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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신선이 노니는 곳 ‘선동’

청룡이 부처님 보호하는 ‘청룡동’

내용

오늘날의 금정구는 동래도호부시대는 그 주가 동래부 북면(北面)에 속해 있었으나, 일부는 지금의 해운대구인 동면(東面)에 속한 곳도 있었다. 금정구의 동리명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누락된 것도 있어 보충한다.

서동(書洞)은 1832년 경에는 동래부 동면 가운데의 동상면(東上面)에 속해 있었다. 1942년 동래군이 부산부로 편입되면서 서리, 금사리, 회동리가 합쳐져 서동이 되었다가 동세가 확장됨으로써 1959년 서동을 동상동(지난날은 동상면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리 이름이 붙었다)이라 하여 1·2·3동으로 나누었다.

1982년에는 영도의 동삼동과 발음이 비슷하여 혼돈이 많아 다시 서동으로 고쳤다.

원래의 서리는 서쪽 골짜기의 서골(西谷)과 안골짜기인 안골의 두 자연마을이었다. 그 두 마을 가운데 서골을 글 서(書)의 '서리'라 하니 마을 이름이 좋아서 동명으로 삼았다.

1985년에는 서동 가운데 3동이 금사동으로 분리되었다.

선동은 동래부지(1740년 발간)의 북면에 선동 이름이 나오면서 동래부에서 15리 떨어져 있다고 했다. 선동은 선돌이 있어 선동이 되었다는 설과 오륜대와 가까워 신선이 노닐었다고 해서 선동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선동은 하정(荷亭 : 조선시대 소산리(蘇山里)라 했음), 상현(上賢), 하현, 신현, 신천(伸川)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다.

오륜동은 동래부지에는 동면에 '오륜대리'가 나오면서 동래부에서 20리 떨어져 있다고 했다. 동래부지의 고적(古跡)을 말한 자리에는 오륜대를 "어떤 사람이 대(臺) 곁에 살았는데 오륜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이리 이름하였다"고 했다. 그러니 오륜동의 이름은 오륜대에서 온 것이다.

청룡동(靑龍洞)은 1937년 편찬된 '동래군지'에서 동래군 북면 청룡리로 처음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지명인 것 같다.

고대로부터 일컬어지기를 동·서·남·북 4방에는 그 지역을 다스리는 신이 있는데 동은 청룡(靑龍 : 푸른 용), 서는 백호(白虎 : 흰 호랑이), 남은 주작(朱雀 :붉은 봉황새), 북은 현무(玄武 : 거북과 뱀이 하나가 된 동물)라고 했다.

청룡동은 범어사 동쪽이 되어 사찰 또는 풍수가가 동쪽에서 청룡이 사찰 또는 부처님을 보호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여겨진다.

회동동은 내(川)가 돌고 있다 하여 '회천(回川)'이란 마을 이름이 되고, 동대(東臺)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대란 마을 이름이 된, 두 마을이 합쳐지면서 '회동동'이 되었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2003년 11·12월호
작성일자
2013-04-30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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