

강서예술촌 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청원스님의 모습.

30세에 검정고시 … 동국대 교수까지

30세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불교사상의 각성 없이는 작품 활동을 온전히 할 수 없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유년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중단했던 학업의 허기도 채울 요량이었다. 1986년 독학으로 대입검정을 거쳐 1988년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조소전공으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불교경전에서부터 불교미술의 역사, 부처님의 생애 등을 공부했다. 이론과 실기를 두루 갖추기에 이른 것이다.

“불상을 잘 만드는 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포교이고, 부처님을 가장 잘 모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고된 일입니다.” 그의 말처럼 불상을 조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가 큰 작품들이라 작업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작품에 2년 이상 매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불상을 조각할 나무를 고르는 것부터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있다. 불상 조각에는 주로 은행나무와 소나무(홍송)를 쓴다. 나무의 변형과 병충해를 막기 위해 겨울에 벌목한 나무만 선택하고, 벌목한 원목은 엄격하게 자연건조를 고수한다. 외형을 어느 정도 잡으면 나무속을 파낸다. 복장을 봉안하고, 목재의 뒤틀림과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불상의 윤곽이 잡히면 가사의 주름, 발, 수인 등 신체의 특징적 요소를 세밀하게 조각한다. 상호(얼굴)를 표현하는 단계는 불상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상호를 표현하기 위해 불상이 봉안될 높이, 위치, 채광, 심지어 마주하고 설 불자들의 시선까지도 고려한다고 한다.

45년간 1천여점 불상 조각

조각을 완료하면 조각 면을 사포로 문질러 닦아낸다. 표면이 매끈해지면 향탕수로 불상을 목욕시켜 건조하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유황을 바른다. 개금은 완성단계다. 목재의 갈라짐을 방지하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아교를 바르고 건조시키기를 3~5회 정도 반복한다.

아교 도포가 끝나면 삼베나 모시를 입혀 배접하고, 송진과 백반, 아주까리기름을 혼합해 끓인 용액을 발라 배접을 정착시킨다. 빈틈을 메우고 다시 사포질을 거쳐 옻칠을 여러 차례 한 뒤에야 개금에 들어간다. 온 정성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45년여간 1천여점의 불상을 조각했다. 문경 봉암사, 서울 능인선원, 수원 봉녕사, 부산 운수사 등 법당 크기가 330㎡를 넘는 4곳의 불사를 비롯, 전국 200여 사찰에 작품을 봉안했다. 부산 용당동 동명불원, 가야동 안국사, 부곡동 초의암을 비롯해 울산 신흥사, 대구 약정사, 경기 청명사, 충북 백연사 등이 그가 조각한 석가 · 문수 · 보현 · 관음 · 지장보살과 후불탱화 등을 봉안하고 있다. 1995년 제주 약천사에 조성한 목불좌상은 무려 5년간의 제작 기간에 목조불상으로는 동양 최대인 높이 4.55m, 너비 3.6m에 이르는 역작이다.

백의관음 입상(왼쪽)/ 문수보살 좌상(오른쪽).

코스모스문양 합식소라(왼쪽)/팔선녀문양 합식소리(오른쪽).

늘 새로운 탐구 … 특허 · 실용신안 30건

그는 늘 새로운 표현과 형식을 탐구한다. 새로운 불상제작 기법을 개발해 발명특허를 취득하는 등 지금까지 발명특허 7건을 비롯해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등록, 저작권 등 30여건을 획득했다.

부산 안국선원은 건물 자체가 현대식이기도 하지만 기존 법당과 다르게 꾸민 것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법당에 부처님이 현신한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작품을 구상하고 안치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아직 이 같은 시도는 없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법당 규모가 2천310㎡에 달하는 대만 까오슝의 제원사 관음좌상과 후불 목각탱, 관음탱화, 미타탱화 조각을 의뢰받아 3년 작업 끝에 마무리했다. 소문이 나면서 대만 각지에서 불상 조성 의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도자기에 대한 새로운 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도자기를 주문해 그 도자기에 전통문양과 야생화 문양을 장식함으로써 도자기의 완벽성과 금니채색의 아름다움을 함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올 연말쯤 12번째 개인전을 구상 중이다. 역시 새로운 시도, 변화를 모색한다. 부처님 당대의 설법장면 등을 모태로 부처님 상호에는 순수성을 더 부가하고, 가사도 다르게 표현할 생각이다. 장식은 튀지 않되, 신비성은 부각시킨다는 염원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으레 그래왔듯 이번 전시회 수익금도 전액 장학금으로 내놓을 생각이다.

그에게 불상조각은 그 자체로 선이자 경전이다. 종교이자 자기 자신이다. 전통 불상의 계승이라는 외형적 완성도를 넘어 내면적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 시절 출가를 감행했던 것처럼.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4-02-1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616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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