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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737호 기획연재

낙숫물 소리 들으며 비를 긋는 그곳, 고향집 마당에 선듯 닿은 듯 …

雨중산책 - 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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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차와 버스를 버리고, 걸어서 범어사를 오른다. 비가 내리면 더욱 좋다. 촉촉하게 몸을 적시는 보슬비이거나, 한여름의 더위를 물러나게 하는 시원한 장대비이거나 상관없다.
 

걸어서 오른다는 것은 속도를 버린다는 의미다. 속도를 버린 자리의 텅 빈 공허함은 잠시 접어두는 것도 좋다. 3㎞에 달하는 숲길을 걷다보면 속도를 버리고 비워진 텅 빈 자리가 그 자체로 고요한 충만이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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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고요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범어사 대웅전 앞마당.
 

도시철도 범어사역에서 범어사까지는 약 3㎞다. 천천히, 느리게 걷자, 급한 일은 잠시 잊자. 일방통행인 도로는 비오는 날에는 통행량도 적어서 명상하듯 걷기데 부족함이 없다. 비오는 여름 숲은 뭇생명이 분주하게 살아내는 생의 환희가 흘러넘치는 곳이다. 나무와 풀과 벌레와 꽃들이 실뿌리를 뻗어 물을 빨아들이고, 수천 갈래의 수맥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얕은 숨을 뱉는 소리와 향기에 어지럽다. 그러나 자연의 분주함은 속세의 분주함과 달리 고요하다. 그 고요함에 몸을 맡기고, 설렁 설렁 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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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가는 길. 

 

비오는 날, 이 길을 올랐다면, 수고스럽더라도 범어사 대웅전까지 가볼 것을 권한다. 3㎞를 걸어온 수고가 수고롭지 않다. 거기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우리가 버린 지난 시절의 그리움이 남아있다. 혹여 이름도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집 처마 아래에서 여름 장맛비를 그어온 경험이 있는 당신이라면, 범어사 대웅전 마당에서 빗줄기보다 굵은 눈물 한 방울을 떨구고 올지 모른다. 오래된 기와의 골을 따라 낙숫물이 떨어진다. 기와의 결을 따라 떨어지는 낙숫물이 물방울로 만든 여름 발처럼 맑고 고웁다. 산길을 걸어 도착한 마당 깊은 절집에 들어서면, 고향집 마당에 선듯 닿은 듯, 기와지붕을 적시는 빗소리가 먼 계곡물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린다. 비오는 날 그곳에 가야하는 이유다. 

작성자
글·김영주/사진·문진우
작성일자
2016-07-1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737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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