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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산복도로에 오르다 - 네 번째 이야기

골목길에서 어슬렁거리기

내용

봄이 왔네. 봄이 와

산복도로에도 봄은 왔다. 여기 저기 개나리, 목련 활짝 폈고 삼삼오오 봄볕 쬐며 앉은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 눈에 자주 띈다. 이번 주말쯤이면 산복도로에도 꽃 잔치가 벌어질 판이다. 따스운 봄볕에 아가도 봄마중 나왔다. 까꿍~^^

부산은 누가 뭐래도 ‘영화 도시’다. 느와르면 느와르, 멜로면 멜로, 블록버스터면 블록버스터, 영화촬영지로서도 ‘천(千)의 얼굴’을 가졌다.

주진모(혁)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무적자’. 주진모(혁) 동생 철(김강우)이가 살던 아파트에 가기 위해서는 영주동의 맨 꼭대기 계단을 올라야 한다.

‘왜냐면’ 시민아파트는 영주동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이다. 평생 오를 계단 산복도로에서 다 오른다. 낑낑ㅠㅠ 밭에 뿌릴 거름 포대기를 메고 가시는 아저씨도 힘들어하신다.

“73년에 여기 왔지예. 아파트 지은 지는 40년 다 됐네예. 그때는 그런대로 좋은 아파트였습니더. 하이고, 지금은 말도 못해예. 방에 비도 줄줄 새고. 우험해요.”

건물 벽에 붙은 ‘안전등급 D급’ 표지판도 많이 낡고 녹슬었다. D급 판정 받은 게 1996년 일이다. 이런 처지에 놓인 고지대 영세 아파트가 한두 곳이 아니다. 주거 질 개선은 지붕 개량만 해선 되지 않겠다 싶다.

평지에 있는 모 재건축 아파트는 20년을 채우자마자 겉도 속도 다 멀쩡한데도 헐어버리고 대단지 아파트를 만들어 분양중이다. 집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이자 놀이’하는 것처럼 거래되고 투기를 부채질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고지대 영세 아파트는 늘 ‘채산성 없음’일 수밖에 없다.

맹자는 그렇게 말했다. “民之爲道也, 有恒産者有恒心, 無恒産者無恒心.” 나라와 정치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백성의 의(衣), 식(食), 주(住)를 안정시키는 것임은 고금(古今)의 기본이다.

영주시민아파트에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진다. 동네 고양이들 회식자리.ㅋㅋ 여기는 고양이들도 서로 이웃처럼 같이 먹고 마신다. 아랫마을에선 좀체 보기 힘든 광경이다.

산복도로서 찍은 영화가 몇 편 더 있다. 영화 ‘마음이’는 초원아파트, ‘애자는 ‘부산디지털고'에서 찍었다. 초원아파트 계단 길이 까마득하다. 부산시에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가운데 하나로 상해거리에서부터 초원아파트 계단까지 에스컬레이터 놓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야단법석(野壇法席) 경로당

“아저씨는 와 안가고 자꾸 왔다갔다 하는교? 사진 다 안 찍었는가배?”
“저 배가 언제 들어왔노. 나는 저 흰 배 처음 보는데. 안 보이던 배네.”
“크루즈선이라고, 유람선입니더.”
“어, 내가 저 배를 한 사흘 정도 안 봤어. 한 사흘 만에 처음 보는 거 같네.”
“.... @@??”

시민아파트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면 마을 꼭대기 야산 텃밭 옆에 옴팡하게 터를 닦아 예닐곱 명 앉을 수 있도록 시멘트로 만든 정방형 자리가 있다. 모자와 보자기를 덮어쓴 할머니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할머니들 말씀으로는 ‘우리 동네 야외 경로당’이다.

할머니들은 이방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신다. 사진은 극구 찍지 말라 하신다. 가까이 다가가면 딴전을 하며 입을 탁, 닫으신다. 바다를 찍는 척하며 할머니들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할머니들은 몹시도 화가 나셨다. 정신대 문제, 독도 문제, 일본 지진과 원전 문제, 한-일 관계에 얽힌 민감한 내용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보도를 들으셨나 보다.

“일제 땜에 경제가 살았다카는데 순 거짓말이라. 우리 꺼 뺏어갈라꼬 철도 놓고 공장 짓고 핸거지. 어디 쌀만 뺏어갔나. 농사지을 나락까지 공출해가고. 숟가락, 사람까지 싹 다 공출해갔다 아이가.”

지면 특성상 한-일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오프 더 레코드’함을 이해 바란다.^^

문제는 고도제한?

산복도로 아래 집들은 망양로를 넘지 못한다.

버려진 경비초소에 컨테이너를 올려 미술 작품으로 만든 ‘산복도로 갤러리’. 그 맞은편 동일파크맨션 상가 건물 2층에서 짬뽕 한 그릇을 놓고 산복도로의 어둠을 기다린다. 야경을 찍을 계획이다.

