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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하루 또 하루 더했더니 이윽고 닿은 화업 70년

원로 판화가 주정이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

내용


 말수는 적고, 시선은 그윽하다.
 판화가 주정이 선생의 새 책 `숫돌에 칼을 갈며'를 읽은 첫 느낌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판화가인 주정이 선생은 빼어난 글솜씨로 문필가로도 활동해 왔다. 그림과 글을 넘나들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부산의 문화예술계 어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가 일상과 예술을 넘나들며 기록한 삶의 풍경들로 채워져 있다.
 주정이 선생의 이력은 독특하고 간단치 않다. 열일곱 살에 일간지 어린이판 연재만화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사만화가로 일했고, 만화책을 펴내기도 했다. 월남전에도 참전했는데, 이때 사진의 기록성에 매료돼 사진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가 필생의 업이 된 판화로 옮긴 건 1970년대 중반이다. 먼길을 돌아 판화라는 세계와 운명적으로 조우한 것이다.
 판화와 만나며 그는 칼잡이의 삶을 걸어간다. 칼맛 나는 판화를 고집하며 여러 번의 전시회를 열었고, 신문소설의 삽화를 목판화로 시도해 무려 1천 여 회 연재하기도 했다.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는 김해 신어산 북방 골짜기로 들어간 노 작가가 매일 숫돌을 갈고 자연과 교류하며 그곳에서 지낸 일상의 기록이다.
 산골짜기의 시간은 단순하고 낮게 흐른다. `지금 사는 곳이 그 사람'이라는 명제의 투박함과 단순함을 감안 하더라도, 이번 산문집에 실린 글을 읽고 있으면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6-2-1

 주정이 판화가의 작품.



 농어촌 특유의 생활문화를 경이롭게 바라보고(그는 면장에 부임하고서는 매일 아침 일찌감치 집을 나서는 출근길 도중에 면내 마을을 번갈아 둘러보곤 마을 이장 집을 불쑥불쑥 방문해서… `우리 면장님'), 뭇 생명들과 대화한다(산골에서 살다보니 개구리가 시도 때도 없이 막 울어대지는 않는 것 같았다. 무시 때는 한두 마리 정도가 쉬엄쉬엄 울다가 무슨 기척이라도 나면 요란한 합창을 시작한다. `산골정취로 답하다').
 작가는 자연의 품 안에서 설겅설겅 거닐다가도 불현듯 시대의 모순을 슬쩍 들이민다. 손끝은 매섭고 아린다. 마치 나무를 파고 새기는 칼끝처럼 아프고 예리하다.
 백미는 `동밖이모'다. 빨갱이로 몰려 처형당한 남편을 찾아 헤매는 젊은 여자는 죽은 남편을 만나고 온다고 말한다. `풀이 무성한 어느 한 곳에 주저앉아 허공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한참을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또 한참을 울기도 한다고 하였다. 누가 그 여인에게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으면 그 여인은 "우리 신랑 만나고 온다."라고 말하였다'는 대목에서는 숨이 멎는다.
 연륜은 세상의 맨살도 담담하게 드러낸다. 그 담담함 속에 담긴 시선의 깊이가 깊고 온유하다. 크고 넓게 보면 민중미술 작가로 갈래지을 수 있는 작가의 글에는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역사와 사회를 보는 예리한 시선과 따스한 가슴이 물결친다. 적은 말수와 낮은 목소리로도 크게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산문집 `숫돌에 칼을 갈며'는 보여준다. 도서출판 해성 펴냄.  문의 (051-465-1329)


 

김영주 기사 입력 2020-01-13 다이내믹부산 제202001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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