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202512호 문화관광

미로마다 골목마다 ‘가장 부산다운 맛’ 숨어 있다

미식도시 부산 ‘맛 따라 길 따라’ ③ 부산 원도심 맛길

내용

부평깡통야시장·BIFF광장·보수동책방골목···국제시장으로 가는 3가지 길


부산의 큰 시장은 둘로 나뉜다. 조선시대 시장과 그 이후 시장이다. 조선시대 시장은 닷새마다 장이 서는 오일장이었다. 동래와 수영, 부산진, 하단, 구포에 섰다. 옛날 시장은 열에 아홉 관공서나 군부대를 꼈다. 싸움, 도둑, 소매치기 등등 불상사가 생기면 사태 해결이 빨랐다. 군졸이 득달같이 달려와 “네 이놈!” 육모방망이를 휘둘렀다. 


국제시장은 6·25 전쟁 시장이다. 생기기는 1945년 광복 직후지만 1950년 전쟁 피란민이 몰리고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제곱의 제곱 속도로 급성장했다. 그러기에 6·25 전쟁 시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국제시장 1세대 상인은 이북 피란민이 많았다. 1세대가 건재하던 1970년대, 80년대 그때까지만 해도 함경도며 평안도, 황해도 이북 억양이 드셌다.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어떻게 쓸까. 제곱의 제곱 속도로 급성장한 국제시장 글을 청탁받으면 어떻게 쓸까 궁리한 적이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군더더기 없이 가게 상호만 적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것만 적어도 신문 한 면이 넘칠 것 같았다. 생각을 바꾸었다. 품목만 적는 거로. 그마저도 난감했다. 그 또한 신문 한 면의 절반은 채울 테니.


18-19
△부산 원도심의 상징인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 전경. 


미로마다 넘쳐나는 맛집과 먹거리


국제시장의 맛을 쓰는 지금. 먹거리로 국한해도 그렇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리 갈라지고 저리 이어지는 미로마다 골목마다 가장 부산다운 맛집과 가장 부산다운 먹거리. 보기만 하며 지나치는데도 하루가 짧을 것 같고 줄인다고 줄여도 한나절은 걸릴 것 같다. 저 많은 맛집을, 저 많은 먹거리를 어찌 다 글로 쓰나. 


20-2
△부평깡통시장. 


국제시장은 도떼기시장이다. 도떼기는 일본말 같아도 순우리말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여러 종류의 물건을 시끄럽고 어수선하게 사고파는 일’이라고 풀이한다. 인산인해와 산더미 상품과 난전, 이른바 문전성시가 도떼기시장 요건이다. 조선시대 또는 그 이후 생긴 부산의 많은 전통시장이 문전성시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문전성시, 가장 도떼기가 국제시장이다.


국제시장에는 국제시장만 있는 게 아니다. 부평깡통시장도 있다. 둘은 엄연히 다르다. 국제시장은 중구 신창동에 있고 깡통시장은 부평동에 있다. 그렇긴 해도 부산 토박이 대부분은 두 시장을 같은 시장으로 인식한다. 있는 동네는 달라도 거기가 거기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본다. “국제시장 간다” 그러면 부평깡통시장은 으레 포함된다. 그런데 야시장만큼은 다르다. 반드시 부평을 붙인다. “부평깡통야시장, 부평깡통야시장” 그런다. 


20-7
20-6
△부평깡통야시장의 다채로운 먹거리들. 


한국 최초의 상설 야시장


“일곱 시 반부터 열한 시 반까지요.”


부평깡통시장 튀김집 주인은 손놀림만큼이나 말이 빠르다. 한 손으로 명태전을 꾹꾹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명태전을 먹기 편하도록 연신 잘라내면서도 묻는 말에 술술술 대답한다. 야시장 개장은 저녁 일곱 시 반부터 하루 네 시간. 2013년 들어선 한국 최초의 상설 야시장이라서 이름값을 한다. 국제시장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 부산의 한 상징이다. 


국제시장은 어떻게 갈까. 국제시장 가는 길은 부평깡통시장 가는 길과 겹친다. 부산을 대표하는 두 시장으로 가는 길이 한둘일 수 없다. 갈래갈래 수십 갈래다. 수십 갈래 길을 뭉뚱그리고 뭉뚱그려 셋으로 좁힐 수는 있다. 국제시장을 온전히 알려면 이 모두를 다녀봐야 한다. 


