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오려붙여 영롱한 예술작품으로…
나전장 이 진 호
- 내용
한 땀 한 땀 수를 놓습니다. 그가 놓는 수는 결 고운 명주실이 아닙니다. 비단을 짜는 손놀림도 아닙니다. 투박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전복껍데기, 이것을 갈고, 쪼고, 문질러 오색 광채가 영롱한 자개를 뽑아 수를 놓는 것입니다.
각질 투성이의 하잘것없는 전복껍데기, 프리즘과 같은 색광현상은 오직 전복에서만 나옵니다. 전복껍데기는 제멋대로 갈라지고 쪼개지는데요. 갈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몇 겹으로 일어납니다. 이것이 전복껍데기의 본래 성질입니다. 쪼개지고 갈라질수록 더욱 강한 빛을 내는 자개. 그런 성질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서 꽃이 되고, 봉황이 되어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는 보석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부산의 나전장 이진호(53) 씨. 그는 400여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통영 나전칠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킵니다. 자개와 옻칠, 나무 혼을 아우르는 우리 전통공예품이지요. 30여 년 전 부산사람이 됐지만, 그는 본디 통영 출신입니다. 어린 시절 나전의 광채에 마음을 빼앗겼고, 찢어지게 어렵던 시절, 간절한 호구지책으로 배우게 된 자개 일이 이제는 천직이요, 자신만의 예술세계가 됐습니다.
사실, 나전칠기는 벌써 한 물 갔습니다. 자개장 하나쯤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야 번듯한 살림살이의 체면이 서던 시절은 사라진지 오래죠. 뒷방이라도 차지하고 있다면 다행, 최신 아파트로 이사 들면서 붙박이장에 자리를 내주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자개장롱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 씨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자개를 박습니다. 다시금 자개의 화려한 르네상스를 꿈꿉니다. 오히려 나전칠기의 쇠락 속에서 그의 나전 작품은 더 빛을 발합니다.
작품은 남다릅니다. 서양화나 동양화 그림처럼 벽에 걸어두고 감상할 수 있는 액자 작품에서부터 교자상, 찻상, 꽃병, 소파용 테이블, 병풍, 가리개, 좌탁까지 실용성을 갖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듭니다. 더 이상 자개농은 만들지 않습니다. 자개농에서 손을 뗀지는 20여년.
나전장 이진호“자개의 매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옻칠(칠기)은 천년, 자개(나전)는 수천년 동안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두고두고 감상하고, 두고두고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광채 나고 세련된 예술품이지요.”
부산 수영구 망미1동 후미진 주택가에 그의 작업장 ‘정영(精永)공방’이 있습니다. ‘정영’은 정성스런 마음으로 영원히 만든다는 뜻을 담아 자신이 지은 이름입니다. 치열한 장인정신이 이 ‘정영’이란 단어에 녹아 있죠.
그는 지난 3일부터 2월2일까지 한달간 부산 해운대구 중동 피카소화랑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그의 작품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2003년 해운대 그랜드호텔 개인전을 비롯해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 특별초대전을 2차례나 가졌고, 서면 롯데호텔 로비전을 4차례나 열었습니다. 청담동 카이스갤러리 홍콩 초대전, 국제아트페어, 세종호텔, 아리엘갤러리, 몽마르트 등에서도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크고 작은 개인전만 20여 차례를 헤아립니다. 부산에서 나전칠기로 전시회를 여는 사람은 그가 유일합니다.
“나전칠기는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 밖에 자태를 드러내야 제대로 평가를 받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호텔 로비에서 초대전을 여니까 사람들이 몰려들더라고요. 외국인들이 더 감탄을 합니다. 나전칠기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지요. 옛날 자개농이나 만들고, 수리해주던 수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내니까 새삼 자개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그는 혼신을 다한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 4차례 입상했고, 부산미술대전에서 9차례 상을 받았습니다. 전국예술문화대전, 신미술대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수차례 차지했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남 통영시 정량동. 나전칠기의 본고장입니다. 어릴 때부터 공방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한집 건너 나전칠기 공방이었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자개에 입문했는데요. 어릴 때부터 보아온 자개 광채가 발길을 끌었지요. 당장의 호구지책으로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적성에 맞고, 호기심이 당겨 일을 택했다고는 하나 결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 자체가 고된 노동이었고, 제대로 배우기까지 오랜 숙련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반대했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한번 시작했다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중간에 그만둔다는 것이 영 마뜩찮았죠.
통영에서의 공방생활을 시작으로 부산 서울 대구 경기 등 전국을 떠돌며 나전 기술을 익혔습니다. 공방에서 재워주고 먹여주며 월급까지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러 경험을 쌓은 뒤 부산 서구 괴정동 황의용 공방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사사했습니다. 힘든 과정 속에서 숙련의 단계를 넘어서고 나니 문득 자신만의 자개가 보이기 시작했지요. 마침내 독립할 꿈을 키워 부산 망미동에 공방을 열고, 세상과의 소통에 나섰습니다. 17년 전의 일입니다.
“자개는 100% 수작업입니다. 작품 구상이야 머리로 한다지만, 그 다음에는 일일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어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습니다.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하루 몇 시간 작업하느냐에 따라, 어떤 작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대략적인 작업시간을 따질 수는 있어도,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 8시간 작업을 기준으로 대작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전칠기는 자개와 나무, 옻칠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작공정은 인고의 과정이며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우선 홍송, 미송, 느티나무, 오동나무 등이나 고급합판을 원료로 백골(白骨, 틀)을 짭니다. 백골의 나무표면을 정교하게 고르는 사포질을 한 뒤 생칠을 바릅니다. 생칠을 24시간 정도 말려 칠죽으로 나무 틈이나 나무 눈 메우기를 하구요. 그 후 연마, 옻칠, 광내기 같은 작업을 거쳐 자개를 수놓을 밑바탕을 마련합니다. 서양화의 캔버스 같은 것입니다. 본격적인 자개작업은 이때부터입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자개를 잘라 회화적인 문양을 붙여 나갑니다. 자개를 오리고 따내야 하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문양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은 크게 3가지. 자개를 머리카락처럼 잘게 잘라 원하는 문양대로 칼로 끊어 붙이는 끊음질, 자개를 실톱이나 줄로 갈고 오려가며 세공해서 붙이는 줄음질, 칼로 쪼아가며 원하는 기하학적 형태로 붙이는 타박 기법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 3가지 기법을 적절하게 응용합니다. 이 씨의 손을 거친 자개는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잔물결 일렁이는 연못이 됩니다. 매화꽃이 피고 서걱이는 댓잎으로 살아납니다. 전복껍데기에 불과하던 자개가 그의 손길을 따라 끊어지고 붙여지면서 온갖 그림으로 피어나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나전칠기는 실용의 예술입니다. 쓰임새를 잃어버리고 쳐다보는 것에만 그치다보니 퇴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생활 속에서 온전히 제 역할을 하면서 감상도 하는 나전칠기를 만듭니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교자상이나 찻상 등이 그런 것입니다. 자개액자도 좋고 병풍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해 나전칠기와 세상의 소통을 이뤄 나갈 생각입니다.”
이 씨는 장차 부산이나 고향 통영에 제대로 된 전시장 하나를 갖는 것이 꿈입니다. 그 꿈을 좇아 그는 오늘도 옻칠의 검은 바탕을 캔버스 삼아 자개를 문지르고 칼질하며 자개그림을 그려나갑니다. 우직한 장인의 열정이 죽어가던 나전칠기를 다시 살려내고 있습니다.
- 작성자
- 박재관
- 작성일자
- 2011-01-07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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