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할매나무, 보고 싶었어예!
가덕도 율리마을 팽나무 두 그루, 나루공원 온 지 2년
- 내용
- 가덕도 율리마을에서 해운대 APEC 나루공원으로 이사 온 팽나무 두 그루가 꼬박 2년만에 고향 주민들과 만났다.
“우리 당산 할배·할매나무, 많이 젊어지셨네. 아아고, 고맙습니데이.”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앞에 있는 APEC 나루공원에서 지난 10일 감격의 상봉이 있었습니다. 가덕도 율리마을에서 이 공원으로 옮겨온 팽나무 두 그루가 꼬박 2년만에 고향 주민들과 만난 겁니다.
나루공원 왼쪽 끝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팽나무 두 그루 말인데요. 나이가 500살이나 되는 이 나무들은 원래 율리마을을 지키며 할배·할매나무로 불리던 당산나무였습니다. 부산시는 이 나무들을 2010년 3월30일 해운대 APEC 나루공원으로 옮겨왔습니다. 가덕도 일주도로를 내는 신항만 배후도로 건설공사 때문에 고사 처지에 놓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였지요. 팽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서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간절한 요구가 있었고, 그 뜻을 부산시가 받아들인 겁니다.
고향 주민들 찾아와 상봉…“더 젊어지신 것 같아 흐뭇”
2년 전 눈물로 팽나무를 떠나보냈던 가덕도 율리마을 주민들은 건강한 팽나무를 보고 감격해 했다. 주민들이 막걸리를 부어주는 모습.아무튼 2년 전 눈물로 팽나무를 떠나보냈던 가덕도 율리마을 주민들은 할배·할매나무를 만나자 마자 합장부터 했습니다. 2년 전까지 매일 그렇게 인사를 했겠지요. 푸른 잎을 무성하게 피우며 늠름하게 서 있는 팽나무를 보고서는 “너무 감사하다”며 안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날 APEC 나루공원을 찾은 율리마을 주민 10여명은 팽나무와 함께 한 마을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60~70대 어르신들. 그래서일까요? 정말 고향을 떠난 친부모를 만난 듯 진심으로 팽나무를 걱정하고, 반가워하더군요.
팽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이리저리 둘러본 율리마을 주민들은 막걸리를 뿌리며 “많이 드시고 수천 년 길이길이 사이소”라며 한 마디씩 덕담도 했습니다.
“마을을 지켜주던 할배·할매나무가 낯선데서 잘 계신지 걱정했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잘 지내고 더 젊어지신 것 같아 흐뭇합니더. 여름마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해 주던 할배·할매나무가 동네를 떠나 서운하긴 하지만, 좋은데서 잘 지내고 부산의 자랑이 돼 보기 좋네요.” 일흔여덟의 이일선 할머니는 연신 할매나무를 쓰다듬으며 “다행이다, 흐뭇하다, 자랑스럽다”며 점층법으로 팽나무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 나무들이 저한테는 어릴 적에는 놀이터, 커서는 휴식처였지요. 함께 자란 친구이기도 하고. 너무 정이 들어 이렇게 만나니까 눈물이 나네요. 옮기고 나서 너무 허전했는데, 이렇게 좋은 곳으로 와서 관리도 잘 받으니까 마음이 놓입니더.” 일흔여섯의 김영수 할아버지는 눈물까지 보이더군요. 사람과 나무도 오래 정을 쌓으면 저렇게도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팽나무를 그리워하는 시까지 등장했습니다. 전 부경대 교수, 이수종 시인이 지은 시인데요. 이날 팽나무 앞에서 낭독회를 가졌습니다.
팽나무
나서 자란 가덕도 율리를 떠나
이십 해리도 넘게 배를 타고 내린 센텀시티
이곳 수영강변 나루공원에 터를 잡았다용원, 안골포를 이웃에 두고
마주보며 보낸 삼백여년
어릴 때는 누가 더 큰지 키 재기를 했고
커선 마을을 지켰다긴긴 세월동안 셋이 나눈 도탑던 정
그걸 어찌 잊을리야봄 지나고 여름 되면
그전처럼 매미들이 울어 대겠지
남은 맏이가 그리워진다부산시·해운대구 팽나무 돌보기 ‘극진’…2년 만에 뿌리 내려
부산시와 해운대구 공무원들은 2년 동안 팽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극진히 돌봤다. 공무원들이 율리마을 주민들 방문을 앞두고 표지판을 점검하는 모습.가덕도 율리마을 주민들과 할배·할매 팽나무의 눈물겨운 상봉과 그리움을 노래한 시를 그저 감동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팽나무들을 관리하고 있는 부산시와 해운대구 공무원들인데요. 맞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리마을 주민들의 높고 높은 팽나무 사랑이, 무거운 책임이요 부담입니다.
