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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이성규, 인간의 본질을 묻다

예술부산 ‘예인탐방’ 30. 연극 연출가 이성규 선생

내용

“그 장면에서 서로 눈을 맞추며 대화를 주고받아야지. 생의 마지막을 직감하는 모드의 눈빛과 어린 아이 같은 헤롤드의 눈빛은 달라야 하지만. 그리고 모드는 죽음을 직감하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그래도 마지막 순간이 가까웠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거친 호흡도 곁들이면서. 블로킹도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표현은 담백하면서도 코믹하게.”

연출가 이성규 선생은 연신 새 담배를 꺼내며 배우의 시선, 블로킹 등을 점검한다. 부두연극단이 모처럼 어깨에 힘을 뺀 그러나 묵직한 감동으로 젖어들게 할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4월 10일부터 공연될 <19 AND 80>을 위해 액터스소극장에서 배우와 연출가가 서로의 상상력을 맞춰가며 연습이 한창이다.

포스터와 팸플릿에 부두연극단의 이름을 인쇄한 지 어느새 30여 년의 세월을 앞두고 있다. 창단부터 현재까지 부두연극단을 이끌고 있는 이성규 선생은 예전보다 극단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게 제일 아쉽단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개인적인 성향이 뚜렷해져서가 아니겠냐고 한다. 또 돈이 없어 무대세트, 조명, 홍보까지 자체 해결을 하던 수공업시대였어도 그저 연극을 한다는 그 하나만으로 행복해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먼저 듣는 얘기가 ‘페이가 얼마냐.’이다.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인정하지만 페이, 개런티라는 말이 아직은 참 거북하다는 선생의 말에서 극단 대표로서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외롭고 심심하더라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사는 게 지루하던 차에 동아대 극예술연구회를 보니까 재밌겠더라고.”

8년간 대학을 다니면서 동대극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취직하면서 연극 현장을 잠시 떠났다. 부산대 극예술연구회 회원이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고 장남으로 책임감도 있었다. 일 년쯤 뒤에 동대극회 후배들이 찾아와서 연출을 맡아달라고 했다. 극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연이라며 후배들이 등록금까지 보탰다는 말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 올렸던 작품이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초연에서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후배들의 등록금이 마음의 빚으로 남았었다.

상심하고 있던 중에 고故 천재동 선생과 만화가 박재동 그리고 김경화 씨가 극단 [마당]을 창단하면서 창단작품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렸다. 1978년이었는데 대박이 났고 후배들에게 마음의 빚도 조금 갚았다.

직장과 극단을 오가던 생활을 하던 중 1984년 쓸 만한 극장 터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부두극장이라 명명하고 부두연극단을 창단했다. 부두극장은 1986년 지하철 공사로 문을 닫았다. 개관 당시 부산에 소극장이 8개 정도 생겼는데 거짓말처럼 거의 동시에 문을 닫았다. 극장마다 이유는 있었겠지만 그때부터 소극장이 없으면 부산 연극도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대극장 연극에서 허장성세를 읽기도 해서 관객과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소극장에 더 애착을 가졌다.

부두극장이 문을 닫고 잠시 방황하던 중 시민회관에서 오태석의 <춘풍의 처>를 공연하고 있던 이윤택 씨를 만났다. 소극장을 구상하고 있던 이윤택 씨는 배우가 없었고 선생은 무대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금방 의기투합했다. 86년 7월 가마골소극장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가마골소극장에서 독립한 이성규 선생은 95년 명륜동에 연당소극장을 개관했고 2005년부터는 남천동에 액터스소극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유진 이오네스코, 새뮤얼 베케트, 피터 셰퍼 등 부조리극이나 실존주의적 계열의 작품을 주로 한다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나름 다양한 작품을 많이 했단다.

“부두연극단이 창단했던 80년대 부산은 주로 사실주의극이 공연되고 있었는데 괜한 반감이라고 할까, 부조리극, 마임, 제의극 등 나름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었지. 부산에서는 처음이었어.”

