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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 페인트 쇠 속까지 발랐다
박재관 2012-06-20
쇠붙이는 녹이 슨다. 철이 공기 중에서 부식되며 삭아 생기는 것이다. 시골 양철지붕이나 외부에 노출된 쇠 구조물은 몇 년이 지나면 녹물이 줄줄 흐른다. 그래서 대개 4~5년 주기로 녹을 벗겨내고 페인트칠을 다시 한다. 광안대교는 강교(쇠다리)다. 그것도 염분이 많은 바... -
광안대교 다릿발, 바위 속 1.5m에 심었다
박재관 2012-05-30
'지진 강국' 일본이 지진 한방에 초토화된 적이 있었다. 1995년 1월 발생한 고베 대지진이다. 이 지진으로 6천400여명이 목숨을 잃고, 20만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고속도로 고가도로가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고베 항만시설 대부분이 부서지거나 파묻혔다. 피해액은... -
“사라호 태풍 다시와 봐라! 끄떡이나 하나”
박재관 2012-05-16
1940년, 미국 워싱턴주의 타코마 다리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준공 4개월 밖에 안 된 새 다리가 초속 19m의 가벼운 순간 돌풍에 5분 만에 붕괴되고 만 것이다. 타코마 해협을 횡단하는 길이 853m의 이 다리는 초속 53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 시공됐다... -
“부산의 상징·세계적 명물이 되게 하라”
박재관 2012-05-02
“20년이라, 20년을 계획한다, 20년이라…. 좋소, 그렇게 해봅시다. 부산 시내가 이렇게 막히니 도심을 관통하지 않는 해상순환도로가 필요하긴 할 것 같네. 그 대신 광안대교를 책임지고 부산의 심벌이 되게 건설하시오. 수십 년이 지나도 부산의 자랑, 세계적인 명물이 ... -
광안대교, 4차선 시멘트다리 될 뻔했다
박재관 2012-04-12
“나에게 무슨 덕이 된다고, 멱살을 잡혀가며 광안대교를 놓아야 한단 말인가….” 조창국 당시 광안대로 건설사업소장은 너무 지쳐 한발 물러설까를 여러 번 생각했다. 광안대교 건설을 반대하는 여론은 1년이 넘어도 잦아들지 않았다. 언론학계 보다 부산시의회와 공무원의 반대가... -
“광안대교 놓자했다 맞아죽을 뻔했다”
박재관 2012-03-28
광안대교는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처음 광안대교를 놓는다고 했을 때 언론을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의 반대여론은 만만치 않았다(사진은 광안대교 야경). 처음 광안대교를 놓겠다고 했을 때,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일부 대학교수들은 언론에 그럴듯... -
중앙공원 충혼탑도 지하철이 세웠다
박재관 2012-03-14
1985년 여름, 무사고를 자랑하던 부산지하철 공사장에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2단계 1공구 중앙동역 인근 지하철 공사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날이 밝아올 무렵인 오전 6시쯤이었다. 도로를 덮고 있던 복공판이 무너지는 바람에 자갈치시장 쪽으로 달리던 시내버스가... -
부산지하철, 중앙·남포동 못갈 뻔했다
박재관 2012-02-22
부산지하철은 하마터면 중앙동남포동을 경유하지 못할 뻔했다. 어떤 노선으로 놓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찬반이 달랐고, 시공법을 두고 서울과 부산의 학자전문가들이 충돌했다. 이해득실을 셈하는 건설업체나 부산시 공무원들의 입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 -
지하상가, 몇몇 공무원 묘안이 만든 큰 결실
박재관 2012-02-08
“부산지하철은 지형여건상 땅을 깊이 팠다. 지하철 공사하면서 깊게 판 땅을 그냥 되메우기 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공사비도 줄이고, 지하공간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부산에도 지하상가 같은 ‘지하도시’를 만들자.” 부산지하철 1호선 공사가 한창이던 때 지하철 건설에 참... -
부산 전동차 서울 반값 계약…재질 더 좋아
박재관 2011-12-21
전두환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부산지하철 전동차는 일본제를 들여오게 됐다. 최종호 부산시장과 임원재 당시 부산지하철건설본부장은 이 결정이 내려진 한달여 뒤 다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국제입찰, 가격협상 과정을 거쳐 대통령의 최종 결재를 받기 위해서였다. 1983년 6월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