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세상 비추는 거울
극장·연출가 김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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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전국 각지에서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 외젠 이오네스코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오네스크는 일상극에서부터 이미지극, 오브제연극, 무용연극 등에 이르기까지 연극의 탈장르화를 시도하고 부조리극이라는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인데요.
부산에서는 그의 작품 ‘아수라장(Ce Formidable Bordel!)’을 새롭게 각색한 “지금...여기!” 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부산의 젊은 극작·연출가 김지용(34)씨가 새롭게 조명한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문예부 활동을 하며 시인을 꿈꾸던 김지용 작가는 대학 때 호기심으로 찾아간 ‘극예술연구회’ 동아리에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실존주의 작품과 민중시 등을 즐겨 읽던 그는 “내가 이렇게 쓴 글이 세상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합니다.
힘 없는 시를 쓰기보단 “뭔가를 세상에 말하고 싶었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졸업 후에도 연극계에 몸담을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김 작가는 “그저 글 쓰고 각색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좋았다”라고 말했죠. 그는 페스트(A.까뮈작품)로 2002년 제1회 부산대학연극제 대상, 연출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 본 부산시립극단의 박찬영 씨와 고 홍성모(연출가)씨의 권유로 2004년 극단 바문사(바다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들어가 ‘비언소’를 연출하기도 했구요.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한 ‘PLAY1-Oasis’가 제23회 부산연극제에서 희곡상과 우수여자연기상, 그리고 신인남자연기상을 수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어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PLAY4-가출소녀 우주 여행기), 제24회 부산연극제 최우수작품상, 희곡상, 연출상(PLAY5-Mankind history), 같은 작품으로 제24회 전국연극제 금상 수상,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당선(그 섬에서의 생존방식) 등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작년에는 부산 젊은 예술인상을 수상했고 그의 작품 ‘봄 작가, 겨울무대’는 2009 아르코 예술극장 챌린지 프로그램에 선정됐습니다. 지난 4월 막을 내린 제28회 부산연극제에서는 ‘The solar system’으로 연출상을 받았기도 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연극 공부도 병행해 올 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석사과정을 마쳤다네요.
외동으로 유복하게 자란 그였지만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김 작가는 “‘해야 할 것은 꼭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제가 철이 든 아들이었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해서 부모님께 도움을 드렸겠지요. 철이 없어 연극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라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연극에 발을 들였고 지금은 그 길을 계속 가고 있습니다. 김 작가는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연극과 경제학이 연관이 있냐는 물음에 적성에 잘 안 맞던 경제학이 작품을 쓸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들려주네요. 경제학 역시 사회를 들여다보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김 작가는 연극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은 그런 면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쓸 때, 로맨스와 낭만적인 요소보다 세상을 보다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하네요. 매 작품마다 만족은 없다는 김 작가. 한 작품을 위해서는 작가와 연출가의 애정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인데요. 최선을 다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끝나고 나면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든다고 합니다. 작품을 쓰고 연출하는 두 가지 몫을 하는 김 작가의 고충은 두 배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연극은 그가 가장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로 자리했죠.
김 작가는 부산에서 만든 연극의 작품성이 다른 지역의 작품들에 비해 뒤쳐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수도권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연극을 자주 접해 매니아들이 형성돼 있는 반면, 부산은 자연스럽게 연극을 보러가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요.
“야구시즌이나 영화제를 생각하면 부산사람들도 충분히 연극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잘 만드는 기획력과 문화적 마인드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부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연극에 몸담은 사람들이 연극생활을 통해 먹고 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지원 기금과 후원 등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가 참 힘들지요.
최근 이런 젊은 예술인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부산 광복동에 또까또까(문화창작공간)가 들어선 것.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을 받아준 첫 예술공간이라며 부산에 이런 곳이 많이 생겨나고 연극배우들이 연습할 공간들도 생겨나길 기대합니다. 그러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극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연극을 좋아서 하는 사람들을 말릴 수 없고, 무엇보다 모든 무대예술장르의 기초가 되는 희곡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4년부터 10작이 넘는 작품을 쓰고 무대에 올린 그는 뮤지컬과 연계한 작품 Play 시리즈로도 괜객들로부터 호응을 받았고 “지금...여기!(Ce Formidable Bordel!)”의 경우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오네스크의 작품을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다시 쓴 것과 마찬가지였지요. 대사보다는 신체를 많이 이용해 의미를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을 보면 상업적인 면과는 거리가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상업연극의 주류인 로맨틱 코미디를 하려면 섬세하고 여성적인 감각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는 “조명이나 음악 등 공연 전반적인 면면은 잘 챙기지만 분장이나 의상 등을 챙기는 일에는 부족하다”고 말하는데요. 그렇다고 작품이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랍니다. 김 작가의 작품은 무거운 주제를 항상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평인데요.
그는 “예전에는 사회의 부조리, 잘못된 점, 어두운 면을 부각하고 표현하려 애썼어요. 항상 단호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던 제 자신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들려줍니다. 박상현 극작가가 “싸우지 마라, 연애하듯 글을 써라” 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하네요.
연극을 제대로 하려면 추한 것도 알아야 하지만 삶의 아름다운 면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글을 쓰고 연극을 만드는 연출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세상을 잘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멋진 그의 PLAY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 작성자
- 박혜빈
- 작성일자
- 2010-12-1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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