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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골목·계단·사람, 산복도로에서 만나는 부산의 오래된 미래

보행친화도시-부산을 걷다-⑥부산 산복도로

내용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중용' 23장이다. 부산 산복도로를 걸으면 이 구절이 생각난다. 이곳은 지극한 곳이다. 가난과 남루가 땟국물처럼 남아있던 길은 깨끗하게 단장됐고, 어둠침침하던 골목 안에는 쾌활한 웃음소리가 번진다. 길은 밝아졌고, 햇살은 풍성해졌다. 산 허리를 휘감으며 구불구불 돌아가는 골목과 마을에 생기가 넘친다. 지극함이 변화시킨 생생한 현재를 만날 수 있는 곳, 부산 산복도로다.

다시, 산복도로다. 이 지겨운 호명은 그러나 지겨울 수 없다. 그 이유는 부산역사문화대전이 서술하고 있는 내용 그대로다. 산복도로는 부산의 과거와 현재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미래다. 오늘 부산이 산복도로에서 시작됐고, 미래 부산이 걸어가야 할 방향이 산복도로에 있다. 산복도로를 간단없이 불러내고, 드러내고, 조망하는 이유다.



사진은 벽화마을로 유명한 중국 산복도로 신리마을 거리 모습.
- 출처 및 제공 : 권성훈


산복도로를 호명하며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산복도로는 어디이며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부산역사문화대전이 밝히고 있는 산복도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동구·중구·서구·사하구·사상구의 원도심 부근 산지를 따라 조성된 도로다.


이 한 줄의 개념과 함께 △조성 배경 △현황 △의의 및 평가 세 항목으로 구분해 꽤 길게 산복도로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산복도로(山腹道路)는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산(山)의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경사지까지 개발이 이루어지며 가장 위쪽에 자리한 도로를 의미한다.


부산의 산복도로는 부산의 원도심과 개항기부터 시작된 이방인이 모여든 도시, 부산의 특성을 반영하는 공간이다. 산지가 많고 평지가 좁은 부산, 특히 원도심 지역은 해안까지 산지가 발달해 있고, 매축(埋築)으로 형성된 토지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인의 구역으로 개발됐다. 개항기를 거치며 부두 노동자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외지인들은 경사진 산지를 따라 올라가며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정착하게 됐다.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기존 정착지에서 더 위쪽 산지까지 영세한 판자촌 마을을 형성하며, 도심부 부근에 몰려들어 부두 노동자 또는 도심부 시장의 일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인해 몰려든 가난한 이농 인구가 산동네의 정착민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산복도로의 가파른 계단


평지가 좁은 부산 도심부로 유입된 대규모의 외지인들에 의해 도시 난개발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 부산의 산동네다. 이 산동네를 연결하는 도로가 산복도로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는 주도로의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또, 산 위의 마을까지 연결하는 통로로 산복도로가 형성됐지만, 부산에서는 산복도로가 금정산맥을 따라 길게 이어지며 독특한 형태로 발달했다. 산동네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산복도로는 부산의 도시 공간을 산복도로 위와 아래로 수직적 형태로 구획하고 있다.

산동네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의미로서의 산복도로는 1964년 동구 초량동에서 처음 개통됐다. 이후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산복도로의 주거환경과 주민들의 삶은 크게 변했다. 산복도로는 산동네를 가로지르며 산 위 주거지와 산 아래 생산 활동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가 됐다. 산동네 사람들은 산굽이를 돌며 가파른 길을 달리는 대형 버스에 몸을 싣고 산 아래 일터로 향했다가 저녁에는 산 위의 집으로 돌아갔다.

산보도로에서 바라본 부산항


대중교통망이 산동네까지 확장되면서 산복도로 아래는 더이상 산동네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게 됐다. 산 아래는 반듯한 집과 건물이 들어섰다. 산 아래와 산 위는 계급적으로 구분됐고, 산복도로는 위와 아래를 가르는 경계가 됐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이 밝히고 있듯이 산복도로의 개념과 변화는 더도 덜도 없이 부산과 산복도로의 과거와 현재를 드러낸다.


6개 구에 걸쳐 산허리를 감싸는 길·마을
산복도로는 2012년 12월 말 기준 부산시 부산진구·동구·중구·서구·사하구·사상구를 아우르며 길이만 총 2만2천229m에 이른다. 이 지역 외에도 영도구 봉래산, 금정구 금정산 기슭에도 산복도로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산 산복도로라고 말할 때는 원도심 산복도로를 말한다.
망양로와 진남로, 엄광로, 천마산 산복도로, 옥녀봉 산복도로가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산복도로다.

