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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부산의 아침 깨우는 역동과 날 것들의 세상

함께 걷는 부산길① 생기 넘치는 새벽 시장길

내용

부산항이 우리나라 물류의 심장으로 역동적인 부산 모습을 상징하는 곳이라면, 부산공동어시장∼자갈치시장은 부산의 부엌이자 굴곡에도 쓰러지지 않는 다부진 삶을 대표하는 곳이다. 한 해의 문을 여는 1월, 부산의 아침을 깨우는 시장길을 걸으며 오뚝이 같은 삶의 의지를 다져본다.

부산공동어시장 새벽경매 현장. 야구의 투수와 포수처럼 다양한 수신호가 오간다.
- 출처 및 제공 : 권성훈



■ 부산 시어(市魚), 싱싱한 제철 고등어 가득한 부산공동어시장

새벽 5시30분. 오늘의 첫 코스인 부산공동어시장으로 향한다. 우리나라 수산물 유통량의 30%, 고등어 위판량의 80% 이상이 거래되는 곳이다. 느린 겨울 해가 떠오르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부산공동어시장 앞은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가는 이들은 어젯밤 들어온 배에서 밤새 하역과 분류를 마친 사람들이고, 들어오는 이들은 경매가 끝난 후 수산물을 손질할 사람들이다.
"오늘 와서 다행이지. 다음번 배가 들어오려면 일주일은 기다려야 해요."
안내를 맡은 서구 문화관광해설사 이춘수 씨가 말했다. 달이 밝아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월명기(음력 14∼19일)라는 것이다. 월명기를 제치하더라도 최근에는 대형선망 업계의 부진으로 경매가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하역부터 중간도매, 작업과 운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허탕을 치게 된다는 뜻이다. 고등어·대구·전갱이 등 다양한 어종이 경매에 나온 이날은 특별히 운이 좋은 날인 셈이다.


2 공동어시장 구내찻집

부산공동어시장 내 구내 찻집


경매 시작 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미리 물건을 둘러보거나 이름도 정다운 `구내 찻집'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이곳의 구내식당도 유명한데 김영삼·노무현·노태우 전 대통령이 들렀던 `맛집'이란다. 싱싱한 고등어 정식을 먹으러 일반 시민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이윽고 `댕댕댕' 경매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모자를 눌러 쓴 경매인들을 따라 인파가 움직였다. 이미 방송을 통해서도 여러 번 소개됐지만 경매 현장은 투수와 포수 간의 사인만큼 현란하다. 넋을 잃고 보다 보면 순식간에 경매가 끝나고 다음 물건으로 이동하기 일쑤다. 경매가 끝나면 뒤에서 기다리던 작업조가 재빨리 투입된다. 경매가 끝난 물건을 실어 전국 각지로 보내는 것이다. 위판장을 가득 채웠던 생선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 이른 새벽 여는 바지런한 사람들 모이는 충무동새벽시장


3 충무동새벽시장

충무동새벽시장 전경

부산공동어시장을 나오면 옆으로 작은 냉동창고와 수산물 가게가 이어진다. 앞서 경매에 나왔던 생선이 벌써 좌판에 깔린 곳도 있다. 이 길목 곳곳에는 그날의 수산물을 주재료로 새벽장사를 하는 작은 밥집들이 숨어있다. 그중 아는 사람만 안다는 가장 유명한 곳이 `할매밥집'이다. 딱히 어엿한 매장이나 간판도 없다. 뱃사람과 하역노동자, 시장사람들을 대상으로 새벽 4시에 문을 열어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장사를 한다. 이곳을 지키는 이는 88세의 이분이 할머니. "늙은이가 만드는 것 뭐 맛있다고"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생선조림, 달걀프라이, 삼삼한 나물, 요즘은 보기 힘들 정도로 꽉꽉 눌러 담은 밥그릇에서 인심이 느껴진다. 주문도 않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약속이나 한 듯 막걸리 한 병과 컵을 전해주자, 가게 안의 사람들은 서로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다. 새벽시장의 `심야식당'이라 할 만하다.


8 할매밥집

할매밥집의 정식

든든히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엔 동네시장처럼 친근한 농산물이 가득한 시장이 나타난다. 충무동새벽시장이다. 1960년대에 인근 부산공동어시장이나 엄궁동 농산물도매시장에서 나온 농수산물을 판매하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주로 식당이나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시민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새벽 일찍부터 문을 열게 됐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충무동 해안시장, 충무동 골목시장과 합쳐 `새안골 전통시장'이라고 부른다.


4 새벽시장전망대 일출

충무동새벽시장 전망대에서 바라 본 일출.


