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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밤, 당신은 어디 계셨나요?

작고 도예가 토암 서타원 기리는 토암음악회… 국밥 한 그릇씩 나누며 환경·나눔 생각하는 자리

내용


지난 10월31일 저녁, 기장 대변 바닷가 언덕길에 있는 토암도자기공원에서는 아주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시월의 마지막 밤-제13회 토암음악회’입니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보기 위해 이날 2,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평소 조용하던 동리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교통경찰이 출동하고, 빨간 방향지시봉을 든 이들이 밀려드는 차량을 통제했습니다. 난리 벚꽃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사람과 차들로 북적였습니다.

해마다 10월 마지막 날 열리는 제13회 토암음악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10월31일 기장군 토암도자기공원에서 열렸다. 토암음악회는 작고한 도예가 토암 서타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열고 있는 음악회다.

사람들이 이리 몰려드는 것을 보니 분명 이름께나 있는 가수가 출연하나 봅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대변항에 닿았건만 북적이는 인파를 보니 음악회에 대한 기대가 슬며시 생깁니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토암도자기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정갈하게 가꾼 앞마당에는 못생겼지만 정겨운 표정의 흙인형(토우)들이 조그만 입을 활짝 벌리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귀가 없습니다.

노래하는 못생긴 흙인형, 6년 전 세상을 떠난 도예가 토암 서타원 선생의 작품입니다. 토암도자기공원은 토암 선생이 생의 마지막을 보내며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토우 작업을 했던 곳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장인이 혼신의 열정으로 빚은 흙인형들은 앙증맞은 입술로 객을 맞이합니다. 귀 없는 흙인형은, 세상의 혼탁한 소음일랑 듣지 말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살라는 뜻으로 귀 없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흙인형을 빚으며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숨 가쁘게 건너갔을 한 인간의 순정한 마음에 콧등이 찡해옵니다.

월요일 밤에 여린 음악회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이들로 음악회는 성황을 이뤘다.

토암 선생은 생전에 따르는 이들이 퍽 많았던 작가였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과 어려운 사람을 돌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함께 지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작가의 품이 넓고 따스했기 때문일까요? 2000여 개의 흙인형들이 쏟아내는 합창 소리에 귀는 맑아지고, 눈이 크게 떠졌습니다. 활짝 열린 동공으로 토암도자기공원을 둘러보니, 세상에 ‘난리 벚꽃장’입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입니다. 어디서 이리 많은 사람들이 왔는지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음악회를 찾아온 손님들에게는 국밥을 한 그릇씩 대접한다. 국밥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오래 기다려도 불평하는 이 한 사람 없었다.

시골 어촌마을에서 열린 공짜 음악회는 이곳의 옛 주인을 위로하기 위한 벗들의 지극한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두 번의 암 발병으로 바깥출입도 하지 못하고 힘든 투병생활을 하는 토암 선생을 위로하기 위해 가까운 지인들이 한 두 사람씩 찾아와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러다 그의 사후에 선생의 유지를 기리는 토암기념사업회(명예회장 최현돌)가 꾸려지고, 그를 그리워하는 예술인들의 참여가 늘면서 규모가 커졌습니다.

여기에 유가족들의 애끊은 사부곡(思夫曲·思父曲)도 힘을 보탰습니다. 다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지아비와 에비를 그리워하던 부인 방경자 여사와 아들 서양현 씨가 음악회를 돕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유족들은 음악회를 찾는 이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 에비를 기리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자 한 것이지요. 그러기를 몇 년, 입소문을 타고 음악회를 찾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면서 가정식 상차림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지난해부터는 국밥을 끓여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무려 국밥 1,500그릇을 끓였다고 하니, 조그만 동네에서 열리는 소박한 음악회가 얼마나 인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토암음악회의 매력은 탁 트인 야외에서 음악회와 잔치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 음악회를 찾은 이들이 국밥을 먹으려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음악회를 감상하고 있다.

어촌마을에서 열린 소박한 음악회에는 유명한 음악가나 가수는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멀리 남천동과 영도에서도 음악회를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미어터졌습니다. 같은 부산이라지만 한 두 시간의 노고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이들이 동네 어머니합창단(기장군해송합창단)과 어린이리코더연주단(기장청소년리코더합주단)의 연주를 듣기 위해 오지는 않았겠지요? 물론 어머니들의 노래솜씨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소박했으며, 기장군 어린이들의 리코더 솜씨는 한 땀 한 땀 긴장한 품새에서 어린아이다운 해맑음이 넘쳐나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음악회인데 아마추어만 나설 수 있나요? 공연의 틈새는 전문 음악인이 나서서 채웠습니다. 테너 허동권, 팝페라 가수 손영희, 원로가수 김용만 씨 등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모두 대단한 실력을 갖춘 음악인들입니다. 테너 허동권의 힘찬 목소리와 팝페라 가수 손영희의 매혹적인 고음이 맑고 청아한 가을 밤하늘에 퍼지면서 음악회 분위기는 무르익었습니다.

토암 서타원 선생의 대표작인 토우. 세상의 혼탁한 소리는 아예 듣지도 말라며 귀를 만들지 않은 못생긴 흙인형들도 소리없는 합창으로 음악회에 힘을 보냈다.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월의 마지막 밤, 토암도자기공원 앞마당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걸리고, 큼직큼직하게 무를 썰어 넣고 시원한 콩나물을 듬뿍 넣은 쇠고기 국밥이 한 솥 가득 끓었습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이들은 누구라도 국밥 한 그릇을 대접받았습니다. 국밥은 평등하게 나뉘었습니다.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굴지의 은행장도, 10·26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새내기 구청장도, 멀리 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이주노동자도 평등하게 줄을 서서 국밥을 받아 들었습니다. 국밥을 배식받기 위한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불평하는 이 한 명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먹으며, 한 사람을 추억했습니다. 살아생전 세상의 한갓진 것들을 깊게 보듬었다는 사람,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생명의 마지막 종착지인 흙과 환경을 깊이 생각했다는 온화한 미소의 도예가를 그리워한 것입니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 품었던 그리움을 풀어낸 음악회를 마치고, 뚜벅뚜벅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시 한편을 떠올렸습니다.

아주 우연히 보게 된 시입니다.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시인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시 한 편을 애써 새겨둔 것은 시에 담긴 절절함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은 옛 사랑과의 이별이 얼마나 사무치게 아팠으면 혁명과도 같다고 말한 것일까요?

대변항이 내려다보이는 토암도자기공원에서 이승을 떠난 지아비와 벗을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크고 지독하면 이런 판을 벌일 수 있는지 자문자답해 보았습니다. 알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아닐진대 어찌 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흐린 초승달이 떠있었습니다. 토암도자기공원 아궁이에 걸어둔 무쇠솥에는 쇠고기 국밥이 절절 끓고 있었습니다. 아궁이 불은 쉬이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11-11-0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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