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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장려] 큰 딸 미라

내용

광안리 바닷가가 마당처럼 펼쳐지는 '남천동 협진태양 아파트'로 이사를 한 건 순전히 외할아버지 덕분이다.

20년이나 지나 노후한 아파트지만, 학군과 조망이 좋아, 우리집 재산으론 엄두도 못 낼 아파트로 무리를 해 옮긴 건, 교육 때문도 아니고, 아빠 직장때문도 아니고, 순전히 외할아버지가 바다를 좋아해서다.

이사를 앞두고도 엄마와 아빠는 몇 번이나 언성을 높여 싸웠다.

“니가 제정신이가? 몸 성한 분도 아니고, 정신 오락가락하는
장인어른을 우리가 모신다꼬?“

“이번 한번만 그냥 넘어가믄 안되긋나? 이번 한번만 눈 감아주소”

“그래... 딸자식도 자식이니 장인어른 모신다하자, 집은 왜 그 비싼데로 옮기노? 허세고 허영이다. 우리집 형편을 알고 그라나? 모르고 그라나? 전월세가 뭔줄 아나? 사람 잡는다. 그거...”

“아부지만 모시면, 동생네가 월세는 낸다 안하나? 그거는 걱정 마소, 아부지가 바다를 좋아한다. 울아부지 죽기전에 눈에 버짐 앉도록 바다 보이줄끼다”

“효녀 났네, 효녀 났어”

“내 당신하고 갈라서는 한이 있어도 울아부지 바다 보이는 집에서 모실테니까 그리 아소, 당신 사업 번번히 말아먹어도 한번도 한 눈 안팔고, 당신 뒷바라지 한 사람이 바로 낸데, 명절때마다 큰 며느리 노릇 잠잠코 한 사람이 낸데, 이번에는 내 소원 하나만 들어 주소, 우리 아부지, 편히 모실 수 있게...”  

“니 그 유세 떨라고, 지금껏 잠잠코 있었나?”

“내가 오죽하면 이라겠나?”

“이 미친~”

“내한테는 막말 하소. 근데, 우리 아부지한테는 안된데이”

외할아버지를 엄마가 모시는 것도, 집을 이사하는 것도, 반대하던 아빠는, 외삼촌네가 모자라는 집값 일부와 월세를 내 준다고 하니 살며시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 돈은 모진 아빠가 천사같은 울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여유도 허락했다.

이사를 하고,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살게 된 첫날, 엄마와 아빠는 창문만 열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거실에 소주 한잔을 두고 마주앉았다.  

“좋나?”

“어”

“행복하나?”

“행복해서 죽을것 같다”

“죽지는 마라, 이 마누라야, 니는 우째그래 박복하노?”

“뭔말이고?”

“느그 아부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

“다~안다”

“느그 아부지 바람나가 홧병으로 친정엄마 돌아가싯다매”

“그 얘기는 와 하노? 우리 아부지 들으면 우짤라꼬”

“주무신다.”

“그래도... ”

“딱 까놓고 딸년 시집갈때도 별 신경도 안 썼던 아부지 아이가. 그란데, 병 나니까 딸년 집에 온다는기 무슨 심보고?“

“아부지는 아무것도 모르시니까 오신기지, 알았으면 울 아부지도 딸내미 고생시킨다고 안 왔을끼다.”  

“그래, 느그 아부지도 제정신이면 요~ 안 오고 싶었을끼다. 양심이 있으모“

“고마해라”

“딸내미 맘 고생 그만큼 시켰으면, 물리 줄 재산이라도 많던가...”

“고마하소, 제발. 그 입 좀...우째 안되나?“

“내 당신이 안타까버가 안 그라나? 남편이라고 있는것도 이 꼬라지고...”

“있잖아, 내 울 아부지 편히 모시고 살게 해 주면, 진짜 남은 인생 당신한테 잘하고,

쥐 죽은 듯이 사께 고마해라.“

“그기 무슨 소리고? 됐다. 내 당신이 불쌍해가꼬 넋두리 했다 아이가. 내 뭐라 안한다. 사위도 자식인데...”

천사 같은 울엄마 신미라씨...
어린시절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발 절룩거리는 울 아빠를 '왕' 받들듯 섬긴 울 엄마. 수시로 사업하고 수시로 말아먹는 아빠덕에 롤러코스터 타는 듯했던, 우리 집 형편에도 당당했던 울 아빠에게, '이혼하자' 한 마디 안 꺼냈던 울 엄마.

엄마는 아빠말처럼 부모복도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와 사이에서 엄마와 삼촌을 낳은 후, 얼마 안 돼, 당당히 새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단다. 결국 외할머니는 홧병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철들자 마자, 집을 나와 온갖고생 끝에,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새 살림을 꾸린 외할아버지는 넉넉한 형편에도, 힘들게 사는 딸, 아들 돌아보지도 않는 모진 아빠였다.

그런 엄마의 아빠가 나이들자, 치매에 걸렸고, 몸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엄마의 새엄마는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겼고, 모든 재산은 자신 앞으로 돌려 놓았다. 몸도 정신도 빈털터리가 된 외할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나선 건, 결국 천사같은 울엄마였다.