국제시장 가는 첫째 길은 남포동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광장 비프(BIFF) 또는 도시철도 자갈치역 3번이나 7번 출구에서 길을 잡으면 된다. 부산국제영화제 출발지 비프는 비프대로, 한국 수산물시장의 메카 자갈치는 자갈치대로 스토리 곳간. 하지만 국제시장 갈 때만큼은 다음으로 미루자. 국제시장 미로며 골목만 다녀도 하루가 짧고 한 달이 짧다.


20-4
20-5
△남포동 Biff광장과 씨앗호떡. 


둘째 길의 시작은 광복동. 저리 가면 용두산공원으로 이어지고 바로 가면 먹자골목이 나오는 거기다. 연말연시 빛의 축제가 열리는 거기서부터 할매국수며 고갈비며 원산냉면이며 종각우동이며 국제시장 가는 길에서 만나는 추억의 맛집들은 간판만 쳐다봐도 한 생애 가장 좋은 시절을 떠올린다. 아무리 나이들어도 아무리 무뎌져도 누구든 가장 좋은 시절로 돌아가는 회춘의 길이 여기다. 

20-3

△광복로 겨울빛 트리축제 모습. 지난 12월 5일 개막했다. 
 

20-9

△직장인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던 고갈비. 


20-8
△국제시장 대표 먹거리 유부주머니. 


셋째 길은 생뚱맞다. 사정을 잘 모르는 외지인은 “거기가 왜?” 수긍하기 어렵겠다. 일단 길부터 안내하자. 시작은 부산터널. 중구 영주동과 서구 대신동을 이어서 영신터널로 불렀다가 다시 영주터널로 불렀다가 지금은 부산터널로 부른다. 부산 최초 터널이란 의미를 담았다. 부산역 맞은편 어디쯤 있다. 


1961년 개통식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테이프를 끊었다. 부산터널 진입하기 직전 왼편 오르막길은 영선고개. 고개 너머에 국제시장이 있다. 중구청과 메리놀병원, 보수동 헌책방골목이 도중에 나온다.


20-1
△부산시민의 추억이 숨쉬는 보수동책방골목. 


헌책방골목과 메리놀병원은 국제시장이 그렇듯 6·25 전쟁에 기반을 둔다. 부산 원도심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피란민들이 짐보따리 고서와 귀한 서적을 풀면서, 그리고 미군 부대 영문 서적과 잡지가 쏟아지면서 발아했다. 헌책방을 찾는 식자층과 학생층이 늘어나고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보수동은 부산을 대표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헌책방골목으로 나아갔다. 


메리놀병원은 전쟁 두 달 전인 1950년 4월 미국 메리놀수녀회가 세웠다. 전쟁을 예측하고 세운 병원은 아니었지만 서면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과 함께 6·25 전쟁 내내 그리고 그 이후에도 박애를 실천했다. 영선고개는 유엔군이 부산 최초로 포장한 도로. 부상자 수송 목적도 컸지만 산동네 찾아다니며 지역민 치료에 ‘진심’인 수녀님을 배려한 포장이었다. 유엔도로, 유엔고개라 했다. 


국제시장은 시장 이상의 시장


국제시장은 뭘까. 겉만 보면 시장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시장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극한에 내몰린 피란민이 오늘 여기를 딛고 내일 저기로 나아간 인간 승리의 현장이며 그 극한에서도 헌책으로나마 지식을 채워나갔던 모색의 현장이며 백의의 천사가 경계 없는 인술을 펼쳤던 박애의 현장이었다. 국제시장 가는 길 역시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울다가 웃다가 눈물 콧물 범벅 인간 승리의 길이며 모색의 길, 박애의 길이었다.


국제시장 대표 먹거리를 하나만! 언젠가 받은 질문이다. 하늘만큼 땅만큼 많은 먹거리 중에서 하나라니! 답변 불가였다. 질문 방향을 좀 바꿔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 그건 대답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 부산진여상 다니던 누나, 몇 살 터울 청산·경산 두 형과 영선고개 넘어서 국제시장에 갔다. 한 학기 학용품을 몽땅 도매로 사면서 아낀 돈으로 ‘꼼장어’ 껍질묵을 처음 맛봤다. 시장 노점에서 초장 찍어 먹던 그 맛, 그 풍경은 지금도 기억난다. 국제시장은 가장 부산다운 맛을 품은 시장. 한평생 추억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맛도 거기 있다.   


글·동길산 시인

작성자
조현경
작성일자
2025-12-1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512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