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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배와 사람이 오가는 '큰 포구'

부산의 지명 유래 - 다대동(多大洞)

내용

사하구 다대동의 유래를 말하거나 지명을 말할 때면 엉뚱하게도 일본의 신화·전설을 담은 옛 사기(史記)인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인용하여 다대라원(多大羅原)·다다라(多多羅)·다다량(多多良) 등의 이름이 현재까지 따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 사학자가 부산부사원고(釜山府史原稿)를 일본어로 쓴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전해지면서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식민지사관(植民地史觀)을 부식시키기 위해 경남지역, 특히 부산지역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소속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부당한 일이다.

다대포에 관한 글은 부산부사원고 제1권 제3장 '왕고(往古) 부산지방 등의 일본영속사실(日本領屬史實)'이라고 부산지방이 일본영토에 속한 역사적 사실이란 제목에 이은 제4장에서 말하고 있다. 앞으로는 일본기록, 그것도 일본의 고대 신화·전설을 모은 책 같은 데서 다대포의 유래를 인용하는 일은 삼가야겠다.

다대포는 조선초기 수군편제(水軍編制)때 다대진이 형성된 것으로 보아 '다대'란 이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본다.

다대포는 낙동강 하구로 배와 사람이 바다와 낙동강으로 오르내리는 중심적 요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역(海域)은 몰운도(沒雲島)가 육지와 떨어진 섬일 때는 지금의 다대2동 해역에서 다대1동 해역을 지나 장림포(長林浦)로 이어진 넓은 해역이 다대포였다. 그래서 배도 사람도 많아서 많은 '다(多)' 배와 사람이 오가는 큰 '대(大)' 포구란 뜻으로 다대포라 하고, 나루터를 말할 때는 다대진(多大津)이라 하고, 군사기지를 말할 때는 다대진(多大鎭)이라 하고, 마을을 말할 때는 다대리(多大里)라 했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2003년 3·4월호
작성일자
2013-04-1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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