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소복 ‘얼음가루’·몽골몽골 ‘팥’ 환상조합
부산을 맛보다 - 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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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즘이야 냉방장치와 샤워시설이 좋아 여름나기가 한결 수월해졌지만, 옛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우물가에서 등목을 한 후, 바람 좋은 대청마루에서 부채를 부치며, 얼음 화채를 먹는 식으로 여름을 이겨냈다. 예나 지금이나 온몸이 땀으로 범벅일 때, 잠깐 더위를 속이는 데는 시원한 음식 이상 가는 것이 없다. 특히 온몸을 써늘하게 식혀주는 빙수야 말로 찬 음식의 정점에 있다. 때문에 빙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즐기던 여름철 대표 음식이었다.
▲팥빙수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먹는 여름 대표 별미이다. 부산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팥빙수 가게들이 즐비하다.
보기만 해도 더위 날리는 ‘빙수하면 팥빙수 아인교’
삼국시대 때부터 얼음을 저장하는 석빙고가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대신들에게 삼복더위를 잘 넘기라는 의미로 얼음을 나눠줬는데, 이 얼음으로 과일화채를 만들어 먹음으로써 여름을 쉬 났다고 전해진다. 최근 들어 여름의 필수음식으로 전국적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빙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빙수하면 팥빙수~!’였던 시절이 있었다. 빙수기에 얼음덩어리를 올리고 손잡이로 빙수기를 돌리면, 신기하게도 눈꽃송이 같은 얼음가루가 빙수그릇에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중년의 나이를 사는 이들에게는 시원하게 다가오는 한 여름날의 추억이었다. 입술에 닿는 차가운 얼음과 달콤한 단팥은 짜릿하고 청량하게 다가오던 첫사랑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이었던 것. 원래 팥빙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즐겨먹던 음식이었다. 이를 현지화 시켜 만든 것이 오늘날의 팥빙수다. 하얀 얼음 위로 뽀얀 우유와 먹음직스런 단팥이 넉넉하게 올라가 있는 팥빙수는 쳐다만 봐도 더위를 날려버리는 매력이 있다.
팥빙수의 도시 부산 … 전국적 명성도 자랑
부산은 팥빙수에 관해서는 원조도시이기도 하다. 기존의 팥빙수가 전국화 되는 과정에 부산이 있었다. 특히 얼음결정이 부드러운 눈꽃빙수를 탄생시키고 유행시킨 빙수카페도 부산 기업이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전국적 지명도의 팥빙수 가게들도 부산 곳곳에 포진하고 관광객을 맞고 있기에 그렇다.
30여년을 훌쩍 넘긴 ‘광복동 팥빙수골목’의 팥빙수 포장마차들도 부산이 ‘팥빙수의 도시’라는 것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팥빙수골목은 광복동 패션거리 새부산타운 뒷골목(광복로 49번 길)에 위치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 한 남성 노점상이 팥죽과 팥빙수를 팔았던 것이 그 시초.
마침 부산으로 관광 온 일본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자, 너도나도 팥빙수와 단팥죽을 팔게 된 것. 한창 번창할 때 이 골목에는 10집의 팥빙수 포장마차가 영업했다. 지금은 처음 시작한 사람들의 은퇴와 예전 같지 않은 불경기 때문에 7집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3~11월까지는 팥빙수를 팔고 단팥죽은 사시사철 판다.
▲수동 팥빙수 기계를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광복동 팥빙수골목’의 팥빙수 포장마차들.
옛 방식·옛 정까지 그대로 … 여름엔 빙수, 겨울엔 단팥죽
아직도 수동 팥빙수 기계를 쓰는 추억의 팥빙수 골목으로 여름철 내내 빙수그릇에 하얀 눈송이 같은 얼음가루가 소복소복 쌓이고, 그 위에 우유와 연유, 단팥이 듬뿍듬뿍 올라간 팥빙수를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파라솔을 편 가게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팥빙수를 시킨다.
먹음직스런 팥빙수가 푸짐하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풍경이다. 이곳 팥빙수는 수동 빙수기에 얼음을 갈기에 굵은 얼음이 거칠게 서걱서걱 씹힌다. 때문에 입안에서 감도는 냉기 또한 더할 나위가 없다. 잠시의 더위를 털어내기엔 충분하다. 빙수 사이로 팥이 몽글몽글 씹히는데 부드러우면서 달콤하다. 모두들 팥을 직접 삶기에 가게마다 팥빙수 맛이 다르다. 그 미묘한 맛의 차이는 소금 간에서 판가름 난다고 한다. 각 가게의 단팥 맛을 일별해보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겠다. 파인애플, 체리 등 과일과 함께 씹으니 과일의 싱그러움과 단팥의 달콤함이 차디찬 빙수와 함께 담박하게 어우러진다. 한 숟갈씩 퍼먹을 때마다 그 상쾌한 맛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한 그릇 먹고 나니 몸의 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등줄기가 써늘하기조차 하다.
“빙수 좀 더 갈아 줄게요.” 주인장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다시피 해 한 그릇 더 채워준다. 삼복더위에는 빙수 한 그릇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먹을 만큼 빙수그릇을 다시 채워주는 것이란다. 그 넉넉한 인심이 참으로 보기 좋다. 때마침 일본인 가족이 자리 잡고 앉는데, 주인과 손님이 모두 반가워라 한다. 부산에 오면 꼭 들리는 단골이란다. 여름이면 팥빙수를, 겨울이면 단팥죽을 한 그릇씩 시켜 먹는다고. 정통의 팥빙수 맛과 함께 추억의 맛, 인정의 맛을 곁들인 ‘광복동 팥빙수골목’은 우리 부산사람들의 시원한 성정과 달콤한 매력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뜨거운 삼복의 여름,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팥빙수 한 그릇’으로 건강한 나날을 보내는 것도 참 좋은 일이겠다.
- 작성자
- 최원준
- 작성일자
- 2016-07-2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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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8월호 통권 118호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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