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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영광도서 앞에서 만나!" 한마디면 충분했던 쉰두 살 서점, 부산문화 자존심

부산의 전시·문화공간 ⑥ 영광도서 ㅣ 1968년헌책방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최고(最古) 서점

내용

 책쾌(책의 매매를 중개하는 상인)가 집집마다 책을 팔러 다니던 시대를 지나, 서울 종로의 광교에 최초의 근대식 서점 `회동서관'(匯東書館)이 생긴 것은 1897년이었다. 회동서관은 서점이면서 출판도 겸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을 출간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지석영의 `자전석요'(字典釋要)도 회동서관에서 발행한 것이다. 최초의 서점은 당시 물밀듯이 밀려드는 근대 문물에 대한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 서점과 출판도 암흑기였다. 우리말과 글이 금지되었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서점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서점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광복 후 1945년 11월 삼중당(三中堂)에서 출판과 함께 도매상을 시작하면서부터 서점의 명맥이 되살아났다. 이후 197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국민의 문화와 지적 요구가 늘어나면서 서점도 크게 늘어났다. 각 도시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서점들이 중심가에 자리 잡았다. 그때 부산을 대표하는 서점으로 영광도서(부산진구 서면문화로10)가 있었다. 서점 역사에 최고(最古) 서점으로 남을 서막이었다.


부산의전시공간 영광도서01

영광도서 내부.



시골에서 온 소년, 책장사를 시작하다
 1965년 2월 중학교를 졸업한 소년 김윤환(영광도서 대표, 후에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은 앞날이 막막했다. 경남 함안에서 한빈(寒貧)한 유학자의 6남 3녀 중 셋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형편상 상급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도와 농사를 짓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도 더 하고 싶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마산이나 부산, 서울 등 대도시로 나갈 궁리를 했다. 때마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라디오기술학원에 다니던 1년 후배가 설날에 고향을 찾았고, 윤환은 주경야독하는 그를 보고 부산행을 결심했다. 1966년의 일이다.

 황령산 서쪽, 서면 시내 일대가 펀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토담으로 쌓아 루핑을 얹은 지인의 집에 임시 기거하면서 취직자리를 찾아 나섰다. 중학교 3년 내내 도서부원이었던 그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취직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물어 도서관을 찾아갔다. 가까이에 부산시민도서관(지금의 부전도서관 자리)이 있었다. 경비실에다 도서관에 취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경비를 서던 분이,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급사 자리라도 구할 수 없냐고 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음날도 도서관을 찾았다. 아버지에게 한문도 배웠으니 일자리를 좀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경비 서던 분이 옛 부산상고(지금의 서면 롯데호텔 자리) 쪽으로 가면 책방들이 있으니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부산상고 붉은 담벼락에 한 평짜리 서점들이 즐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면 일대에는 서점 70여 곳이 있었다. 부산상고 담벼락뿐만 아니라 전포동의 육군형무소 담벼락에도 서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서점가를 둘러보던 김윤환은 `함안서점'이란 간판을 발견했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고향 이름이 너무나 반가웠다. 다짜고짜 서점으로 들어갔다. 가족끼리 운영하는 한 평짜리 작은 서점은 직원을 둘 형편이 아니었다. 김윤환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일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대화 중에 함안서점 주인이 큰형과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월급을 안 받아도 좋다면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결국 취직을 했고, 서점 한구석에 군용침대를 놓고 먹고 자며 서점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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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찾는 책이 없다면 책방이 아니다
 점원 생활은 오래 하지 않았다. 서점에 헌책을 팔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직접 헌책을 사서 팔기 시작했다. 변두리 서점이나 대학교 앞 서점에서 헌책을 사다 서면이나 보수동 책방들에 다시 팔았다. 어릴 적 유학자인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운 덕에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귀한 책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많은 판매상들이 한자를 몰라 책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 내용을 모르면 `윤환이에게 물어보라'고 할 정도였다. 2년여 경험 끝에 김윤환은 직접 서점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시골 어머니가 가축을 팔아 보태고 빌려서 보낸 5천 원을 밑천 삼았다. 1968년 5월 1일, 서면 복개천에 1.5평 규모의 서점을 열었다. 영광서점으로 이름을 지었다. 나무(책)를 안고 있는 집의 모양을 한 영화로울 영(榮)과 빛을 발하여 모여든다는 의미의 빛 광(光)을 써서, 영광서점으로 지었다.
 