“이 팽나무들은 그냥 나무가 아닙니다. 율리마을 주민들이 소중히 여기는 말 그대로 할배, 할맵니다. 당산목을 모셔올 때 2년간 정성껏 키워 꼭 주민들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 지켜 다행입니다.” 이동흡 부산시 그린부산지원단장의 말입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난 2년간 그야말로 팽나무 살리기 전쟁을 벌였다고 하네요. 이동기 해운대구 공원팀장 역시 “이 팽나무 못 살리면 부산시 녹지직 공무원들 전체 얼굴에 먹칠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할배·할매 팽나무 살리려고 고생들 무지 하셨나 봅니다. 박수한번 쳐 주세요. ^^
500살이 넘은 할배·할매 팽나무는 곳곳에 썩은 부분이 있었다. 해운대구 이동기 공원팀장이 할매나무 밑동부분 외과수술 부위를 설명하고 있다.부산시와 해운대구의 팽나무 돌보기는 그야말로 ‘극진’이었습니다. 팽나무를 옮겨오는 것부터가 그랬지요. 팽나무 두 그루 가운데 할배나무는 높이 12m, 폭 15m, 무게 72t의 크기를 자랑하구요. 할매나무 역시 높이 10m, 폭 12m, 무게 55t의 거목입니다. 이 큰 나무 두 그루를 옮겨 심는 게 정말 만만치 않았는데요. 팽나무 수송에두 척의 바지선, 트레일러, 굴착기, 크레인 등이 동원됐구요. 육지 1.6㎞와 바다48㎞를 수송하는 데만 25시간이 걸렸고, 2억5천만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부산시는 할배·할매 팽나무를 2010년 4월2일 많은 시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지금의 자리에 심고, 보호수로 지정해 매일 상태를 살피며 정성을 쏟았습니다.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가덕도 고향의 흙을 공수해와 깔았구요. 생육개선 주사를 한시도 빠뜨린 적이 없습니다. 나무 나이가 500살이나 되다 보니 밑동을 비롯한 곳곳에 썩은 부분이 있었는데요. 그것을 일일이 도려내고 충전재로 채우는 외과수술도 했습니다. 그 결과 할배·할매 팽나무는 2년만에 새로운 둥지에 무사히 뿌리를 내렸다고 하네요. 확실히 올 들어서 지난해보다 빨리 무성한 잎을 틔우며 건강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할배·할매 팽나무, 율리마을 ‘당산목’에서 부산 ‘수호목’으로
APEC 나루공원의 할배·할매 팽나무는 이제 율리마을 당산나무에서 부산의 수호나무로 거듭났다. 율리마을 주민들과 부산시 해운대구 공무원들 기념촬영.APEC 나루공원의 팽나무 두 그루는 사실 옮겨올 때부터 율리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부산시민 전체의 관심사였습니다. 미라처럼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을 보고 팽나무가 괜찮은 거냐고 물어오는 시민들이 꽤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온 시민의 관심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할배·할매 팽나무는 이제 가덕도 율리마을의 '당산목'에서 부산 전체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수호목'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산시 역시 팽나무 두 그루가 고향을 떠나 APEC 나루공원에 자리 잡기까지의 스토리를 담은 ‘할배나무와 할매나무의 이야기’를 만들어 표지판까지 설치했는데요. 부산의 새로운 수호목이 된 팽나무 두 그루를 스토리 텔링 형식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서랍니다. 그래요. 500살 할배·할매 팽나무에 대한 부산시민의 사랑이 훈훈한 이야깃거리로 많은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 작성자
- 구동우
- 작성일자
- 2012-05-1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첨부파일
-
-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