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부산의 역사 그리고 인물
주경업 새 책 ‘부산학, 길 위에서 만나다’
- 내용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사 연구가이자 화가인 주경업(부산민학회 회장) 선생이 역사와 문화현장 체험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부산학, 길 위에서 만나다‘(부산민학회)는 주 회장이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부산학의 옛 문헌과 자료에 현장답사를 통해 기록한 자료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부산의 원로가 평생을 바쳐 헌신해온 향토사랑이 한 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책은 부산의 뿌리 찾기, 전쟁과 부산사람, 일본이 남기고 간 자취, 부산 속의 두 얼굴-왜관과 청관, 부산의 달동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어느 장 하나 버릴 것이 없지만 특히 전쟁과 부산사람, 일본이 남기고 간 자취는 옛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용두산 신사의 변천사는 눈길을 끈다. 초량왜관 시절 용두산을 중심으로 변재신사, 도하신사, 금도비라신사, 조비나신사와 용미산의 옥수신사 등 5개의 신사가 있었다. 이때 신사에 모셨던 제신은 안전한 항해 기원, 벼농사, 지혜와 관련된 기복신앙적 성격의 제신들이 중심을 이뤘다. 세월이 흐르면서 신사는 번성하지 못하고 쇠락했다. 1880년을 기점으로 재부 일본인들은 기부금을 거두고 일부 신사를 고치는 등 본격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용두산 신사는 일본의 한반도 진출과 밀접한 인물들을 섬기는 장이 됐다. 그 인물들은 고대 일본의 실질적 첫 천황, 조선 왜관 개설에 공을 세웠던 대마도주 등이었다. 이런 경향은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인 1896년부터 더 노골화됐다는 것. 한반도 진출이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당대 재부 일본인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
다섯째 마당 부산의 달동네는 최근 불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산의 달동네에는 안창마을, 아미동 일본인 묘지마을의 역사와 문화도 조명, 미처 알지 못했던 옛 동네의 역사를 통해 부산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안창마을은 1960년대만 해도 조용하고 공기 좋은 산골이었다. 마을주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1988년께. 1986년 아시안게임으로 관의 간섭이 느슨해지자 몇몇 사람들이 날림 집을 지었다. 관의 철거와 주민의 재건립 줄다리기 속에 집은 계속 만들어졌다. 호황을 맞은 신발공장 인력들이 대거 이곳에 입주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서민 주거지역으로 부상했다는 것.
마을의 역사뿐 아니라 마을을 풍서하게 만든 문화와 인물을 조명한 것도 눈길을 끈다. 지역, 문화, 인물까지 두루 아우른 품이 넉넉하다. (255-5424)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11-11-22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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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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