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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그대 마음의 문은 열려 있는가?

한 해를 보내며 품어야 할 기도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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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고전이다. 흔히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억압하고 수탈하고 행패를 부리는 일을 상습적으로 일삼았던 악덕 관리들에게는 하나의 좌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목민심서'와 매우 흡사한 교훈을 남기셨다.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참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문으로 들어간다' ,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인간의 너무도 손쉬운 일상적 관습인데 그것이 무슨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일이 과연 쉬운 일인가?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인생의 정로(正路)를 걷는다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좀 더디더라도, 좀 수고가 되더라도 바른 길을 찾아서 바른 방법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자를 의미한다.

유년시절, 어머니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덕지덕지해진 창호지를 뜯어내고 풀을 쑤어 새 창호지를 붙이고 거기에다 코스모스 꽃잎이나 예쁜 나뭇잎을 붙이셨다. 그리고 문 밑에는 조그만 유리를 달아 유리 구멍을 만든다. 참 신기하다. 그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본다. 안과 밖의 경계가 그 조그만 유리 구멍 사이로 나누어진다. 그 구멍으로 비가 오는 것도 보고, 눈이 오는 것도 보고, 사람 지나가는 것도 본다. 이따금 생쥐가 지나가는 것도 본다. 소쿠리로 참새를 잡을 때도 그 구멍으로 내다본다. 동무들이 찾아와 놀자고 소리치는 것도 본다.
나는 가끔 유년시절에 보았던 들창문의 그 작은 유리 구멍을 생각한다. 그 좁은 구멍을 통해 예수의 말씀을 묵상한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천국에 가는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이라 했으니, 더이상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나를 다스리고 내 마음의 창문으로 사물이나 세상을 볼 수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결국 길과 문은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고,
통과해야 할 문이 있다.

그러나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서는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없고,
또 그 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없다.


몇 해 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여행 경비가 넉넉하지 않으니 주로 여행하는 도중 열차에서 많이 잤고, 허름한 여인숙 같은 데서 잠을 잤다. 그런데 그 허름한 여인숙이라는 곳이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집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이 굉장히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창문이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창문이 문을 여닫는데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수백 년이 지났을 창문인데, 튼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창문으로서의 기능도 완벽했다.
창문을 열고 밖을 조망하면, 또 다른 세계와의 마주침을 느낄 수 있다. 창문은 단순히 열고 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을 원활하게 소통하게 해주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통로이다.

창문의 네 틀이 90도 각을 이루어 마주하면 사각(四角)은 입 '구(口)'자가 된다. 문은 입이다. 입이 부실하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문의 기능만큼 문의 상징성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나와 자연, 나와 이웃, 나와 사물의 소통(疏通)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마음의 넓고 견고한 창문이 나에게 있는가?
30여 년 전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할 때이다. 강원도 집들은 다 야트막하다. 집집마다 문이 다 여닫이인데 문 높이가 내 키보다 훨씬 낮다. 내가 건망증이 심하다 보니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교우들 집이나 동네 이웃집이나 들어가면서 내 이마가 문틀에 박치기를 한다. 별이 번쩍번쩍한다. 손으로 아픈 이마를 만지면서,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을 한다. 그러나 그 집에서 나오면서 문틀에 또 박치기를 한다. 이마가 성할 날이 없었다.
작은 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심지어 다락문 같은 데는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또 박치기를 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유년시절 나를 '미련곰탱이'라고 부르셨던 걸까?

요령부득하면 이마만 찧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친다. 문이 주는 화두는 '내가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낮아져야 한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겸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또 그 반대가 '교만'이다. 가진 것이 많다고 교만을 떨면 마음은 추해지고 만다. 자기가 잘났다고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겸손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은 아직 인생의 철이 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고 겸손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삶의 깊이를 갖춘 사람이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낮아져서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다. 내가 낮아질 수 있다면, 그 어떤 세상의 문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결국 길과 문은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고, 통과해야 할 문이 있다. 그러나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서는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없고, 또 그 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없다.

머지않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크리스마스와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이다. 성탄의 기쁨에 앞서 한번쯤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탄과 연말의 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여럿일 것이다. 숱한 말과 넘치는 의미 속에서 분명한 한 가지 기도는 이것일 것이다.
낮아져야 한다. 끊임없이….


                                                                                                                                         박 철 목사 / 샘터교회 · 탈핵부산시민연대 대표




다이내믹부산 2019년 12월호 오피니언 박철 목사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19-12-11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1912호

다이내믹부산 제187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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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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