망양로는 서구 동대신동, 중구 보수동, 대청동, 영주동, 동구 초량동, 수정동, 좌천동, 범일동, 부산진구 범천동을 아우른다.

산복도로 골목 풍경


진남로는 부산진구 전포동 황령터널 위에서 연제구 연산전화국 앞까지의 구간이다. 엄광로는 부산진구 개금사거리에서 동구 범일동까지, 천마산 산복도로와 옥녀봉 산복도로는 사하구 감천동 일원의 도로이다.

엄궁 산복도로는 사상구 낙동대로 일원이다. 부산에는 대표적인 산복도로를 따라 오래된 작은 주택들, 좁은 계단, 길 등 전형적인 산동네들이 자리하고 있다.

6·25전쟁과 가난이 만든 하늘 아래 동네
서두에서 밝혔듯이 산복도로는 6·25전쟁과 도시개발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 부산으로 피란민이 끝없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난한 피란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동구 수정·초량동과 중구 영주동 일대의 산등성이였다. 평지가 적고 산이 많은 부산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려면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가파른 산비탈의 판잣집에서 가난한 피란민과 도시빈민들은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가난은 오래 이어졌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산복도로 사람들은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산 허리춤에 뿌리를 내렸다. 마을은 옆으로 그리고 위로 확장됐다. 지게꾼으로 날품을 팔아 먹고 살던 남자들은 비탈진 계단참에 웅크리고 앉아 부산역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기차의 긴 몸통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사내들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 부산역으로 달려갔다. 40계단과 108계단의 가파른 경사가 지게꾼들의 강퍅한 걸음걸이로 출렁거렸다. 사내들은 날품을 팔아 번 돈으로 보리쌀 한 봉지를 사서 산꼭대기 집으로 돌아갔다. 산복도로의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이 가난에 지친 사내와 여자들의 걸음을 따라 휘청거렸다.


원도심 재생사업으로 변신 중
부산 산복도로의 역사는 엇비슷하다. 계단, 골목, 가난이라는 세 단어가 60년 넘게 이곳을 상징했다. 가난의 상징으로 불리던 부산의 산복도로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지 오래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원도심 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이후 산복도로가 부산 현대사를 품은 공간으로 재발견되면서 가장 부산다운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부산의 오래된 미래로 주목받으면서 산복도로는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집값이 싼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산복도로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감천문화마을이 대표적인 곳이다. 감천문화마을이 이름을 알리면서 산복도로는 새롭게 주목 받았고, 부산의 미래를 보여줄 공간으로 그 이름이 산복도로 계단의 가파른 경사처럼 번져나갔다.
산복도로 최초의 갤러리인 갤러리 수정이 2017년 5월 개관했고, 산복도로 최초의 인문학 공간인 인문학당 달리가 지난해 문을 열었다. 이에 앞서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의 하나로 '금수현의 음악살롱'과 북카페가 문을 열었다.


동구 산복도로에 문을 연 사진전문 갤러리 수정

산복도로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모든 것이 낡고 또한 새롭게 태어나는 산복도로를 걷는다는 건 변화의 현장 속에서 부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발을 맞추는 행위다. 산복도로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야 한다. 이곳을 운행하는 시내버스 86번, 43번, 52번 버스를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도 산복도로의 풍경과 마주칠 수 있다. 산의 꼭대기에서 산 아래로 길게 이어진 계단은 아찔하게 가파르고, 좁은 골목은 미로처럼 촘촘하게 뻗어 있다. 감천문화마을, 초량 이바구길, 중구 신리마을, 수정동 성북고개, 어느 곳을 걷더라도 그곳에서 만나는 풍경은 다르며 또한 닮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빈틈에서는 상추와 배추가 자라고, 늙은 여자들은 자투리 밭에 물을 주며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 늙은 남자들은 좁은 골목 어귀에 모여서 한 줌의 겨울 햇볕을 나눠 쬐며 담배를 핀다.

길은 어디로도 통한다. 좁은 골목을 지나면 멀리 북항이 보이고,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면 중앙공원으로 가는 샛길이 나타난다. 동구와 중구와 서구와 사하구로 뻗어 넘나드는 산복도로에서 경계는 무의미하다.


산복도로 능선을 따라 걸으며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소설 제목을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어떤 승차권도 무의미하다. 낡은 고정관념은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게 좋겠다. 산복도로에는 경계가 없다.  행정구역의 구분으로는 이곳의 가치를 구획짓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으면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마을에 닿는다. 산복도로의 오래된 마을에서 부산의 역사와 미래를 만날 수 있는 이유다.

글 김영주

사진 권성훈

김영주 기사 입력 2019-12-09 다이내믹부산 제201914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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