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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511호 문화관광

부산의 진산이 빚은 자연과 맛이 익어가는 계절

미식도시 부산 ‘맛 따라 길 따라’ ② 금정산성 막걸리 맛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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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 4망루 일원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사진제공 : 금정구


부산의 진산이 천천히 익어간다. 속세는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번잡하지만 금정산은 고고히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오롯이 가을색의 깊이를 더한다. 부산의 진산이 빚어내는 자연과 맛은 항상 부산시민을 보듬어 준다. 금정산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가방을 메고 신발 끈을 조여 메자. 막걸리 향 그윽한 산으로 갈 때다. 


가장 높고 가장 구수한 대한민국 명품 맛길  


온천장~동문~금성동~화명수목원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다. 부산 하면 금정산이고 금정산 하면 부산이다. 그러기에 금정산의 맛은 부산의 맛이며 금정산의 진미는 부산의 진미다. 금정산의 맛, 금정산의 진미를 알면 부산의 맛, 부산의 진미를 비로소 알게 되며 그것들을 알면 부산을 비로소 알게 된다.


‘Geumjeongsanseong’. 금정산성의 공식 로마자 표기다. 성, 요새를 뜻하는 ‘Fortress’를 붙이기도 한다. 고유명사 ‘금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반명사 ‘산성’까지 그대로 표기했다. 이는 금정산성 자체가 이 세상 유일한 고유명사로 인정받았다는 방증이다. 이 세상 유일해서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부산의 고유명사가 금정산의 산성, 한국의 산성 가운데 가장 긴 금정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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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 4대문 중 하나인 '동문'.


금정산성이 이 세상 유일한 만큼 금정산성에서 발효한 막걸리 역시 이 세상 유일하다. 독보적이고 독특한 맛을 누대에 걸쳐서 이어 온다. 부산사람 애정은 각별하다. 부산사람 열이면 열 “금정산성에 막걸리 먹으러 가자”라고 하지 그 누구도 소주나 다른 술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는다.


금정산성 막걸리 먹으러 가는 길은 둘. 길은 하나인데 가는 방법이 둘이다. 동래 온천장에서 산성으로 가는 길이 있고 낙동강 화명동에서 산성으로 가는 길이 있다. 둘 다 정일품 길이다. 온천장에서 시작해 낙동강 노을로 마무리해도 좋고 화명동 수목원 쪽에서 시작해 온천장 온천욕으로 마무리해도 좋다. 최고로 좋은 건 날을 따로 잡아서 하루는 이 길, 하루는 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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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을 달리는 203번 좌석버스.


 

오늘은 온천장에서 시작하는 길.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3번 출구로 나와 도로 맞은편에서 203번 좌석버스를 타면 된다. 온천장과 산성마을을 오가는 이 버스는 구불구불한 숲속 길을 이리 꺾고 저리 꺾고 하면서 한참을 올라간다. 지금은 가을. 올라갈수록 단풍이 진해진다. 얼마나 더 올라가려나, 얼마나 더 진해지려나. 나는 얼마나 더 올라가야 지금보다 진해지려나.


막걸리 맛길 시작 ‘남문 입구’


버스에서 내린 곳은 ‘남문 입구’ 정류소. ‘남문 입구’지만 동문이 더 가깝다. 막걸리 맛길 탐방이 아니라면 동문으로 해서 산성길 순례 강추! 금정산 첫 산성은 삼국시대 쌓은 것으로 추정한다. 현존하는 산성은 1700년대 초와 1800년대 초, 두 번에 걸쳐서 쌓았다. 산성길 돌담 하나하나, 디딤돌 하나하나 ‘내 나라, 내 가족 내가 지킨다’는 당대 부산 사람의 결기가 스몄고 당대 부산 사람의 온기가 스몄다. 그래서 돌 하나하나 지금도 딴딴하고 뜨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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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을 찾는 방문객을 반기는 금정산성 먹거리촌 조형물과 흑염소 조형물, 금정산성 막걸리. 
 

정류소 ‘남문 입구’는 막걸리 맛길의 시작. 여기서부터 저 아래 203번 종점 일대까지 막걸리와 파전, 도토리묵, 두부 등을 내세운 맛집 간판이 이어진다. 맛집도 수두룩하고 간판도 수두룩하지만 하나같이 내세우는 대표 음식은 산성 막걸리. “산성 막걸리 먹으러 가자”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역사도 최고고 고집도 최고다. 이 역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가 금정산성 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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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동에 위치한 금정산성 막걸리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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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중인 금정산성 막걸리 누룩. 사진제공 : 부산일보


 


막걸리 맛을 내는 절대강자는 누룩. 여기선 누룩도 ‘한 고집’ 한다. 씨간장처럼 누대에 걸쳐 면면히 맥을 이어 온다. 막걸리에 쓰이는 물 역시 높고 깊다. 부산 최고봉 고당봉 거기서부터 스며들었을 지하 250m 암반수를 쓴다. 부산 최고로 높고 부산 최고로 깊은 천연수로 빚은 하늘이 내린 술이 금정산성 막걸리다.       