인간의 본질을 묻는 부조리극을 선호했던 건 아마 부조리한 세상에 익숙해서 일거라고. 어린 시절을 영도에서 보냈다. 전쟁 후라 사회는 어수선했고 상의군인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초췌했다. 그러나 유교적인 삶을 사셨던 아버지는 세상과 무관해 보였고 모순투성이로 비춰졌던 세상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일었다. 그때부터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눈물을 흘렸고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며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도   <고도를 기다리며>다. 배삼룡, 이기동, 구봉서가 출연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바보 코미디라고 했지만 인생이 거지, 광대처럼 보였던 선생은 난해한 작품으로 정평나 있던 <고도를 기다리며>가 쉽게 이해되었고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은 감흥을 받기도 했단다. “나무 한 그루만 황량하게 놓여있는 길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두 부랑자의 모습”은 평소 상상하던 삶의 이미지이기도 했다. 관객들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작품이 어렵다고만 하는데 너무 많은 해석을 하지 말고 단순하게 보라고 주문한다.

작품을 선정하고 나면 대본을 분석하는 것 외에 지금, 여기, 이곳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는 가치와 그 의미를 세우기 위해 배경이 되는 시대 상황을 점검하고 사상적 근거를 찾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본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관련 논문까지 섭렵했다.

이성규 선생은 부산창작극연구회 출범도 주도했다. 부산창작극연구회는 1995년 3월 동래전철역 맞은편에 있던 연당소극장의 ‘극작워크숍’을 계기로 탄생했다. 신진 극작가를 발굴한다는 취지와 창작극 활성화가 목표였다. 연구회는 김문홍 김경화 하창길 이은정 구승옥 김혜진 등의 극작가 팀과 민병욱 정봉석 구명옥의 비평 팀, 이성규 최향운 오치운 신영주의 연출과 배우 팀 세 분야로 꾸려졌다. 극작가 팀에서 기본 텍스트 형식의 희곡이 나오면 전 회원이 문학성과 연극성을 검토하고 수정된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창작극연구회는 매월 둘째, 넷째 금요일 연당소극장에서 워크숍을 열었고 그해 10편의 희곡을 한데 묶어 창작희곡집을 펴내기도 했다.

이후 창작극연구회는 활동을 잠시 접었다가 2004년부터 활동을 재개하고 2008년엔 ‘부산의 창작희곡 진흥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도 열었고 창작희곡집을 발간하고 워크숍을 열며 작품 품평회 등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희곡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이성규 김문홍 구명옥 김영희 씨와 함께하는 품평회에서 눈물을 쏟고 있다.

1987년 <잡귀잡신은 물알로>로 부산연극제 연출상과 희곡상, 1988년 <달라진 저승>으로 부산연극제 대상(작품상), 1996년 기자가 추천한 올해의 연극인상, 2002년 제1회 부산예술상, 2003년 제15회 봉생문화상(공연부문), 2009년 대한민국 자랑스런 연극인상, 2011년 부산연극협회 올해의 연극인상 등을 수상했다. 그중에 제일 맘에 드는 상은 역시 상금이 많았던 봉생문화상이라며 극단 대표로서의 어려움을 웃음으로 가렸다. 상금으로 소극장에 남아있던 빚을 청산했다.

작품을 분석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에 주저함이 없었던 안민수 선생이 롤 모델이며, 오태석 선생도 늘 따르고 싶은 연극인이다. 30여 년의 연극생활이 녹록치만은 않았을 선생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듣고자 했다.

“뭘 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연극을 통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가치를 찾으면 된다. 단 연극은 기능이 아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순발력과 감각은 뛰어나지만 무대에 섰을 때 보여지는 비주얼만 너무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배우의 눈빛에서 상상 이상의 무대를 보여주는 연출가의 기발한 감동으로 무대에 표현되길 바란다.”

지난해 8월 가마골소극장에 올린 <에쿠우스>에서 연극평론가 김문홍 씨의 “2시간 30분 이상인 작품을 1시간 50분으로 압축시키면서도 관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연출의 힘을 보여줬다.”(국제신문 2011년 8월 18일)는 평을 들으며 현역 연출가로 건재함을 보였다. <에쿠우스>는 이성규 선생이 25년 전 부산에서 초연했던 작품으로 지난해 공연에도 훈풍이 불었었다.  

어느 시절엔 직장에서 중역을 맡고 있는 친구들을 멀리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을 피해갈 수 없어 등산으로 소일하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아직 현역으로 연극현장을 지키며 열정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4월부터 <19 그리고 80>을 액터스소극장에 올리고, 8월엔 부산시립극단과 <고도를 기다리며>를, 그리고 가을쯤에 <욥기>라는 작품으로 관객과 조우할 예정이다.

작성자
예술부산 2012년 4월호
작성일자
2012-12-1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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