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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601호 문화관광

사포지향의 가마솥은 지금도 '펄펄'

재미있는 부산 함께 걸어요 ① 온천도시 부산

내용

바다를 품고 강이 흐르며, 산이 도시를 감싸안고, 온천의 숨결이 이어지는 곳, 부산. '사포지향(四浦之鄕)'의 도시 부산은 바다 산 강 온천이 공존하는 지리적 조건 속에서 역사가 쌓여왔다.

부산시보 '부산이라 좋다'는 사포지향을 중심으로 '재미있는 도시 부산'을 조명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온천의 고향'이다. 수천년 전부터 펄펄 끓으며 부산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준 부산 온천을 즐겨보자.


16-2 스파윤슬길
△스파윤슬길. 


사포(四抱) 부산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길고 깊다


동래스파시티, 스파 윤슬길, 동래온천 노천족욕탕…. 스파(spa)는 온천. 지금 걷는 거리에선 엔간하면 온천이다. 행정 지명도 온천, 도시철도 역명도 온천이다. 상점이든 식당이든 상호에 온천이 들어가는 가게도 수두룩하다.

녹천탕, 금천파크온천, 벽초온천…. 거리 이쪽저쪽 목욕탕 역시 엔간하면 온천을 내세운다. 온천수는 뜨거운 지하수. 열을 가해서 뜨거워진 물이 아니라 원래 뜨거운 지하수다. 원래 뜨거운 물, 원래 온천수를 쓰는 목욕탕은 간판 마크부터 동네 목욕탕과 다르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18-1 허심청_선남탕 사진제공 호텔농심
△동래온천의 대표격인 허심청. 


천년의 신비 동래온천


육교 홍보판 문구도 온천이다. 그것도 ‘천년 온천’이다. 육교 있는 곳은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3번 출구. 3번 출구에서 육교를 건너면 온천시장이 나오고 그 너머가 동래스파시티며 스파 윤슬길이며 노천족욕탕이다. 이 일대는 온천1동. 하나에서 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일대는 엔간하면 온천이고 엔간하면 천년이다.


온천1동 행정복지센터는 한술 더 뜬다. 복지센터 입구부터 온천 홍보에 '진심'이다. 톡톡 튀는 홍보 문구는 100점 만점에 120점이다. '온천은 보글보글, 열정은 부글부글, 사람은 바글바글.'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탕이 동래온천이라고도 치켜세운다. 저렇게 치켜세우니 온천은 더 보글대고 사람은 더 바글댄다.


재미있는 부산,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때밀이 수건을 한국에서 처음 만든 데가 동래온천을 품은 부산이다. 그때가 1967년. 이탈리아 수입 원단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이태리 타올’이라 했다. 비닐 포장지 선전 문구는 1960년대 아날로그 티가 폴폴 난다. ‘힘 안 들이고 때 벗기는’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최고의 신혼여행지, 가장 가고 싶은 관광지가 동래온천이었다. 전통적 사우나와 현대적 목욕탕을 결합한 복합 레저시설도 일찍부터 발달했다. 한국 찜질방 원조라고 봐도 무방하다. 


16-1메인
△동래노천족탕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 모습. 


‘천년 온천’은 어떻게 발견됐을까. 어떻게 발견되고 어떻게 알려졌을까. 전설이 전한다. 백록(白鹿) 전설과 백학(白鶴) 전설이다. 자세한 전말은 ‘동래온천소지(小誌)’에 나온다. 허심청 전신 동래관광호텔에서 1991년 펴낸 소책자다. 허심청은 1907년 온천 휴양시설로 지은 봉래관 자리에 들어섰다. 흰 사슴 백록과 백학 전설 요지다.       


며칠이나 눈이 내려 온통 하얀 들판. 금정산 숲속에서 나타난 흰 사슴이 들판 한 군데 몸을 눕혔다. 밤을 새우고는 새벽에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날이 저물면 그곳을 또 찾았다. 그러기를 며칠. 눈이 그치자 사람들은 사슴 머물던 자리를 찾아갔다. 눈 내린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었고 마른 풀잎 사이에서 새싹이 파릇파릇 났다. 주변을 살피니 샘처럼 둥글게 파인 땅에서 뜨거운 물이 솟구쳤다. 동래 온천의 발견이었다. - 백록 전설


지금부터 천년도 더 전인 신라 때 일. 홀로 살며 악성 관절염을 앓는 딱한 노파가 있었다. 하루는 금정마을 가까운 늪지대로 나갔다. 그때 백학이 늪지대 저쪽에 내려앉았다. 곧장 쓰러질 듯 다리 하나를 절룩댔다. 이튿날도 사흘째 날도 백학은 늪지대 그 자리에 있었다. 노파가 다가가니 백학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다리는 다 나아 보였다. 백학 자리엔 물이 끓어올랐다. 그 물에 며칠 다리를 담그자 관절염이 나았다. 소문이 났다. 부스럼 환자도 피부병 환자도 말끔히 나았다. - 백학 전설   


그나저나 천년의 근거는 뭘까. 그냥 하는 말일까, 말 그대로 천년일까. ‘동래온천소지’, 그리고 부산근대역사관이 펴낸 ‘동래온천’ 책자에 해답이 있다. 동래온천을 처음 기록한 역사책은 ‘삼국유사’. 고구려·백제·신라 역사와 설화를 담아 1281년과 1283년 무렵 펴낸 이 책에 동래 온천이 처음 나온다. 신라 재상 충원공이 682년 목욕했단다. 


