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백수’들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도전’
우리 마을 사랑방 - 협동조합 ‘동네백수’
- 내용
다들 혈색이 좋다. 직장 일에 찌든 얼굴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긴 머리에 깎지 않은 수염, 무릎 나온 운동복에 슬리퍼나 질질 끌고 다니는 그런 외모적 특징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출퇴근 시간에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든지, 시간대별 TV 프로를 모두 외운다든지 하는 공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출퇴근도 하고, 다른 백수들을 모아서 가르치기도 하고, 최근에는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야외 영화관도 운영하면서 밤늦게 퇴근하기 일쑤다. 백수는 백수이되 자칭 '자발적 백수'인 그들, 김정우(28), 김백윤(28), 김정중(26), 이수진(25), 권은지(24). 다섯 명의 부산 청년들이 뭉쳐 '동네백수'를 만들었다.
'동네백수'는 '이바구 정거장'을 운영하며 '지역일자리사업', '청년자립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사진은 협동조합 동네백수 멤버들).지역에서 일자리 발굴 … 청년 자립 고민
초량 이바구길 초입에 있는 '이바구 정거장'을 근거지로 백수활동 하고 있는 그들은 여느 백수와는 다르게 매일 매일이 바쁘다. 그들만의 '일(job)'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만의 밥벌이가 아니라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일이다. 다른 백수와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아직 개인적으로 가져가는 '월급'이 없다는 것뿐.
'이바구 정거장'은 초량 이바구길의 마을 거점이자 관광안내소 역할을 하는 3층 건물. 산복도로 골목여행의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산복도로를 오르내리는 이바구길 4갈래 갈림길에 위치해 있다. 밀면과 부산어묵의 고향 초량시장 그리고 중국풍, 러시아풍, 필리핀풍 등 다양한 외국풍이 모여 있는 차이나타운특구를 '좌청룡 우백호'로 곁에 두고 있어 가히 초량 원도심 투어의 요충지라 할만하다.
동네백수가 하는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역일자리사업', 다른 하나는 '청년자립사업'. 지역일자리사업으로 지난 7월부터 이바구 정거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원래 주민협의회에서 운영해 왔지만 마인드 부족, 운영미숙 등으로 활성화가 안됐다. 마을거점시설 재생을 청년들의 아이디어에서 찾겠다는 목적으로 시행 중인 동구의 '한 지붕 두 가족' 사업에 선정돼 위탁 운영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바구 정거장 1층에 '백수다방'을 열고 차와 기념품을 팔면서 건물 옆 공터는 야외영화 상영관으로 활용해 관광객·주민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여는 '이바구 목요영화관'은 마을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주민들이 작은 공터에 놓인 의자와 골목 계단에 편하게 걸터앉아서 이바구 정거장 건물 벽을 스크린 삼아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은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경성대 연극영화팀, 지역 청년 아티스트들과 초량 골목 축제, 가마뫼 마을축제 등도 추진했다. 지난 10월에는 이바구 정거장이 늦은 개업식을 열었다. 부산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스피커까지 빌려와 아이와 어르신,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작은 동네잔치를 벌였다.
'동네백수'는 '이바구 목요영화관', '초량골목축제' 등을 운영하며 지역주민과 소통을 활발히 하고 있다(사진은 지난해 '초량골목축제' 모습).청년자립사업으로는 '백수학교'를 연다. 백수들의 정신적 자립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다. 청년들의 '자아발견'을 비롯해 자신에 대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6기를 배출했다. 대학생에서 직장인까지 수강했고 반응이 좋아 새로운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100명의 '동네백수 프랜차이즈'가 꿈
"원래는 제가 대학교 다닐 때부터 문화기획 쪽으로 관심이 많았고, 그 쪽으로 활동하면서 기획수업을 열어봤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수업 들은 학생들, 일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랑 지역에서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 해서 스터디를 하다가 지금의 다섯 명이 '동네백수' 팀으로 의기투합하게 된 거죠. 동네백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함께 자립할 순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어요. 동네백수라는 말에서 풍기는 무능함, 무기력을 깨고 지역에 필요한 청년이 되자는 느낌을 담은 거라 보시면 돼요." 맏형이자 리더 격인 김정우 씨가 말하는 동네백수 창업 내력이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꿈. 청년들의 질문은 절실했다. 그 질문으로 '동네백수'는 탄생했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실험 중이기 때문이다. "사실, 저희 각자 사는 동네가 다 달라요. 그래서 먼 미래의 꿈은 자기 동네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동마다 지역마다 이런 '동네백수'를 만드는 거죠. 우리가 먼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행동으로 증명하면, 지금은 저희 동네백수 유니폼이 5번까지인데 100번까지 가지 않을까요? 100명의 동네백수 프랜차이즈요. 호호호."
조금씩 늘기는 하지만 아직은 이바구길에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다. 마을청년, 주민과의 소통도 넓지 않다. 적극적인 유인 정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찬바람 부는 11월부터는 이바구 목요영화관이 문을 닫는다. 맨땅인 공터를 다듬어서 내년 봄부터는 골목장터, 마을도서관, 주민을 위한 교육 커뮤니티 같은 사업들을 좀 더 활발히 해 볼 참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통해 지역과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일터를 만들려는 '동네백수'의 소중한 실험이 온 동네 청년백수들의 성공신화가 되길 빈다.
- 작성자
- 글 원성만 / 김기식 마을만들기 코디네이터
- 작성일자
- 2015-11-24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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