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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602호 문화관광

가을 금정산을 걷다 그 깊고 그윽한 산을…

부산이야기 - 울긋불긋 단풍·은색 물결 억새 한창인 가을 금정산

내용

햇살이 부드럽게 세상을 비춘다. 깊은 가을을 재촉하듯 바람이 서늘하다. 범어사 일주도로를 타고 햇볕 좋은 금정산으로 들어선다. '만산홍엽(滿山紅葉)', 가을을 찾아 오르는 길이다.

가을 금정산은 '만산홍엽(滿山紅葉)'에 억새가 은색 물결을 이루고 있다(사진은 가을 금정산을 만끽하는 등산객들).

범어사 일주문 앞에 선다. 그 문 없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니, 범천을 떠받치고 선 금정산이, 활활∼다비(茶毘)의 계절을 알리듯 단풍으로 불이 붙는다. 이토록 무심한 듯하면서도 그새 조화로운 계절의 변화무쌍함이다.

범어사 경내로 들어선다. 층층나무, 피나무가 제 몸을 붉히고 서 있다. 가람이 편안하고 적요하다. 천왕문 옆의 백 년 넘은 늙은 소나무가 노스님처럼 끄덕끄덕 법단을 내려다보고, 나무 한 쪽 작은 가지 끝을 빌려, 박새 한 마리 염불을 한다. 범어사 계곡을 오른다. 초입부터 아름드리나무들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준다. 몇 발짝 들어서자 자연의 품에 안긴 듯 싱그럽고 알싸한 풀냄새, 나무향이 일시에 온 몸을 감싼다. 갑자기 새소리도 크고 풀벌레 소리도 쨍쨍하다.

주위 숲이 온통 계곡 물소리로 가득하다. 가을 숲은 하늘을 덮고 물길은 너덜사이를 명쾌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돌바다(암괴류)' 너덜을 밟고 계곡을 오른다. 돌계단은 끝없이 북문 쪽으로 오르고 금강암 다리 위에서 보는 너덜겅은 금샘(金井)으로 오르는 만어들 같다. 오호라! 하늘을 담고 있는 '금샘'으로 향하는 물고기 떼들. 수행하는 자리로 물길 거슬러 오르는 금 물고기가, 수미단을 오르듯 금정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숲은 더욱 깊어진다. 바람소리가 우수수∼소리를 낸다. 숲으로 들수록 그늘은 짙어지고 나뭇잎의 서걱임은 소란스럽다. 큰 수풀과 나무에 바람이 머문다고 했던가? 깊은 수풀 속에는 나무 서걱임이 예사롭지 않다. 원효암 쯤에 이르자 참나무 낙엽들이 쌓이며 바스락댄다. 낙엽을 밟으니 멀리서 산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가 청아하다. 갑작스레 적막감이 든다. 참나무 사이로 옅은 햇살이 비치고, 그 사이로 한적한 오솔길이 길게 끊길 듯 이어진다.

북문광장. 앞으로는 금정산의 주봉 고당봉이 서 있고, 그 뒤로 금정산성을 따라 동문, 남문으로 길게 이어지는 산성길이 나 있다. 주위로 억새평원이 펼쳐지고, 온 산이 억새물결로 일렁인다.

고당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금정산은 천구만별(千龜萬鼈)의 산이라 하여, 고당봉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있는 바윗돌들이, 천 마리 거북과 만 마리 자라의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산이다.

정상으로 향한다. 연신 흐르는 땀을 바람이 씻어주며 나무계단을 오른다. 계단마다 사색의 발자국들이 소복소복 쌓인다. 나무숲에 싸여 걷는 길은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산에 모든 것을 맡기면, 산이 주는 모든 생명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산 속에는 금슬 좋은 새들이 가을을 지저귀고, 다람쥐 두어 마리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다. 이처럼 낙엽이 비 내리듯 후드득 떨어진 자리에는, '가을'이란 계절이 둥지를 트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정상 부근, 암벽 속을 헤치고 길을 오른다. 바위 군데군데 소나무들이 매달려 세월의 흔적을 곱씹고 있다. 바위 사이로 나무숲과 하늘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치솟았다가 가라앉는다.

정상에서 내려와 다시 북문에서 성곽 길을 버리고 길을 걷다보면 가을바람에 물결치는 억새밭을 지나게 된다. 억새꽃이 역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순백의 억새벌이 바다처럼 펼쳐지며, 수 백 수 천 만의 홀씨들을 바람에 실어 떠나보낸다. 그들의 아름다운 길을 따라 가을을 배웅하고, 겨울을 마중한다.

어디를 가도 자유로운 그들의 영혼이 바람에 일렁인다. 온 산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그들의 흔들림에 벅차오르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억새꽃들은 바람에 제 몸들을 부비며 파도소리를 내고, 억새밭은 파도처럼 포말로 하얗게 부서진다. 그리하여 고운 백발로 남아 정결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남루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비워냄으로써 오롯이 담겨 있는 그들의 마지막이 경건하기조차 하다. 우수수∼나뭇잎이 흔들린다. 금정산 가을의 저물 무렵, 고즈넉하다. 멋모르는 산비둘기 한 마리 사람 인기척에 놀라 후드득 날아오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울창한 노송들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가을 하늘뿐이다.

※이 글의 전문은 부산시 대표 잡지 부산이야기(iyagi. busan.go.kr)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작성자
글·최원준/사진·문진우
작성일자
2013-11-0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60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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