500년의 역사 산성 막걸리


산성 막걸리의 역사는 산성의 역사. 산성을 쌓으면서 인부들 새참으로 나온 게 산성 막걸리였다. 그런데 좀 의문이다. 현존하는 산성을 처음 쌓은 게 1700년대 초라면 그 역사는 300년 남짓. 그런데 왜 500년이라고 할까. 언젠가 인터뷰했던 금정산성 문화체험촌 차일찬 촌장은 거기에 화전민 역사를 보탰다. 산성 훨씬 이전부터 이 일대 거주하던 화전민들이 생계용으로 막걸리를 빚었으며 그 막걸리가 산성 새참으로 나오면서 입소문을 탔다고 했다.


금정산성 부설비. 산성 축조의 역사는 큼지막한 비석에 새겨져 지금도 전한다. 비석 있는 곳은 금정구 장전동 벽산블루밍 2단지 안쪽. 공원을 겸한 문화재보호구역에 있다. 1701년 착공해 1703년 완공한 산성이 허물어지자 100년쯤 후 다시 쌓은 부설(復設)의 과정을 미주알고주알 밝혔다. 


부설은 1807년 늦가을 시작해 1808년 초봄 마무리했다. 부설비를 세운 해는 1808년. 대역사(大役事)를 이룬 게 스스로 믿기지 않아 ‘마치 신의 도움이 있은 듯하다’라고 새겼다. 한문은 약유신조(若有神助)다. 비문 전체 해석은 부산시 홈페이지에 상세하게 나온다. 홈피에 들어가 부산 소개-부산의 역사-향토사도서관-부산금석문 순으로 검색하면 된다. 비문 한 대목을 옮긴다. 


정묘년(1807) 늦가을 토목공사를 잇달아 일으켜 한 달 만에 동문이 완성됐고 다음 해 초봄에는 기둥과 들보를 100리 밖에서 옮겨왔으며 벼랑 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깎아서 지고 끌어당기기를 온 인부가 힘을 함께한 지 149일 만에 서남북 초루(譙樓)를 완성했다. (…) 여러 계곡의 물줄기를 이끌어 강과 바다로 통하게 하니 평탄한 곳에서 산 정상까지 성벽이 가로 32리에 다다르는 공사를 끝냈다.  

203번 종점 마을은 금성동. ‘금정산성’에서 동명을 따왔다. 누룩동네로도 불린다. 누룩방에 가 보면 통밀가루로 반죽한 누룩을 밟는 아낙들 허리가 구부정하다. 건성건성 밟으면 공기가 들어가서 곰팡이가 잘 안 피므로 힘주어 밟아야 하고 반평생, 한평생 그러다 보니 허리가 굽었다. 누룩 민요가 전한다. 여인네 한풀이 노래다.


‘달걀 같던 내 발뒤꿈치. 발처럼 험해졌네. 이 누룩으로 만든 술을 마시는 이는 누구인가. 함께 즐길 수 없는 이 내 몸은 늙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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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소 불고기. 사진제공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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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파전과 금정산성 막걸리. 


염소 불고기와 파전. 금성동 맛집은 맛의 분화랄지 다양한 맛으로 나아가는 추세다. 젊은 취향에 맞춘 산뜻 파릇한 카페가 속속 들어선다. 화명동 큰 하천 대천천(大川川)으로 이어지고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금정산 계곡물을 안으로 끌어들인 카페는 물의 궁전 같다. 그러나 대세는 여전히 산성 막걸리에 염소 불고기, 그리고 파전이다. 불고기는 산성 널따란 초지에 염소를 방목하면서 처음 알려졌고 파전은 동래·기장 쪽파와 부산 해물이 결합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1999년 부산시가 지정한 향토음식 1호가 동래파전이다. 


금정산에선 뭐든 최고거나 최초다. 엔간하면 1호다. 한국에서 가장 긴 산성이 그렇고 대한민국 민속주 1호 산성 막걸리가 그렇고 부산 향토음식 1호 동래파전이 그렇다. 검색하면 차고 넘친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동래파전 해설에 특히 진심이다. ‘조선시대 동래부사가 삼월삼짇날 임금님께 진상한 음식’이며 ‘숙종 때 산성의 중성(中城) 부역꾼이 새참으로 먹은 음식’으로 전해진다고 정의한다. 숙종 때가 1700년대 초반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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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명수목원 전시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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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명수목원 인근의 금정산성 서문 모습.


금성동에서 더 내려가면 화명수목원. 부산 최초 공립 수목원이다. 이 또한 1호다. 부산 가장 높은 산에서 발원한 대천천 물줄기를 끌어들인 이런저런 연못과 계곡이 있어 보인다. 수목원 물줄기 끝은 낙동강. 한국에서 가장 긴 유장한 강물을 노을이 비추면 누구라도 얼큰해진다. 1차는 산성 막걸리에, 2차는 낙동강 노을에 얼큰해지는 길이 금정산성 막걸리 맛길이다. 


바다 수평선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높이가 달라진다. 높은 데서 보면 높고 낮은 데서 보면 낮다. 강도 그렇다. 높은 데서 보면 높고 낮은 데서 보면 낮다. 부산에서 가장 높은 금정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부산에서 가장 높은 강. 가장 높은 산에서 가장 높은 강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가장 높아지고 누구라도 가장 진해지는 기분이 든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가 면면히 이어지는 대한민국 1호길 금정산성 막걸리 맛길! 금정산에선 뭐든 1호다.


글·동길산 시인

작성자
조현경
작성일자
2025-11-1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511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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