“공기는 좋지요. 경치도 죽이고. 여기서 3개 구가 다 보이요. 야경도 끝내주지. 야경 좋아요, 여기.

여름에는 추워서 문 못 열어놓고 잔다니까. 한여름에 부산역 요 밑에 하고 한 2-3도 차이가 난다니까.”

보수동에서부터 산복도로를 취재하며 글을 써나가고 있다는 말에 아저씨는 식탁 옆에 의자를 갖다 대고 산복도로 자랑에 아들에게 배달까지 미루신다. 아들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단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합천 해인사’라 그러신다. “스님 하셨어요?”

“스님 밑에... 스무 살에 고향 나와서 사상 신발공장에 취직하려고 했어요. 그때 월급이 만 이천 원이었는데 중국집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만 오천 원을 주더라고요.

고향집 옆에 중국집이 있었는데 마을 형님이 거기서 일을 하셨어. 학교 마치고 놀러 가면 수타하는 걸 보여주면서 ‘한 번 해 볼래?’ 그러셨어. 재미 삼아 수타를 해봤는데 부산 와서 그게 직업이 될 지 누가 알았겠어요.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거더라고. 그렇게 중국집으로 들어간 길이 여기까지 왔지요.”

생기신 모습이 왕년에 소림사에서 물지게 좀 지신 거 같다 했더니.^^

“공장 노동자들 야식 배달 나가면 리어카에 100그릇씩 싣고 나가는 거라. 그때는 일이 많아서 노다지 야근이거든. 면이 불어서 못 먹고 그런 거 없지. 그냥 배 채우기 바쁘니까.

(장사가)어렵지요. 배달 가보면 전부 할매들이라. 노인이 80%는 될 거야. 집에 아이들이 있어야 짜장면도 시켜먹고 탕수육도 시켜먹고 그러지. 다 노인들이니까. 이가 안 좋으시니까 (중국 음식) 못 드시는 거라. 90% 이상이 배달 손님인데... 그런데 여기 동구가 중구보다 못하지요?”

“여기가 무슨 동입니꺼? 아, 초량2동. 벌써 동구네. 중구도 여기 하고 비슷한 데는 비슷하고예. 그래도 거긴 옛날보단 못해도 남포동, 광복동 번화가가 있으니까예.”

“여기는 장사가 안 돼요. 사람들도 떠나고. 여긴 아직도 70년대요. 저어 보소, 집들이 다 옛날 그대로잖아요. 쪼매씩 고쳐서 사는 거지 뭐.

고도제한이 문제라. 고도제한 때문에 집을 못 올리거든. 요 우에 충혼탑 조망 가린다고 망양로 도로선 위로는 지붕을 못 올리게 하는기라. 옥상에 주차장이 있는 기 그것 때문에 그렇거든요. 저것(산복도로 갤러리 컨테이너 박스)도 불법이라.”

“그러면 시에서 불법을 저지른 거네예.^^ 그런데 저런 미술 작품 생기고 장사가 좀 잘 된다든지 동네가 좀 바뀐 거는 없습니까?”

“테레비 카메라 와서 촬영해가고 그래사터만은 요새는 좀 조용하네요. 우리 가게도 찍어가고 그랬는데. 장사하곤 관계없지.

처음엔 저기 뭐꼬 그래쌌는데... 그런데 저기 뭔 뜻이요? 눈 오는 걸 표현한기가?”

고도제한 때문에 건물을 높게 올리지 못한다는 말은 맞다. 영주 시민아파트는 충혼탑 조망 문제로 층수 제한이 있고, 망양로 밑의 건물들은 망양로 도로선을 기준으로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야단법석 경로당 할머니들의 말씀이 귓전을 맴돈다.

“인자 여도(여기도) 경치 좋은 건 끝이라. 저거 북항 재개발하면 높은 건물들 빽빽하게 들어설 건데 여서는 인자 바다도 못 보는기라.”

산복도로 주민들은 북항 재개발이 이곳에 미칠 영향까지 내다보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밖이 캄캄해진다. 다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뭐라 캤는교? 쿨 부산이라꼬요? 나는 인터넷 못하니까 우리 아들보고 함 찾아봐라 해야겠네.^^ 조심해서 잘 가소. 여는 밤에 길이 (위험해서)겁나서.”

밤길을 걱정해 주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즐겁다. 온 길을 되돌아가며 산복도로에 찾아든 밤을 느껴본다. 아홉시가 넘어가는데 아직 불 켜지지 않은 집이 반 이상이 넘는 건물들이 많다. 귀가가 늦는 것인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인지...?

원성만 기사 입력 2011-04-11 다이내믹부산 제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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