서가를 직접 짜고, 발품을 팔아 구해온 책은 밤새워 정리하고, 책장이 뜯어지거나 모서리가 헤진 헌책은 직접 수리도 했다. 점점 책이 쌓여갔다. 궁리 끝에 복개천 시장 자리에서 공중화장실을 운영하던 분의 허가를 얻어 영광서점의 책 전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화장실 벽에 서가를 만들어 붙이고 무인판매를 했다. 책 광고도 하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책을 보고 살 수 있도록 하면서 점원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이런 열정과 신선한 아이디어에 힘입어 서점은 점점 성장했다.
 `독자가 찾는 책이 없다면 책방이 아니다'라며 책을 구하러 매주 서울행 통일호 밤기차를 탔다. 덕분에 독자들에게 `영광도서에 가면 모든 책이 있다'는 신뢰가 구축됐고, 영광도서는 부산 대표 책방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 문화운동 산실, 국내 최고(最古) 서점
 영광도서도 한때 위기를 맞았다. 2002년, 95년 역사를 자랑하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다. 서점의 대형화 추세와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1998년 5천여 개였던 동네서점 중 절반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 종로서적은 물론 전국의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던 서점들이 하나둘 폐업했다. 영광도서와 함께 부산의 대표서점이던 동보서적마저 2011년 문을 닫았다.
 

"영광도서는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해운대에서 서면까지 책을 사러 갔어요. 영광도서는 그냥 서점이 아니라 부산사람들에게는 추억이고 역사였어요. 영광도서 앞에서 약속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부산사람이 아니에요. 영광도서 앞에서 만나자고 하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죠."
 35년 단골이라는 오십대 시민의 말에서 영광도서라는 서점이 부산사람들의 정신에 끼친 문화와 지성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영광도서가 이처럼 많은 부산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단지 향토서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광도서는 부산 문화운동에 중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93년 `책의 해'를 맞아 제1회 행사를 시작했다. 서점 한 켠에 만든 다목적 문화공간에서 `영광독서토론회'를 매달 무료로 개최했다. 박경리, 박완서, 고은 세 사람을 빼고 우리나라 대표 작가 대부분이 참여했다. 일본 나오키상 수상작가 `리큐에게 물어라'의 야마모토 겐이치도 다녀갔다. 지금까지 268회가 열렸다. 작가-평론가-독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토론회는 `영광독서토론회'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밖에 일본어 강좌를 비롯한 무료강좌, 무료 이동도서관 운영,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왕 선발 대회 개최, 독서감상문 공모, 오지 학교나 군부대 등에 책 기증, 갤러리 운영 등 다양한 문화운동을 폈다. 책(지식)-문화(현장)가 서로 넘나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때 유흥가 밀집지역이었던 이곳이 `서면문화로'라는 새 거리 이름을 얻는 데 영광도서가 한몫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부산의전시공간 영광도서05

영광도서는 부산 서점의 역사이자 부산 문화의 자존심이다. 오랜 단골이 많은 이유다. 서점에서 책을 읽는 시민들.



영광도서는 2018년 12월 기존 위치에 17층 규모의 새 건물을 짓고 건재함을 알렸다.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서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상 8∼9층에는 시민을 위한 공연장, 강연장 등 책과 관련된 문화시설이 들어선다. 건물 이전으로 잠시 중단됐던 독서토론회와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영광도서 앞에서 만나!"
 

영광도서는 한때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다. 영광도서 앞에서 만나자고 말하면 충분했다.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는 `부산 사람'이라는 자부와 정체성 안에 스며 있는 영광도서의 기억은 여전히 살아있다. 부산이라는 대지 속으로 굳게 뿌리내리고 있는 지성과 문화의 한 거처가 영광도서다. 설립 52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이라는 `영광도서'의 자긍심은 곧 부산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김진 / 사진·권성훈



김진

동화작가. 글과 책에 매혹되어 기자,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우리 동네 마루'로 등단, 제3회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펴낸 책으로 `럭키 파트라슈',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외뿔 고래의 슬픈 노래' 외 여러 권이 있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에서 삶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고 있다. 부산의 매력에 빠져 언젠가 부산과 부산 사람을 소재로 한 글을 쓸 생각이다.



                                                                                                             기획 진행 편집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6-01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2006호

다이내믹부산 제188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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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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