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과 낮술 한잔하며 듣는 마을재생사업
[원성만의 주경야설] 마을 만들기, 청년 일자리 창출 실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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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한 어르신들만 있는 오래된 마을들. 마을재생사업은 어떤 것이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은 어떠해야 할지 마을활동가들과 낮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을만들기 코디네이터 김기식, 범천4동에 양화니, 수정1동의 정승창 마을활동가, 이들 사업을 기록하고 있는 김지운 감독이 자리를 함께했다.
수정1동 산딸기마을에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마을재생사업에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열정, 행정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시청양반, 낮술 한 잔 하시게
산딸기마을 주민센터는 좁은 골목길 끝에 있었다. 방 두 칸짜리 단층집을 세 빌려 마을회관 겸 주민센터로 쓴다.
회의 안건은 '장마가 오기 전 마을 뒤편 공원 조성 공사를 빨리 끝내고,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침수된 집들이 있는데 피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내놔라'는 것. 이날 부산진구 관계자와 범천4동장, 담당자가 동석했다.
"공사를 찔꿈찔꿈하니까 벌써 끝이 나야 할 공사가 저렇게 남아 있잖여. 지난 비에도 우리 집 수도계량기에 물이 찼는데 비가 많이 와 산사태라도 나면 우짤겨?"
"공사 끝내고 빨리 잔존물을 치워줘야 거기다가 고추를 심을 낀데 고추 모종할 시기를 놓치고 있잖은가배."
이날 자리는 우선 어르신들과 공사 현장을 확인하고 장마 전에 공사를 마무리할 것, 설계도면 확인부터 공사 진행 과정을 공개하는 것으로 구청 측과 의견을 맞추었다.
"그라면 시간도 됐는데 점심부터 하고 현장으로 갑시다. 소주 좀 꺼내지. 시청양반도 이리 앉아서 한 그릇 하소."
회의장은 자연스럽게 점심 밥상으로 바뀐다. 주민들과 담당 공무원들이 겸상 하면서 반주로 소주 몇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도 반갑다. 행정은 관공서 책상머리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밥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시청양반도 한 잔 받으소."
제일 연장자로 뵈는 어르신이 손수 잔을 쥐어주시며 술을 권하신다. "제가 (낮)술을 잘 못해서예." 하면서 빼려고 하는데, 제 눈을 보시며 "술은 낮술이 제일 맛있지."라고 하신다.
이어진 술자리는 중앙동 소라계단 근처 밥집까지 이어졌다. 30대, 40대, 50대가 한자리에 했다. 정해진 주제 없이 마을만들기 청년 활동가들과 그냥 술 한 잔 하면서 현장에서 느끼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마을만들기 현장, 다양한 청년 일자리 창출 실험장
"지금 20∼30대들은 개인 브랜드로 살아야 하는 세대예요. 새로운 직업을 창직(創職)하려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봐야 하는데 마을만들기 현장에 기회가 있다고 봐요."
산복도로르네상스 시범마을인 범천4동 '선암 산딸기마을' 활동가인 양화니 씨의 의견이다.
"사실 저는 2013년부터 산딸기마을과 인연을 맺고 일을 하다가 2014년에 활동가 위촉 기간이 끝났어요. 담당 공무원도 바뀌고 저도 위촉 기간이 끝나니 당장 지원할 수 있는 행정도, 사람도 없는 거예요." 양화니 씨가 자원봉사 활동가로 자처하며 선암 산딸기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산딸기마을의 경우 주민 대부분이 75세 이상이다. 마을 일을 돌볼 청·장년은 없다.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도 마을에 청년이 절실한 이유다.
"시에서는 청년창업, 직업훈련 쪽만 지원을 하는데, 마을 안에서 대안적 경제 모델을 만들고 시도하는 청년들에게도 정책적인 지원을 해주면 좋겠어요. 서울시 청년허브처럼 사회혁신사업에도 지원해 주면 좋겠다는 거죠."
수정1동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정승창 활동가, 그는 청년들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부산시가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을을 터전으로 다양한 실험과 실패, 성공 경험을 나누고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을 역설한다. 일종의 마을만들기 벤처 육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정1동 마을활동가 정승창 씨는 셋방을 구할 전세금이 부족해서 북구에 집을 구했다. 그렇다고 북구의 마을 활동가로 일할 수도 없는 노릇. 활동 지역과 사는 곳이 같다면 마을에 대한 애정은 더 커질 텐데 마을 활동가의 월급은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지속가능한 마을 청년 일자리 모델찾기 고심
부산의 마을공동체와 산복도로 르네상스 다큐를 제작해서 전국에 소개하기도 했고, 마을만들기 사업 현장을 기록해 오고 있는 김지운 감독은 말한다.
"단기간에 행정에서 요구하는 성과를 내야하고 2∼3년 하다가 사업비 지원 떨어지면 손을 놔야하는 현재 사업구조가 큰 문제다. 주민 중심과 청년 동참 사업을 고민하고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병수 시장이 공약한 도시재생 프로그램 가운데 상상마을과 청년베이스캠프와 궤를 같이 하는 의견이다. 상상마을이란 영화·문화사업의 사전기획, 시나리오·콘티 제작 공간을 제공하여 청년창업, 사회적기업, 문화 활동의 근거지로 만들어서 도시재생과 연계시켜 나간다는 프로그램. 마을만들기 사업까지 영역이 확장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싶다. 청년베이스캠프도 청년 마을활동가들의 생활공간으로 제공한다면 고령화 마을에 생동감도 불어넣고 마을만들기도 더 현장감 있어지지 않을까.
경험과 실패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연도에 따라 마을사업과 활동 지속 여부가 갈리는 현재의 지원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승창 씨가 북구의 전세 기간이 끝나면 동구에서 집을 구해서 동구의 청년마을활동가로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후 선암 산딸기마을 뒷산 공원 조성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장마에 대비한 보완공사 등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 이 글의 전문은 부산시 공식 블로그 '쿨부산'(blog.busan.g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작성자
- 원성만
- 작성일자
- 2015-05-1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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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679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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