동래란 지명이 생긴 지는 이보다 75년 뒤인 757년. '동쪽의 내산'이라서 동래(東萊)였다. 내산은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蓬萊山)을 줄인 말. 동래, 내산, 봉산을 같은 말로 썼다. 682년이든 757년이든 어쨌거나 천년이 훨씬 넘는다. 그 옛날 동래 사람, 부산 사람은 어질고 겸손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천년이 훨씬 넘어도 이천 년이 되지 않으면 “천년, 천년” 그랬다. 그래서 지금도 '천년 동래'고 '천년 온천'이다. 아무리 겸손하고 아무리 낮추어도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탕이란 역사적 진실은 영구불변이다.      


18-3용각
△온정개건비를 보관하고 있는 용각. 


이쯤에서 질문 하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국민 속담. 모르는 국민 별로 없을 이 속담은 맞는 걸까, 틀린 걸까. 정답은 ‘틀렸다’다. 빈대 잡으려다 태운 게 아니고 빈대 잡으려고 태웠다. 몇 년 전 극성을 부리는 빈대에 속수무책 당했듯 옛날에는 더 속수무책 당했다. 최대한 견디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 빈대 득시글대는 집을 태우고 절을 태웠다. 인터넷 검색하면 관련 사실이 꽤 뜬다. 코로나19 당시 공공의료를 경험했다. 집을 태우고 절을 태우는 고육지책은 빈대 확산을 막으려는 그 시대 공공의료였다.


온천 목욕탕 역시 조선시대 공공의료였다. 아무나 아무 때나 가서 때 미는 남탕·여탕이 아니라 몸 아픈 병자가 지병을 다스리는 공공의료의 현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동래읍 등등 공공이 운영하는 공중목욕탕으로 나아갔지만 1481년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병자들이 목욕하면 바로 나아’라는 기록을 비롯해 동래온천에 30일 머물면서 신병을 치료한 한강(寒岡) 정구 선생의 욕행(浴行) 행장을 담은 1617년 ‘한강봉산욕행록’, 1740년 편찬한 부산의 백서 ‘동래부지’ 같은 조선시대 고문헌은 동래온천이 병자를 위한 공공재였음을 가늠하게 한다. 

  

조선시대 옛날 비석 온정개건비


온정(溫井)은 온천의 조선시대 표현이다. 기존 온정이 낡아서 새로 세운 개건(改建)의 과정을 새긴 온정개건비 비석 역시 동래온천이 단순한 온천이 아니라 공공의료였음을 입증한다. 비석은 노천족욕탕 오른편의 고색창연한 용각(龍閣) 안뜰에 있다. 온정을 개건한 1766년 세웠으며 동래부사가 개건 공사에 기울인 공덕을 구구절절 새겼다. 


18-4 온정개건비
△온정개건비.


동래부사는 요즘으로 치면 부산광역시장. 광역시장이 직접 나섰다는 것은 온정이 공공재였다는 방증이며 온천욕이 공공의료였다는 방증이다. 비석 바로 앞에는 화강암을 깎아서 만든 조선시대 석조 욕탕이 하나 있다. 남탕으로 전한다. 여탕도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관공서를 지으면서 주춧돌로 빼갔다고 한다. 


동래온천과 전차는 동일체였다. 일제가 조선에서 득세하면서 동래온천은 상업화됐다. 목욕객 운송 목적으로 부산 시내에서 동래 온천장까지 전차가 다녔다. 전차 시절을 기념해 온천장 두 곳에 모형 전차를 전시했으며 도로변에는 온천장 전차거리를 내었다. 

16-4 온천장 전차거리
△온천장 전차거리. 


전차 종점 자리는 처음엔 온천천 저쪽이었다. 온천천 다리가 목교에서 철교로 바뀌면서 1927년부터는 온천천 이쪽이었다. 거기가 지금 부산은행 온천동 지점이다. 지점 입구는 모형 전차와 ‘전차 종점 터’ 안내판, 담배 곰방대를 든 할아버지상이 이채롭다. 할아버지상 양쪽 눈에는 전구가 있어서 밤이면 종점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온천장 전차거리. 시내버스 다니는 도로변의 전차거리엔 여러 조형물과 모형 전차가 시선을 끈다. 부산은행과 온천장 소방서삼거리 중간쯤 있다. 모형이긴 해도 전차 실내는 온천장 연대기, 전차 노선도 등 재미가 쏠쏠하다. 진짜 실물 전차는 서구 부민동 동아대 캠퍼스에서 볼 수 있다.      


18-7 해운대온천족욕탕 정면
18-8 해운대온천족욕탕에서 족욕을 즐기는 부산시민들
△해운대해수욕장의 해운대온천족욕탕. 


부산은 한국 최초의 온천 도시. 명성에 걸맞게 부산엔 온천이 또 있다. 해운대온천이다. 신라 여왕 천연두를 낫게 했다는 최상급 명품 온천이다. 지금도 최상급이다. 신라 그 여왕에게 ‘시무십조(時務十條)’ 등 사회 대개혁을 진언했던 최치원의 호가 해운이고 해운대 지명이 거기서 비롯했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면 부산에는 신라 숨결이 꽤 스몄다. 영도 태종대는 신라 태종 무열왕이 다녀갔다고 그러고 기장 오랑대는 신라 다섯 화랑이 다녀갔다고 그런다. 천년 국가 신라가 ‘최애’한 명품 중의 명품, 온천 중의 온천이 해운대온천이다.        


부산은 재미있는 도시. 모르고 봐도 재미있으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부산의 바다와 산, 강과 온천 이른바 사포(四抱) 그 모두에 스며들고 녹아든 부산 이야기는 대학노트 열 권을 채우고도 남는다. 다 들으려면 열 밤, 열 낮도 모자란다. 그 옛날 그때도, 우리 사는 이때도 부산 이야기, 부산의 속내는 끝이 없다. 끝도 없이 길고 깊다. 


글·동길산 시인

작성자
조현경
작성일자
2026-01-2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601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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