외할아버지를 모시는 엄마의 지극정성에 울 아빠는,
“큰딸 떠받들고 살았어도 저리 못 모실건데... 저 영감은 무슨 복이고”라며 비꼬았다.
치매걸린 외할아버지와 사는 일은 우리에게도 고달팠다.

“은이야... 할아버지, 기저귀 좀 가지고 올래. 오늘은 좀 일찍 와서, 할아버지랑 얘기 좀 해라, 할아버지가 심심해 하시잖아“

“민성아... 할아버지 마실 나가게 휠체어 좀 내려 주라, 할아버지 욕실로 좀 옮겨다 줄래“

엄마의 잔소리는 오로지 외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지난 가을, 엄마는 매일같이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끌며, 갈맷길을 걸었다.

엄마의 정성 덕에 뽀얗게 꾸며진 외할아버지는 동네에서도 '대답 없는 멋쟁이 할아버지'로 통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엄마는 끝없이 얘기했다.

“아부지 온천지가 가을이네”

“아부지 아부지 덕분에 내가 갈맷길도 걸어보네”

“아부지, 기억나나? 내 어렸을 때, 엄마랑 내랑 동생이랑 아부지랑 광안리 놀러왔다 아이가. 그때는 백사장이 억수로 넓었는데... 아! 맞다. 그날 아부지가 우리만 놔뚜고 사라진 거 기억나나? 우리는 아부지 찾는다고 난리가 나고... 근데 그때 아부지가 저 광안리 백사장 끝에서 달걀처럼 생긴 하드를 두개 들고 나타났다 아이가... 그게 사주고 싶어가꼬, 하드 장수를 그래 찾았다카믄서... 아... 그 하드, 요새는 안 파나?“

“아부지 고서방 있다 아이가. 말은 무뚝뚝해도, 속은 깊대이”

그렇게 외할아버지와 함께한 엄마의 가을은 깊어갔다.

그리고 그해 시월에도 부산불꽃축제가 펼쳐졌다.

불꽃의 향연을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우리집은 그날 아침부터 분주했다. 엄마는 베란다 젤 좋은 자리에 휠체어를 두고, 할아버지가 덮어 둘 담요를 준비해뒀다. 망원경도 하나 준비했다. 아버지는 기어이 한마디 하셨다.

“치매 걸린 양반이 뭘 본다고, 제일 좋은 자리를 탁 막아놓노?”

“당신 내한테 치매 그 소리 이제 그만하소. 우리 아부지 볼꺼 다 보고, 다 듣는대이.“

저녁 인파는 몰려들었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나가더니, 허름한 옷차림의 낯선 사람 한 사람을 집에 들였다.

“누고?”

“그냥, 우리 집에서 불꽃 사진 좀 찍고 싶다고 해서”

“미쳤나 진짜? 요새 세상에 낯선 사람을 집안에 누가 들이노?”

엄마는 작은 소리로 아빠에게 얘기했다.

“듣겠다. 살살 말해라, 저 사람한테 잘해주모, 울 아부지 단 며칠이라도 더 살 것 같아서... 내 착한 일 했다고 하늘도 감동해서...”  

“청승이다. 청승... 은이야 느그 엄마 청승 누가 말리겠노?”

엄마는 낯선이에게 의자를 놓아주고, 음료를 대접하고, 할아버지를 휠체어 앞에 앉혔다. 그리고 얘기했다.

“아부지.. 미라야, 큰딸 미라야... 참 세상 좋아졌네, 참 이삐다. 이래 한번만 말해줬으면...

아니, 미라야 미라야 큰딸 미라야 한번만 불러주모 내 소원이 없겠다. 아부지 때매 속끓인거 다 이자뿔텐데...”

“아부지... 저게 나이아가라 폭포란다. 진짜 이쁘재?”  

“엄마, 할배는 모른다, 설명 해 줘도”

“아이다. 다 본다. 다 듣고 본다. 아부지요. 그지예?”

그렇게 불꽃은 졌고, 낯선 사람도 갔고, 우리 가족도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엄마는 오랫동안 베란다에서 할아버지와 대화했다.

그리고... 울었다.

“여보, 민성아, 은이야... 이리 와봐라”

“와?”

“느그 할배 큰딸이랑 불꽃축제 보고 가고 싶었는갑다”

“무슨 소리고?”  

“아이고... 아부지요. 아부지요”

엄마는 세상이 떠나갈듯 울었고,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가셨다.
살아생전 그 효도를 다해서일까? 엄마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그런 엄마에게 난 요즘도 가끔 묻는다.

“엄마 할배 안 보고 싶나?”

“보고 싶어 죽긋다. 그래도 우짤끼고?”

“엄마, 천사 같은 울 엄마, 내는 엄마처럼 못할 것 같대이. 그래도... 내 엄마가 하는거 똑띠 봤으니까, 내도 엄마가 외할아버지 한테 한 거, 반은 안 하긋나?“

“은다. 내는 고마 늙으모 요양원에 넣어삐라.”

“엄마... 천사같은 울 엄마... 내가 엄마때매 못살긋다.”

작성자
한연아(부산시 부암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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