충무동새벽시장 간판이 있는 곳에서 주 통로를 따라 길 끝까지 오면 새벽시장의 숨은 명소 `전망대'가 있다. 북적북적한 좌판들 사이로 이리저리 양해를 구하고 좁은 계단에 올라서면 2층에 자리한 작은 곳이다. 앞으로는 활기 넘치는 시장이, 뒤로는 남항의 고즈넉한 정취가 펼쳐지는 놀라운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 한쪽에는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와 새벽시장에서 받아온 듯한 수산물 바구니를 머리에 인 어머니 모형이 있다. 외지에서 부산으로 흘러들어 산복도로 어디쯤 자리 잡았을 이들 모자는 머리에 인 바구니가 빌 때까지 고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바닷바람과 고된 노동에 고왔던 얼굴에 굵게 주름이 패이면서도 어머니는 이 아이를 공부시켰을 것이다. 생활력 강한 억척스러운 `자갈치아지매'는 그렇게 탄생했을 터이다.


■ 뱃사람들 머물렀던 충무동여인숙골목

5 여인숙골목

충무동 여인숙 골목 전경


6 유료화장실

충무노인정에서 운영하는 유료화장실 


충무동 새벽시장에서 자갈치시장 쪽으로 계속 걷는다. 이번에 만날 곳은 충무동해안시장이다. 1960년대는 연근해 어업과 원양어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만선의 고깃배들은 풍성한 수산물과 뱃사람들을 부산에 내려놓았다. 흔들거리는 배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선원들은 배와 가까운 육지에서 쉬고 싶어 했다. 각종 선용품, 선원들을 위한 옷가게, 음식점들이 즐비한 충무동해안시장과 여인숙골목이 생겨났다.
"이런 곳은 아마 이제 여기가 유일할걸요." 새벽 동이 어슴푸레 올라오는 시간, 이춘수 해설사는 꼭 봐야 한다며 여인숙골목으로 안내했다. 여인숙골목은 이름처럼 아직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길이다. 좁은 골목을 사이로 여인숙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모여 있다. 한쪽에는 충무노인정이 운영하는 200원짜리 유료화장실이 있고, 또 한쪽 벽에는 화려한 자주색 이불이 손님을 기다리며 널려 있다. 한때는 주변 몇 골목까지 이어졌던 여인숙 골목은 뱃사람이 줄고, 여인숙을 찾는 사람들이 뜸해지면서 이제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른 새벽에도 불을 밝힌 여인숙들의 좁은 입구가 유난히 썰렁해 보였다.


■ 안녕하십니꺼 자갈치아지맵니더 자갈치시장

7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 내부 전경


여인숙골목에서 다시 해안시장으로 내려와 해안을 끼고 걷는다. 문을 닫은 점포가 대부분이지만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돼지껍데기골목과 곰장어골목이다. 아직 남아있는 향기가 지난밤 이곳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짐작케 한다. 곰장어골목을 지나 공영주차장을 넘어서면 이제 넓은 의미의 자갈치시장이다.
자갈치시장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각지의 고깃배가 드나들며 수산물 중심지가 됐다. 시장현대화 사업으로 2006년 현대식 건물인 자갈치시장이 들어섰다. 좁은 의미의 자갈치시장은 현대식 상가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인근의 신동아시장, 건어물시장 등을 포괄한다. 걸걸한 목소리에 생활력 강하고 속정 깊은 `자갈치아지매'는 부산사람의 상징이다. 라디오를 즐겨듣는 사람에게도 `자갈치아지매'는 친숙하다. "안녕하십니꺼, 자갈치아지맵니더"라고 정겹게 시작해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 라디오 프로그램 `자갈치아지매'는 1964년 6월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나라 최장수 시사만평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자갈치아지매의 추억을 더듬으며 길은 유라리광장에 이르렀다. 아침 해가 떠올라 남항 바다를 눈부시게 비춘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사라진 길은 어느새 아침 장사와 출근을 준비하는 이들로 붐빈다. 부산의 아침이 또 시작된다.


 글·하나은/사진·권성훈
 해설·서구 문화관광해설사 이춘수


※ 다이내믹부산은 2020년 새로운 기획 `함께 걷는 부산길'로 독자 여러분과 만납니다. `함께 걷는 부산길'은 시민소통을 위해 해설사·시민·기자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다양한 길을 걸으며 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은 매월 10일까지 다이내믹부산 편집부(051-888-1291~8) 또는 이메일(naeun11@korea.kr)로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께는 개별로 연락드립니다. 2월호 걷기 주제는 `건축으로 알아보는 부산의 새로운 심장, 센텀시티'입니다. 참가비 무료. 물·간식 등은 개별 지참.
 

하나은 기사 입력 2019-12-31 다이내믹부산 제202001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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